월간참여사회 2002년 09월 2002-09-24   453

보험업법 개정과 정권퇴진운동

지난 7월 25일 오후, 필자는 보험업법 개정관련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했었다. 이날 날씨는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웠지만, 필자의 마음은 서늘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원래 7월 11일에 개최 예정이었던 공청회가 유사보험(각종 공제회)에 대한 금융감독 통합 방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공제회 측 사람들의 실력행사로 무산되었던 터라, 이날 다시 열린 공청회 역시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의 보험업법 개정은 25년 만의 전면 개정으로서 보험업법을 새로 제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따라서, 유사보험 감독 문제만이 아니라, 생보사와 손보사 간의 업무영역 조정, 방카슈랑스(은행업과 보험업의 겸업화) 도입, 보험모집인의 생손보 교차모집 허용, 민영건강보험 확대, 보험개발원의 권한 확대 등 보험산업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이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제회 측이 실력행사를 통해 애초의 정부안을 상당정도 후퇴시켰음(즉 재경부가 유사보험 감독 통합안에 대한 재검토 내지 유보 입장을 발표하였음)이 확인된 마당에, 다른 이해관계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아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이날 공청회장도 보험관련 이익단체들이 내건 플래카드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4시간이나 계속된 공청회에서 8명의 지정 토론자에게만 10분씩의 발언기회가 주어졌고, 나머지 시간에는 사회자로부터 발언기회를 얻은 사람들과 스스로의 힘으로 발언기회를 확보한 사람들 간에 열띤 객석토론이 이어졌다.

공청회장에서 이해관계의 치열한 격돌이 벌어진 것에 대해 필자가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청회란 이해관계의 충돌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공청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필자의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날 공청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선명하게 드러낸 이익단체들은 굳이 공청회장이 아니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힘과 통로를 갖고 있다. 실제로 공청회 이후에 각종 이익단체와 정부당국 간의 협의(?)를 통해 이러저러한 수정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합리적 근거가 무엇인지 도대체 짐작도 안 되는 방향으로….

문제는 그러한 힘과 통로를 갖지 못한 이해관계자, 특히 보험소비자의 권익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이다. 우리나라 보험산업은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세계 6위의 규모로 성장했으나, 보험소비자 권익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그 전제가 되는 보험회사의 재무건전성 규제나 지배구조 개선 등은 은행·증권 등 여타 금융업종에 비해서도 한참 낙후되어 있다. 그러나 수백만 보험소비자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기에, 이와 관련된 규정은 보험회사의 이익과 감독당국의 편의에 따라 철저하게 왜곡되어 왔다.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도 예외는 아니다.

이날 객석토론 중에 어느 이익단체에서 나온 사람이 이렇게 외쳤다. “이 개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권퇴진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정권퇴진 운동을 불사할 이익단체가 이리도 많으니, 이번 보험업법 개정 역시 침묵하는 다수 보험소비자의 권익을 희생시키는 개악으로 귀착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보험소비자들도 단체를 만들어 정권퇴진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나. 보험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sjkim4059@hansung.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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