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9월 2002-09-24   1051

“거대한 전쟁기계” 미국

임박한 이라크 공격이 최근 언론의 국제소식란을 연일 장식하고 있다. 누군가는 전쟁을 국가대사라 하고 누군가는 흉악한 범죄라고 한다. 전쟁은 마초(힘을 숭상하는 남성우월론자)들의 심각한 말투로 선동되지만 마초들의 놀음이 늘 그렇듯 희극적인 면도 갖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이 전쟁을 도발하면서 유엔 안보리 결의 등 국제법을 내세우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부시 행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나 국제환경협약 등 국제법 및 협약을 무력화시키거나 위반한 건수는 세계 모든 나라가 지난 20년간 국제법을 위반한 건수보다 더 많다.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법 불량국가인 것이다.

미국은 적어도 1960년부터 생화학무기를 실험해 왔는데 (자국 병사들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인체실험을 하기도 했다) 최근까지도 비밀 실험을 계속해 국제생물무기협약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국제협약에 따른 화학무기조사단이 미국의 실험실을 방문, 조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또 중앙정보국(CIA)의 해외암살 및 불법공작을 다시 허용했다. 미국의 무기생산 및 수출은 국제적으로 번지는 분쟁과 범죄 흉포화의 불길을 잡기 위해 소형무기 거래를 통제하려는 국제적인 합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현재 국제고문방지 협약에 따라 미군 수용소에는 고문감시단이 파견되고 있으나, 테러혐의자 수사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부시 행정부는 감시단을 추방하려 하고 있다. 또 오로지 미군 병사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국제인권분야의 중요한 성과인 국제형사재판소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핵무기가 국제법상 불법무기라는 사실은 미 행정부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다. 사실 국제법상 범법행위로 따지자면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이라크보다 훨씬 흉악한 범죄국가이다 – 유일한 차이란 두목과 졸개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범법과 전쟁 및 비밀 공작은 미국 대외정책의 뼈대를 이룬다. 선량한 미국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미국은 세계 최대규모의 군산복합체가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나라다.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여기에 들어간 인력과 장비 및 시설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을 정당화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딕 체니 부통령이 아프간 전쟁으로 벌어들인 떼돈은 군산복합체의 전체 유지비용에 비하면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체니의 사업수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끊이지 않고 미국을 위협해 주는 ‘적’의 존재이고 그 ‘적’ 덕분에 벌일 수 있는 전쟁이다. 전쟁의 승패는 부차적이다. 걸프전을 베트남전에 대한 명예회복으로 보기도 했던 부시 전 대통령의 철학처럼 전쟁은 다음에 이기면 된다.

정치지도자 암살 사주

최근의 현상만은 아니다. 간추린 세계사 자료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1801년부터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미국이 무력침공한 나라의 수는 30개국이 넘는다.

총 침략횟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중남미국가와 중국 같은 나라는 많게는 5∼6회까지 반복 침략했기 때문이다. 미 정부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98년 동안 미국은 해외에서 103차례의 무력개입을 저질렀다. 19세기 말 스페인에 이어 미국이 필리핀을 강점한 이후 필리핀에서는 최고 60만 명이 식민통치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서구와 공산국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미국의 배후지원 및 직접 개입에 의한 쿠데타, 정변, 전쟁, 고문, 학살이 벌어졌다. 미국은 잘 알려진 칠레 아옌데 정권과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의 전복에서부터 심지어 호주 노동당 정권의 전복(1975년)에도 관여했다. 쿠바와 리비아뿐만 아니라 파나마, 케냐 등 덜 알려진 많은 나라의 정치지도자 암살도 사주한 바 있다.

프랑스의 베트남 통치가 막바지에 달하던 1954년 미국은 프랑스에게 베트민(Viet Minh, 호치민이 이끈 반프랑스 저항운동)을 상대로 쓸 핵무기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독립이 임박하자 대중의 지지를 받던 베트민의 승리를 막기 위해 전국 총선거에 한사코 반대한 후 남부에 친미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동시에 시작된 CIA 대규모 공작의 도움을 받은 디엠 괴뢰정권은 집권 2년 만에 정치범 1만2000명을 학살하고 1961년에 이르러 15만 명의 정치범을 가두고 있었다.

괴뢰정권을 통한 통치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미국은 1964년 북베트남 영해를 침범한 뒤 무력충돌을 조장해(통킹만 사건) 직접 전쟁을 도발했다. 미국의 무력개입 이후 베트남 인민들이 겪은 참화는 잔혹한 범죄의 결과였다.

미국의 배후지원으로 1965년 정권을 탈취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군부세력은 70년대 초까지 수십만 명을 국내에서 학살한 뒤, 미국의 묵인 아래 동티모르에서 수십만 명을 학살하였다. 그 대가로 수하르토 세력은 미국 정부로부터 “우리 종자들(our kind)”이라는 칭호와 대규모 군수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외에도 푸에르토리코(1950) 이란(1953) 과테말라(1954) 이집트(1954)… 인도네시아(1965)… 칠레(1973) 이란(1980) 엘살바도르(1981∼92) 그레나다(1983∼84) 등, 군대와 CIA를 통한 미국의 해외 범죄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어떤 이들은 미국을 ‘거대한 전쟁기계’라고 부르는데 무력침공의 역사와 군수업체 군부 및 정치권의 연계망을 놓고 보면 이는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CIA의 해외공작을 포함시키면 미국이라는 국가는 오히려 ‘더러운 전쟁기계’로 불려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조직폭력배

전쟁기계의 전통은 사실 오래된 것이다. “절대 비밀인데 말일세… 내 생각에 이 나라는 전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는 거의 어떤 전쟁이라도 환영할 참이네.” 이는 1897년 테오도어 루즈벨트 미 대통령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고백한 것으로 미 정부가 1890년 ‘국내 개척지의 종결’을 선언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나온 발상이었다. 여기서 ‘개척지의 종결’은 운디드니에서 인디언들을 야만적으로 학살하면서 원주민 저항을 모두 압살한 ‘업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미 대통령의 이런 고백은 개인적인 취향이라기보다 거의 매년 해외침략을 해온 미국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었다. 미 국무부의 해외 무력사용 기록을 보면 “미 해병 XX국에 상륙, XX시 주둔, 주둔국 혁명시기 미국 이익 보호” 식의 표현이 이어진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 한국의 해방자로서 미국의 모습과 이런 전쟁기계의 모습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위대한 미국’이나 ‘미국의 가치’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나타나는 기조는 바로 ‘위대한 미국’과 쌍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위대한 미국인’ ‘미국의 가치’ ‘아메리칸 스탠더드’의 구호 뒤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들쥐들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미군사령관의 관찰에서부터, 아이티의 독립운동을 “불어를 하는 깜둥이들”의 반란으로 관찰했던 전통, 타국의 합법적 국가수반을 암살하려고 공작하는 심리, 미국이 후원한 군부가 수십만 명씩 민간인을 학살해도 정당하다고 여기는 심리가 공존하고 있다. 이는 ‘위대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멸과 조소로밖에는 이해하기 힘들다. 미군 폭격으로 살해당한 3000명 이상의 아프간 민간인들과, 미국의 봉쇄조치로 목숨을 잃은 수십만 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단지 아프간인 이라크인이라는 이유로 추모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경멸과 뭐가 다를 것인가.

사실 종교나 민족주의에서 자주 나타나듯 ‘위대함’에 대한 신조와 이방인을 경멸하는 문화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 멀리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에 대한 인종청소와 아프리카인들의 노예화, 그리고 테오도어 루즈벨트 같은 제국주의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신조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위대한 미국’을 신봉하는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1999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이렇게 기고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 없이는 결코 제 역할을 못한다 – F15 전투기 제작사 맥도널 더글러스 없이 맥도널드(햄버거)는 번창할 수 없다. 실리콘밸리 기술의 안보가 지켜지는 세상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주먹은 미 육해공군 및 해병들이다.”

한 국가의 과도한 이익추구는 국제적 범죄행위

여기서 시장과 맥도널드, 전투기와 첨단기술은 미국의 위대함과 스탠더드를 상징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신의 섭리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기도 한데 이를 보이지 않는 주먹에 대비시킨 것은 참 교활한 언어감각이다. 그는 미국의 위대함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단, 미 군사력을 놓고 ‘보이지 않는’ 주먹이라고 하고 할리우드를 빼먹는 등 몇 가지 허술한 점이 있으나 주먹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앙, 주먹을 맞는 이들에 대한 철저한 무시를 그대로 드러낸다.

프리드먼의 신념은 가끔 이단자의 실토를 통해 더 분명히 드러나기도 한다. 20세기 초 중남미와 중국 무력침공에 참여한 한미 해병대 소장은 1933년 이렇게 토설했다.

“군복무기간 동안 나는 대사업가, 금융업자, 월가를 위해 일하는 고급 깡패였다. …한마디로 나는 자본주의의 조직폭력배였다. …나는 1914년 멕시코가 미국의 석유산업 이익을 지키는 데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나는 아이티와 쿠바가 내셔널 시티은행이 이자를 회수할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나는 중남미 대여섯 나라가 월가에 이익이 되는 곳으로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나는 1916년 도미니카 공화국이 미 설탕산업의 이익이 보장되는 곳으로 만들었으며 중국에서는 스탠더드 석유회사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도왔다.… 회고하건대 알카포네에게 한마디 해둘 걸 그랬다. 당신은 기껏 세 지역에서 판을 벌였지만 나는 세 대륙에서 벌였다고. Finger men(손가락요원), 적이 누군지 가리킨다. Muscle men(근육요원), 적을 섬멸한다. Brain men(두뇌요원), 전쟁을 계획한다. 총두목(Big Boss)은 슈퍼 국가자본주의다.”

미국의 국익이 어떻게 지켜지는지에 대한 증언이다. 국익 절대론의 신봉자 중에, 프리드먼과 조지 부시 및 그런 미국인들의 스승으로서 전후 미국의 세계전략을 기초하고 추진했던 조지 케넌이 있다. 케넌은 미 국무부 정책기획처장으로 있던 1948년 비밀전략문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세계 부의 50%를 차지하고 있으나 인구는 세계인구의 6.3%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질시와 반발의 대상이 되지 않기는 힘들다. 향후 우리의 진정한 과제는 이러한 위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수준 향상이나 인권, 민주화 같은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노골적인 힘으로만 상대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이상주의적 구호에 방해를 덜 받을수록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

이처럼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가치에 대한 경멸은 미국의 전후 세계구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세계의 자원과 부를 독점하고 미국인들이 낭비적인 소비를 지속하는 데 대하여, 윤리적 성찰을 허용하는 것은 국익의 장애물,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는 인격파탄자가 아니라 미국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유능한 전략가의 신념이었다. 삶과 인간에 대해 이토록 뿌리깊은 정치적 경멸이 있을 수 없다.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만든다고 한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쫓는 국제정치의 필연적인 귀결일 것이다. 그러나 전체의 20%도 안 되는 자원과 부를 가지고 세계인구 80%가 연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 나라의 과도한 국익 추구를 위한 국제적 범죄행위가 얼마나 더 허용될지는 의문이다.

이대훈 영국 브레드포드대 평화학 박사과정 d.lee1@breadford.ac.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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