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1월 2004-01-01   1428

[특집]<2004년 한국사회, 참여만이 희망이다!> 성미산을 지켜낸 힘

공동육아에서 차 병원까지, 주민참여 꽃피운 서울 마포구 주민자치운동


교육, 육아, 주택, 환경, 먹거리….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우리 삶의 질을 규정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명쾌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가꾸는 자치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여기 마포구 자치운동의 사례 속에서 2004년 새해, 희망의 근거를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03년 11월 8일 마포구의 조그만 산에 돌배기 아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기쁨이 가득했다. 준비한 떡과 막걸리를 나누고 아이들에게는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과자가 돌아갔다.

이날 행사는 마포구의 유일한 자연숲 ‘성미산’에 배수지를 짓겠다는 서울시에 맞서 2년 3개월 동안 산을 지키기 위해 싸운 주민들이 승리를 자축하는 마을잔치였다. 지난 2001년 7월 처음으로 성미산 배수지 공사를 알게 된 지역 주민들은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모임’을 구성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2만여 명의 주민 반대서명을 받고, 2000여 명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한 두 번의 숲속음악회를 개최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1월 29일 새벽 성미산의 나무들을 기습적으로 벌목한 이후에는 설에 고향에도 내려가지 않고 산에서 차례를 지냈고, 산위에서 120여 일간 천막농성을 하면서 산을 지켰다. 이날의 축제는 그 긴 고통의 시간이 맺은 ‘서울시의 공사 중단 결정’ 열매를 수확하는 자리였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산 하나를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싸워 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성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마포구 성산, 망원, 연남, 동교, 서교동 등 이 지역의 지역공동체를 가꿔온 사람들의 힘이었다.

지역에서 함께 아이 키우기 ‘공동육아’

1994년 ‘우리 아이 우리가 함께 키운다’라는 공동육아의 철학에 공감한 사람들이 모여 연남동에 ‘우리 어린이집’을 만들었다.

이 모델이 널리 알려져 95년 성산동 ‘날으는 어린이집’, 2002년 ‘참나무 어린이집’에 이어 초등학생을 위한 ‘도토리 방과 후 교실’, ‘풀잎새 방과 후 교실’이 잇달아 생겨났다. 현재 공동육아에서 함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126명이고, 공동육아의 교사는 25명이다.

공동육아를 중심으로 아이를 함께 키워온 부모들 역시 아이들을 매개로 가까워 졌고, 그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아이들이 자라는 지역의 환경으로 모아졌다. 부모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이 동네를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는 공감이 생겨났고, 이것이 지금의 성미산 주위 마을공동체의 단초가 됐다.

이들의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의 첫 시도는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이하 마포두레생협)이었다.

생협 설립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우리마을 꿈터’, ‘동네부엌’, ‘차병원’, ‘마포연대’ 등의 자치공동체 모임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먹거리 공동체 ‘마포두레 생활협동조합’

마포두레생협은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 공동구매를 주요사업으로 하는 생활협동조합으로서 2000년 봄에 준비모임을 가진 후 2001년 2월 마포두레생협을 정식으로 창립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공동육아 활동을 벗어나게 된 부모들은 공동육아에서 확인한 공동체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지역주민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마포두레 생활협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생협 상근자 구교선 씨는 “처음 생협을 함께 준비했던 사람들 다섯 명이 거의 두 달 동안 매일 살아온 얘기, 자신의 꿈들을 나눴어요. 그때 생긴 서로에 대한 믿음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마포두레생협은 처음 30여 가구로 시작해 현재 조합원이 500가구를 넘어섰다. 생협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산악회, 농사모임, 아토피, 부모역할 등에 관한 각종 동아리 활동과 모임 운영지원, 매년 열리는 성미산 마을축제, 숲속음악회, 마을운동회, 그 밖의 지역주요 사안에 대한 공동의 대처를 조직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성미산 지키기 운동’이었다. 생협 조합원들은 2003년 3월 13일 성미산 배수지 공사를 위해 용역깡패가 투입되었을 때 직장에도 가지 않고 13시간 동안 용역깡패에 맞아가며 산을 지켰다.

공동 여가생활을 위한 ‘우리마을 꿈터’와 가사노동 품앗이 ‘동네부엌’

2003년 8월 생협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은 어른과 아이들의 여가 생활을 지역공동체 내에서 함께 해결하기 위해 열린 문화센터 개념의 마을학교를 만들었다. 꿈터에서는 요가, 택견, 글쓰기, 영어, 풍물놀이 등 강사가 진행하는 특강이 있는가 하면 ‘동화 읽는 엄마모임’, ‘책 읽는 모임’ 등의 동아리활동도 있다. 그리고 어린이 도서관도 운영된다.

동네부엌은 무공해 유기농 농산물 먹거리를 조리된 상태로 언제든 필요할 때 구입할 수 있는 반찬가게다. 아이들을 위해 채식과 자연식을 고민하던 동네 주부들이 공동 출자해 만들었다. 음식 재료는 마포두레생협이 파는 유기농 식재료를 활용하고, 한 달에 7만 원을 내면 두 가지 반찬을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만큼 격일로 배달해주고 있다. 16년간의 영양사 생활을 접고 동네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박미현씨는 “몸은 힘들지만 동네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진다고 생각에 뿌듯하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였다.

국내 첫 조합형 자동차 정비소 ‘성미산 차(車) 병원’

성미산 차(車)병원은 국내 최초의 조합형 자동차정비업소로 성미산 싸움 과정에서 천막농성의 추위를 잊기 위해 만든 술자리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안심하고 자동차를 맡길 곳이 없다’는 승용차 이용자들의 아쉬움이 이런 형식의 자동차 정비소 설립 결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 사람이 차병원 이사장을 맡아 조합원을 모으는데 나섰고, 또 한 사람은 직장을 그만두고 차병원의 운영을 책임지기로 했다. 자본금은 1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뜻을 같이하는 지역사람들이 공동출자해서 만들었다. 현재 성미산 차병원의 조합원은 130가구, 자본금은 1억2000만 원이고, 정비기술자 2명과 운영을 책임지는 1명 등 총 3명이 일하고 있다.

성미산 차병원 사장 진상돈씨는 “정품만 쓰며 꼭 고쳐야 할 것만 고치는 정비업소, 주치의처럼 차를 관리해 주는 카센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미산 차병원의 조합원이 되면 정기적인 점검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출자비율에 따라 이익배당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익금 10%의 지역 환원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도시형 대안학교 ‘성미산학교’

공동육아를 졸업하고 초등, 중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우리의 아이들, 이 지역의 아이들을 지역 속에서 공동체적 삶을 느끼고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며 자라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런 물음이 도시형 대안학교 ‘성미산학교’의 토대가 되었다.

성미산학교는 중등.고등 과정을 통합한 12년제 학교로 내년 9월 개교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20명의 교사들이 학교의 교육철학과 교육 과정을 연구하고 있으며, 40여 명의 주민들이 학교 만들기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안들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마포 전 지역의 공동체를 꿈꾸는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는 마포지역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의 모색과 실험, 그 성과를 모아 마포 전체 주민들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시도로 설립됐다. 2년여에 걸친 고된 성미산 싸움의 과정에서 지역민들은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민조직이 없었던 아쉬움도 마포연대 결성에 큰 역할을 했다.

구청과 구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주민을 위한 일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되지만 현실에서 주민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주민들은 잘 알지 못하고, 때때로 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되는 구의 사업에 답답함을 느껴왔던 터였다.

마포연대는 주요사업을 지역현안 조사와 구정 감시, 성미산 생태공원화 사업, 지역환경연구 사업, 지역 대안언론 만들기, 주민복지와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사업 등 크게 네 가지 사업 내용을 정해 이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지역 공동체가 국가적 단위에서 해결해야 할 교육, 복지, 환경 등의 과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민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자치공동체는 때로는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때로는 정치와 행정이 지역에 올바르게 구현될 필요가 있는 영역에서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무한한 역할을 할 것이다. 희망은 분명 거기에 있다.

설현정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