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1월 2004-01-01   829

[포커스] 개혁법안은 가뭄에 콩 나듯, 역사후퇴 법안은 줄줄이!

2003년 국회 평가


참여정부가 어느덧 출범 한 해를 넘기고 있다. 지난해 시민사회가 제기한 이슈들이 제도 정치권에 의해 얼마나 수용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살펴봤다. 편집자 주

참여정부 출범 첫 해인 올해 시민사회의 이슈들을 정리해보자. 정치 분야에서는 단연 정치.선거제도의 개혁이었다. 경제 분야는 재벌개혁의 지속, 공평 과세, 부동산 시장 안정 요구라는 큰 흐름 아래 각 이슈들이 터져 나왔다. 강금실 법무장관 임명을 계기로 사법개혁 요구도 높았다. 검찰독립의 완성, 법원 인사제도의 개혁, 참심제.배심제 도입 등이 사법 분야의 개혁 이슈였다.

손해배상.가압류 철폐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노동계가 시민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한 뜨거운 현안이었다. 농민 운동에서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특별법 저지가 현안이었다. 여성 분야에서는 단연 호주제 폐지가 최대 사업이었다. 환경 분야에서는 새만금 개발과 부안 핵폐기장이라는 두 개의 대형 환경 이슈를 둘러싸고 개발 패러다임의 전환,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저항이 거셌다.

인권 이슈로는 네이스(NEIS) 문제 등 정보인권보호 제도화, 집시법 개악과 테러방지법 신설 반대 투쟁, 사회보호법 폐지 등이 대표적인 이슈였다.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질병군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 의료기관 평가제도 실시, 국민연금법과 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 등이 요구사항이었다. 반부패 이슈로는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 내부 고발자 보호제도 강화, 정보공개법 개정 등이 수년 전부터 꾸준하게 요구해온 사안이었고, 고위공직자의 이해충돌 해소가 새로운 의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모든 시민단체가 함께 연대한 이슈는 역시 이라크파병 문제였다.

막판에 건진 경제 분야 등 개혁성과

이들 시민사회의 요구는 제도 정치권에 의해 얼마나 수용됐을까? 한마디로 초라하다. 그러나 2003년 막판에 상속.증여 완전포괄주의 본회의 통과와 증권집단소송법 법사위 통과 등 경제분야에서 중요한 성과물을 챙기면서 총체적 보수 기류 속에서 조그만 위안을 얻었다.

국회 본회의는 2003년 12월 9일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승수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의 도입으로 ‘세 부담 없는 부의 무상이전’이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월 18일 현재 아직 본회의 통과가 남았지만 증권집단소송법의 17일 법사위 통과도 3년여에 걸친 참여연대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다. 박근용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은 “법 적용 시기와 소송비용, 원고 및 원고대리인 자격제한 등 일부 내용에 있어 아쉬운 점이 많다”면서 “그러나 이 법이 제정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자본시장 건전화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앞으로 증권집단소송법의 소 제기 실효성을 높이는 활동을 계속 펼친다는 계획이다.

정보공개법 개정에서는 국회 행정자치위가 정보공개심의위원회 구성 및 위원회의 민간인 참여, 비공개 정보의 세부 기준 마련, 정보공개 결정기간의 단축 등을 수용한 정보공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2월 18일 현재 국회 법사위 심사를 남겨둔 상태지만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인권 분야 최대 성과로는 전향제도 폐지 이후 변형된 형태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짓밟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적된 준법서약서 제도의 폐지다. 인권 침해 논란을 빚었던 네이스(NEIS)가 정부-교육단체-시민사회의 타협과 양보에 의해 해결책을 찾은 것도 평가할 만하다. 국가인권위가 권고안을 낼 정도로 정보인권 침해가 뚜렷한 교무.학사, 진.입학, 보건 등 3개 항목의 분리운영을 받아들인 것이 최대의 성과다.

그러나 인터넷의 성장과 함께 중요한 시민사회의 가치로 떠오른 프라이버시법 제정 등과 같은 정보인권의 제도화는 여전히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또한 환경 이슈로서 부안 핵폐기장 건설의 원점 검토 역시 반환경적인 에너지 정책의 전환이라는 근본적인 시민사회의 요구에 부응한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반인권.반개혁 등 역사 후퇴도

이런 몇몇 성과물에 비해 반개혁.반인권 법안들의 제도화는 그 사안의 심각성에서 성과물을 압도한다. 우선 거의 모든 시민단체가 한 목소리로 외친 현안은 이라크파병 반대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4당 대표의 회동이라는 정략적 방법을 거쳐 12월 18일 현재 올해 안에 국회 동의안 처리 가능성이 거의 확정적이다.

테러방지법 신설과 집시법 개악은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반개혁, 반인권 법안으로 기록될 만하다. 참여정부의 출범에 내심 국가보안법 폐지까지 기대했던 시민사회로서는 정부가 주도한 이 두 법안이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집시법 개악안은 12월 11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해 조만간 본회의 통과가 거의 확실시된다. 테러방지법 신설 역시 정부가 연내 처리를 공언하고 있고, 일부 의원들을 제외한 국회 역시 전체적으로 동조하고 있어 일부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법률적 검토를 마치면 곧바로 입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노동 현안에서 참여정부의 뚜렷한 보수화 경향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 현안 중 손배.가압류 철폐,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단순한 노동계의 요구를 넘어 시민사회가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인 사안이다. 그러나 손배.가압류 철폐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최저임금 보장 수준에서 손배.가압류 제한’이라는 비현실적인 방안을 고집하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있어서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차별철폐의 핵심 내용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등 참여정부 출범초기의 노사관계 방향에서 크게 후퇴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보건 분야에서 정부는 질병군 포괄수가제의 전면시행 철회, 의료기관평가제도에서 평가주체로 병원협회 선정 등 보건복지부가 수년에 걸쳐 준비해온 제도를 의료이익단체의 로비로 한 순간에 무산시켰다. 복지 분야에서는 신빈곤층 대책 등 새로운 복지 현안에 전혀 대응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의 개정 의지가 엿보이지 않고, 국민연금법은 가입자 권리를 약화시키는 등의 개악이 복지부 주도로 이뤄져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법안 통과 여부 자체가 의심스럽거나 법안의 핵심 알맹이가 훼손될 위기에 놓은 이슈들도 쌓여 있다. 이들 법안들의 위기는 다분히 정치권이 총선을 앞두고 표의 결집력과 여론 주도력을 갖춘 로비집단, 이익집단을 의식하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각종 개혁안, 총선 일정표 속에서 풍전등화

에스케이(SK)비자금 정국으로 결정적 국면을 맞은 정치개혁은 한나라당이 중심이 된 입법부의 완강한 개혁 저항 속에서 낙관적 전망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2월 18일 현재 국회 정개특위에서 논의되는 정치개혁안을 놓고 보면, 정치자금 고액 기부자의 신상 공개 등을 비롯한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정치자금 및 선거법 위반자의 처벌 강화, 정치신인 진입장벽 약화 등 중요한 개혁안이 후퇴하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 확대, 선거구 획정의 민주성 등 선거제도 개혁은 각 당의 첨예한 이해대립과 현역 정치인의 기득권 집착 등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비례대표 50%의 여성 할당, 정책정당화를 위한 제도 개선안 등은 최대 정당인 한나라당도 공감하고 있어 그나마 제도화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임박한 총선 국면에서 여성계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던 호주제 폐지도 16대 국회 통과에 빨간불이 켜졌다. 호주제 폐지는 법사위 위원 등을 비롯한 국회의원에 대한 호소와 압력을 병행해온 여성계의 노력으로 한나라당의 장외투쟁 이전까지만 해도 통과 가능성을 높였었다.

그러나 2004년 총선을 4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법사위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성연합 이구경숙 부장은 “최근 의원들의 입장을 조사 해보니 20여명이 유보에서 폐지 찬성으로 입장을 바꿔 기대감을 높였다”면서 “만약 16대 국회에서 폐기된다면 정부에서 바로 법안을 재발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16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폐기된다면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기약할 수 없는 셈이다.

이 밖에 서민들의 비원이 담긴 정부의 종합 부동산 대책은 보유세 인상에 반대하는 서울시와 한나라당의 비토로 벌써부터 삐걱거리고 있고, 관치금융 철폐, 분식회계 근절 등 투명성 강화를 위한 재벌개혁 과제들도 경제부처의 무능과 무원칙 속에서 전망을 잃은 상황이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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