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1월 2004-01-01   356

[회원마당] <에세이> 신년사 쓰기

새해다. 언제나 새해는 ‘어느덧’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찾아온다. 이 당혹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해마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신년사를 써보려고 노력한다. 용케 성공한 적도 있고, 게으름을 이기지 못해 못 쓴 적도 있다. 신년사는 다가올 새해에 대한 다짐이고, 매년 써 놓은 신년사는 다짐의 역사이다. 지난 신년사들을 읽으면서 지나온 흔적을 살피는 것 못치 않게 지난 다짐을 돌아보는 것도 감회가 새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라는 제목의 신년사에서 나는 미래에 대해 대단히 도전적이었다. 2003년을 맞이하는 다짐이었다.

미래는 현재의 지속이 아니라 앞으로 올, 새로운 모습의 현재이다. 그래서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미래는 시간에 속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속한 것이고, 여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의존하는 것이다. 상상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하지 않는 미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상상이 먼저이고, 그 이룸은 나중이다.

하지만 21세기 벽두에 나는 현재에 충실하기로, 그래서 겸허히 그 결과로 다가오는 내일을 맞이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비로소 긴 터널의 끝을 내 등 뒤로 한다. 감히, 불안과 두려움, 가난과 쓸쓸함, 상처와 인내로 버텨왔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희롱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움과 여유, 즐거움, 따듯함,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격정적이지만 안정감 있는, 그래서 늘 충만하고 살아있는 나의 미래를 희망한다. 도전은 이제 새로운 의미다. 미래 전부를 기획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살아있는 구체적인 도전을 얻는다. 현실의 욕망은 미래의 실현을 보장한다. 다면성과 중층성에 대한 강렬한 집착은 획일화와 파편화의 가공할 경향에 저항하는 우리의 무기이다. 성찰과 소통이야말로 그 무기를 연단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될 터이다.( ‘감염되는 희망’이라는 제목의 나의 2000년 신년사 중에서.)

하긴 1999년에 나는 현재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차했었고, 또 대견해 했었다.

망명(?) 따위는 꿈꾸지 않는다. 내가 있는 곳이 내가 꿈꾸는 자리이고, 내가 꿈꾸는 자리가 내가 살아갈 영토다. 내 꿈을 다른 곳에 묻고 내 몸이 방랑하게 하지 않겠다. 고백컨대 그 서러움에 이제 지쳤다.

2004년 신년사의 제목은 ‘새로운 인생’이다. 미래를 포획하려는 나의 의지는 하늘을 찌르는 듯싶다. 다짐의 역사는 분명 실현의 역사와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이뤄 놓은 것 못치 않게 이루려던 열망도 명백한 나의 역사이다. 다짐을 돌아보는 것으로도 새로운 내일을 맞는 힘이 된다.

어떠신가. 2004년 신년사를 한 번 써보심이. 그래서 그 다짐의 역사를 함께 보존하는 즐거움에 동참하지 않으실는지.

이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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