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5월 2013-05-10   1617

[특집] 캐네디가 2013년 한반도에 던지는 함의

캐네디가 2013년 한반도에 던지는 함의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참여사회 2013년 5월호 (통권 198호) <특집>

 

2013년 한반도에서 떠올린 케네디의 제안

 

1963년 6월,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박하지만 한 귀로 흘려듣곤 하는 ‘세계 평화’에 대해 말하겠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케네디는 인간이 조성한 핵전쟁의 위기 앞에서 ‘평화는 실현 불가능하고,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패배주의적인 생각과 태도를 바꾸자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소련의 태도 변화가 있기 전까지 세계 평화나 군비축소 주장이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소련과 냉전에 대한 그 동안의 ‘자신’들의 태도를 되돌아보자고 말했다. 

 

케네디는 1961년, 1962년 베를린과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인들에게 소련에 대한 강력한 임전 태세의 연설을 하면서 핵전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장본인이었다. 핵전쟁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감이 극에 달해 있었고, 핵무기 축적을 우려하거나 군비축소를 말하면 무책임한 이상주의자로 비웃음을 샀던 냉전 시대였다. 미 정치권과 군부는 전쟁 끝에 미국인 두 명과 소련인 한 명이 남게 되면 그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는 자기 파괴적인 대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고, 소련의 군사적 능력을 과장하며 군비증강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날 연설에서 케네디는 “한 쪽의 의심이 상대방의 또 다른 의심을 낳고, 새로운 무기가 또 다른 대응 무기를 만들어내는 위험한 악순환에 갇혀”있는 두 나라가 “이 땅에서 살 만한 가치가 있도록 하고,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삶을 가꾸고 희망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평화”에 초점을 맞추자고 선언했다. 그리고 워싱턴과 모스크바 사이의 핫라인 설치, 전면적인 군비축소를 향한 협상 재개와 핵실험 금지 조약을 만들기 위한 조치들을 열거했다. 위기의 극단에서 케네디는 적대와 갈등이 반복되는 궤도에서 벗어나는, 전쟁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다. 안타깝게도 그 해 케네디가 사망하고 난 후 핵무기에 대한 숭배와 군비경쟁의 관성은 고삐가 풀린 채 기나긴 냉전을 거쳐 테러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2013년 지금 케네디를 떠올리는 것은, 50년 전 평화로 가는 새로운 길을 호소하게 했던 당시의 전쟁 위기가 바로 한반도에서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오랫동안 파국의 궤도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서로 마주보고 맹렬히 달리고 있다. 서로가 위기를 부추기는 자신의 행위는 돌아보지 않고 상대방의 변화를 강제하려고 한다. 그리고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는데도 자신의 태도를 고집한다.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일단 멈추고, 상대와 자신의 태도를 들여다보고,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궤도 전환 없이 달려온 폭주 기관차 한-미-북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핵실험, 대북 제재와 반발, 그리고 군사적 대치 구도는 오랫동안 단련된 시민들에게는 익숙한 갈등의 반복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2013년 북미 간 대립의 실상은 대단히 위태로운 것이었다. 미국은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 기간 중에 북한에게 보란 듯이 핵전력을 총동원해 무력시위에 나섰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유력 언론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전쟁 게임 시나리오 일명‘플레이북playbook’에 따른 것이다. 괌에서 B-52 전략폭격기가 출격해 한반도 상공에서 비행 훈련을 했다. B-52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커티스 르메이가 지휘했던 전략공군사령부의 핵심으로, 일본 비키니섬에 수소폭탄을 투하했고, 베트남과 이라크에 엄청난 폭탄을 쏟아 부었던 ‘죽음의 폭격기’다. 북한의 지하 시설과 같은 목표물을 겨냥한 지표 관통형 핵폭탄을 탑재한 스텔스 B-2 폭격기도 미 본토에서 출격하여 군산 앞 직도사격장에서 훈련탄을 투하하기도 했다. F-22 스텔스 전투기가 날아들었고, 핵잠수함과 이지스함까지 동원되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공격 계획을 2001년부터 핵태세검토(NPR)와 ‘개념계획 8022’을 통해 발전시켜 왔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채 북한을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수 미국의 핵폭격기들이 한반도 상공을 드나드는 것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은 괌, 하와이, 미 본토 공군기지를 중장거리 미사일로 타격하겠다며 응전의 태세를 갖추었다. 평양주재 외교관의 철수를 권고하는 등 북한발發 핵전쟁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과거 핵무기를 포기했던 리비아의 최후를 상기하면서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분명히 했다. 핵실험을 한 북한을 제재하고 핵포기를 압박하려는 한국과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핵무기에 대한 북의 집착은 더 강해졌다. 

 

남과 북도 자기 억제 능력을 상실한 것처럼 공세적이었다. 북은 키 리졸브 훈련이 실시되기 전에 한국의 대북 제재 참여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비난하며 정전협정 백지화, 판문점 대표부 활동 중지, 유엔사와 북한군 간의 직통 전화 차단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도발 원점 타격은 물론 ‘선제 타격’ 의사를 숨기지 않았던 한국군은 북의 도발 시 “그 지휘 세력까지 강력하고 단호하게 응징할 것(2013. 3. 6, 합참)”이라고 응수했다. 개성공단 인원의 억류 가능성, 상황 발생시 ‘미 특수부대 투입’ 등의 발언까지 더해졌다. 정부의 대화 제의는 거부되었고, 북은 대화를 하려면 대결 자세부터 버리라고 요구했다. 

 

참여사회 2013년 5월호 (통권 198호) <특집>

 

 

60년간 반복된 실패, 새로운 길이 필요한 이유

 

한반도에 핵전쟁 위기가 조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하다. 핵위협이 또 다른 핵위협을 낳고, 군비경쟁이 그 자체로 위기를 불러오는 상황에서 애초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규명하고, 누구의 탓인지 논쟁하는 것은 한가해 보인다. 분명한 것은 핵폐기를 압박하기 위한 군사적 위협이나 제재가 핵폐기의 문턱을 더 높이고 있고, 한반도는 언제든지 전쟁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에도 유지되던 개성공단마저 끝내 폐쇄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막대한 피해도 문제이지만, 공단 조성으로 후방으로 물러선 북한군을 다시 제자리로 불러오는 일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2000년 남북공동선언 등으로 남북관계의 질적 전환을 추구했던 김대중 정부 이래로 한국 정부는 군비증강과 한미동맹 재조정 등을 통해 안보국가의 성격을 한층 강화해왔다. 선군정치를 내세우며 핵무기고를 늘리고 있는 북한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서로 안보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가운데 새로운 남북관계로 진입한 듯 했던 남과 북은 쉽게 적대 관계로 돌아섰다. 미국과 소련이 그러했듯이 그 중심에는 강하고 우세한 군사력이 국가 관계를 결정한다고 믿는 소위 ‘현실주의자’들의 비현실적인 집착이 있다. 이들은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 관계에서 물리적 억제만이 평화를 유지해준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군사적 태세가 가장 중요하며, 군사적 우세는 절대적 수준이어야 한다. 화해와 교류협력과 같은 공동의 이익이나 무력 사용 배제, 흡수통일 배제 등은 상대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거나 현실을 모르는 주장으로 치부한다. 지금 한반도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러하다. 

 

다시 케네디로 돌아와서, 편집증적인 적대감과 군비증강을 거부하고, 상대방과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는 평화를 생각하고,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발짝도 새로운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부침을 거듭하면서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현 상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군비증강을 하더라도 국가안보는 늘 위험에 처해 있을 것이다. 역내 군비경쟁과 군사적 갈등도 지속될 것이다. 벌써 퇴행적인 핵무장론이나 전작권 환수 연기론이 제기되고 있고, 대량 무기 구매와 주한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외부의 위협을 이유로 민주주의, 인권에 대한 제약을 정당화하는 억압적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60년 이상 반복되어 온 이 궤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껏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 새로운 상상력이 지금보다 더 필요한 때가 있었던가.  

 

 

박정은 자발적 야근을 하며 일에 푹 빠져 살다가, 재미있게 살기로 관심 이동 중. 5월 산자락 계곡 걷기와 참여연대 사람들을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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