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1233

700불합격 통지로 편입기회 놓친 방혜원씨

700불합격 통지로 편입기회 놓친 방혜원씨

서두를 어떻게 꺼내야 할 지 참으로 난감하다. 섣부른 예단이 될까 걱정이 앞서지만, 오늘 소개하려는 사례가 결과적으로 ‘찾기 어려운 권리’를 찾는 사람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지만 소중한 권리를 찾는 시민들의 아름다운 행진’을 소개해 온 필자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사례를 소개하는 기저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당사자에게는 송구하지만 결과보다는 동기와 과정을 중요시하는 이 글의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권리의 확장 과정에서 유의미한 사례가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96년 대림전문대 전자통신학과에 입학한 방혜원 씨(22세)는 졸업 직전인 97년 12월 통신공사 계열사에 취업, 계약 및 입찰 관련 업무를 보았다. 그런 방씨가 대학교 편입을 결심하고 퇴사한 데에는 전문직 여성이 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업무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에 위축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퇴사 이후 집에서 시험을 준비하던 방씨는 98년 8월부터 편입학원에 등록,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본인이 생각해도 기특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방씨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입술을 깨물며 공부했던 기간’이었다.

크리스마스에도 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제적생에다 군대 간 남학생의 공백까지 포함해 편입생 규모를 고시하던 대학편입제도가 바뀌어 순수 제적생 규모로 한정되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10 : 1을 웃도는 경쟁률을 보이는데 내년부터는 오죽할까 하는 걱정이 당연했다.

“시험을 앞둔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절감했기에 후회없이 공부했어요. 새벽 4시면 문을 여는 편입학원 8층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거든요.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도서관에 나갔더니 친구랑 저랑 둘만 나왔더라구요. 그때 친구랑 약속했어요. 꼭 대학가서 만나자고.”

함께 편입을 준비하던 한 친구의 죽음도 목격했다. 시험 한 달전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세상을 떠난 것이다. 방씨는 애써 고개를 돌리고 독하게 공부에만 매달렸다. 돌아보니 도서관에서 살던 때가 차라리 미래가 있어, 꿈이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여올 때면 정규 학사과정을 마친 후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직 여성으로 발돋움하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씨는 어이없는 이유로 편입학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다름아닌 700 서비스의 잘못된 정보제공 때문이다.

방씨가 1월말경 편입시험 원서를 낸 대학은 항공대, 성균관대, 광운대, 서울산업대 등 모두 4곳. 2월 7일 산업대를 끝으로 무사히 시험을 치렀지만 방씨는 열흘 후 산업대를 제외하고 모두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2월 18일. 산업대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이미 세 곳에서 불합격 사실을 확인했던 방씨는 두려웠다. 직접 가야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오후 2시경, 너무 비참할 것 같아 학교에 가서 직접 확인할 자신이 없었던 방씨는 예비소집일날 학교측에서 나눠 준 안내지에 나와 있던 ‘700서비스’ 자동응답 안내전화로 확인을 했다. 역시 불합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서너번 확인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700 서비스 담당자와는 통화도 안돼

그런데 그로부터 나흘 뒤인 22일, 방씨는 다시 한번 하늘이 무너지는 일을 겪어야 했다. 편입학원에서 합격자 확인을 위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전화를 받으니 등록은 했냐고 물었어요. 떨어졌는데 무슨 등록이냐고 했죠. 전화를 하신 분이 깜짝 놀라며 합격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하더라구요. 제가 아니라고 하니까 다시 확인해 진짜 합격했다고 하더군요. 전화를 끊고 급히 학교에 연락을 하니까 합격이 사실이었어요. 더 황당했던 것은 예비소집일날 받은 안내지에 나와 있던 2개의 700 서비스 말고 다른 곳으로 전화를 해보니까 합격자로 알려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구제를 받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20일까지 등록이 마감된 데다, 추가합격자까지 통보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기가 막혔다.

혹시 방법이 없냐는 애가 탄 물음에 학교측 교무과 관계자는 “부가적으로 이용하라고 한 것이지 전적으로 믿으라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번호를 잘못 누른 것은 아니냐”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에 대해 방씨는 직접 대조 확인이 가능한 무선 전화기로, 그것도 서너번 확인을 했기에 수험번호를 잘못 눌렀을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700 서비스’ 관계자와는 아예 통화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이상한 일은 편입학원에서 합격을 알려준 22일 다른 ‘700 서비스’는 여전히 합격안내를 해주는데 유독 방씨가 이용했던 2개의 ‘700 서비스’에서는 ‘자료가 없다’는 메시지만 흘러나왔다.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구제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한 방송사 기자에게 문의를 했다. 25일경,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그가 전한 말이 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다. ‘700 서비스’를 직접 찾아 확인해 보았는데 방씨가 합격자로 올라 있더라는 것이었다. ‘자료가 없다’는 메시지와는 정반대의 답이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앞서 이번 사례가 ‘찾기 어려운 권리’를 찾는 시민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 이유는 잘못된 정보제공에 대한 책임소재를 입증할 증거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즉 학교측의 과실일 경우 행정소송을 통해 ‘불합격 처분 취소 청구’를 낼 수 있고, ‘700 서비스’측에 과실이 있을 경우 전기통신사업법 33조 ‘사업자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용자에 대해 손해를 발생시켰을 경우 정당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이용자 보호를 요구할 수 있지만 현재, 산업대측은 직접 확인을 안한 학생측에게 일방적으로 과실을 떠넘기고, ‘700 서비스’측은 산업대측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받은 그대로 실행하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어 해결이 난망한 상황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엄연히 존재한다. 더욱이 취재 과정에서 유사한 피해자를 발견했다. 그 피해자 또한 문제의 책임 소재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돌다리도 두들겨 보자’는 표어를 격언 삼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그러기엔 우리 사회의 책임의식이 너무도 미약하고, 그에 반비례해 정보통신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당연히 정보통신문명의 책임의식, 공익적 역할을 강조해야 할 책임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학 가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친구는 합격을 했다. 그러나 연락이 없다. 친구가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방씨는 이해한다. 좀더 조사를 거친 뒤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지만, 한편으론 전송기술직 공무원시험에 새로 도전할 계획이다. 그 또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전문경력을 쌓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씨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도덕성, 책임의식 등이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으로 자리잡지 않는한 통신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사회구성원을 옭죄는 굴레가 될 수 있음을 ‘기가 막히게’ 실감했다.

손정미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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