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927

러시아펀드로 투자자 농락한 국민투신

러시아펀드로 투자자 농락한 국민투신

투자신탁회사와 투자자간의 분쟁은 대부분 투신사가 위험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확정수익률만을 제시하면서 일반은행의 예금상품처럼 포장해 고객을 기만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요즘 한창 분쟁에 휘말리고 있는 국민투자신탁증권(4월 1일부터 현대투자신탁증권으로 개명)의 러시아펀드도 이 두 가지 이유로 최근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러시아펀드는 2년 전부터 국민투신증권이 판매한 수익증권. 종류는 하이일드 1, 2호(만기 작년 11월), 베스트 인컴(만기 1월 21일), 하이리턴(만기 5월) 네 가지이다. 96년말 러시아 투자 열기를 타고 모두 러시아 국공채에 투자됐던 것들이다. 그것이 만기가 가까워오던 지난해 8월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며 회수가 불가능해졌고, 이를 알게 된 투자자들이 원금을 돌려달라고 주장하자 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의 주장은 “사전에 러시아에 투자한다는 말이 없었다”, “절대 안전하고 수익성이 높다는 투신쪽의 설명을 믿고 투자한 것이니 손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이에 대해 국민투신은 “러시아에 투자한다는 것을 미리 알렸다”며 “수익증권은 실적배당 상품이기 때문에 모든 손익은 투자자가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맞섰다. 그러면서도 “운용회사로서의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원금의 20%를 보상금으로 내주겠다고 밝혔다. 또 추가자금 투입안을 러시아펀드 손해복구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추가자금 투입안이란 피해고객이 보상금으로 받은 20%를 재투입하면 9년 9개월후에 투자원금 전체를, 보상금에 투자원금 만큼을 더 투입하면 40개월 후에 원금의 2배(실제 투입금액)를 돌려준다는 것 등이다. 이 방안에 따르면 재투입금이 많을수록 원금을 돌려받는 기간이 짧아진다. 만약 원금의 10배를 투입하면 약 6개월만에 러시아펀드 투자원금과 10배의 재투입금을 모두 돌려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 투자자들이 이 방안에 다시 자금을 투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부산 수영지점에서 러시아펀드에 가입했던 신귀분 씨는 “지금 당장 원금만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며, “한번 속은 회사에 무엇을 믿고 다시 돈을 맡기느냐?”고 반문한다. 투자자들은 이제 공정거래위원회에 국민투신을 불공정거래행위로 제소하거나 법정싸움으로까지 끌고 갈 태세다.

투신사의 고객 투자자금 편법운용

투신사란 고객의 자금을 모아서 펀드를 조성한 다음, 이를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 고객들에게 분배하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챙기는 간접투자방식의 대표적 금융사다. 즉, 개인이 직접 증시와 채권시장 등에서 증권을 사고 파는 것보다는 전문지식을 갖춘 기관투자자를 통해 큰 규모로 투자해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신사와 고객간의 믿음. 고객은 신뢰가 없는 투신사엔 당연히 투자하지 않고, 투신사는 믿고 맡기는 고객의 자금을 최대한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러나 러시아펀드 사건에서 보여지는 고객과 투신사의 관계는 이러한 신뢰가 전혀 형성돼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투신사와 투자자간의 원금상환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95년말에도 투신사가 보장하는 수익률을 믿고 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고객이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보자 법정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잇따랐다. 당시 재경원의 집계를 보면 분쟁 건수가 1,000여 건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투신사가 법으로 금지된 확정수익률을 제시하고 ‘보장각서’를 투자자에게 교부,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투신상품은 모두 실적배당상품이다. 실적배당 원칙에 따르면 투자의 손익이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가고, 따라서 투신상품의 확정적인 수익률이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투신사들은 거의 대부분이 ‘확정된 고수익 보장과 안전성’이란 이름으로 고객들을 유치한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뺌하고 투자손실은 그대로 고객에게 돌리기 일쑤다. 심지어는 고객의 재산을 빼돌려 편법으로 운용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미 투신사의 관행이 된 지 오래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한때 투신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기수 씨는 “구조적인 부실을 안고 있는 투신사가 실적으로 그것을 메꾸려다 보니 무리수를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채가 과다하게 많은 투신사가 경영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그것을 일부 고객의 자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일단 과장광고로 실적을 올리고 제1금융권에 예치, 보호하게 돼 있는 고객의 돈을 회사의 자산에 편입시켜 부채를 갚는 데 사용하거나 또는 그것을 담보로 다시 자금을 대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투신사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법은 엄연히 존재한다. 「증권신탁업법」이 그것인데, 이에 따르면 투신사는 고객의 자금을 회사의 자금과 분리 보관해야 하고, 수익이 불규칙적인 수익증권의 확정적 수익률 제시는 금지돼 있다.

‘여의도 투자자 권익연구소’를 개설하고 있는 김주영 변호사는 “있는 법을 못 지키는 것이 문제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힘있는 자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고 있다. 개인이 사기를 치면 당장 법의 심판을 받는데, 덩치가 큰 기업이 횡령을 하면 형벌을 받지 않는다”고 개탄한다.

투자자들의 비합리적인 투자관행도 투신사에 문제를 만들 핑계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일반 투자자들은 투신사와 같은 제2금융권을 일반 은행과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투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펀드 계약시 약관과 투자설명서를 교부받고 이를 확인해 주는 절차가 있는데, 대부분은 투신사에 일임한다. 투자한 자금의 운용내용을 확인하고 감시할 의무도 투자자에게 있는데, 이 또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고객에게 투자신탁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내용을 가르쳐줄 의무가 투신사에게 있다는 것이다.

투신사, 잘못 인정하고 시정 노력해야

이후 러시아펀드 사건은 어떻게 될까?김주영 변호사는 “투자자는 투신사 및 그 임직원의 불법행위로 인해 입은 손해를 청구할 수 있다. 투자손실 전체, 즉 원금에 기대이자를 합한 금액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한다. 물론 투자자의 가입경위 등을 고려해 과실상계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사건이 법정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그 이전에 투신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사건은 해결되지 않는다. 몇년전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투신사는 법적인 제제뿐만 아니라 증권감독원으로부터 경고조치를 받기도 했다. 또 신탁재산의 부적절한 운용에 대해서도 증감원의 기관 경고를 받은 일이 바로 지난해말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내용의 사건들이 반복 발생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달 정부와 IMF의 협의안에는 투신사들의 연계차입금(고객의 재산에서 끌어다 쓴 돈) 중 내년 3월까지 추가로 1조 8,000억 원(전체의 20%)을 갚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제2금융권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투신사에 대해서도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정이 얼마나 변화될 지는 미지수지만, 시도 자체는 높이 살 만하다.

김현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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