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360

당선은 못시켜도 낙선은 꼭 시킨다

당선은 못시켜도 낙선은 꼭 시킨다

우리가 귀찮다고요? 16대 총선 때 봅시다. 국민의 감시가 얼마나 무섭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해줄테니까.”

‘개혁 대상 1호’인 정치권에 대한 대수술을 위해 국민들이 직접 나섰다. 국민들이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의정감시활동을 벌임으로써 의회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암세포가 무엇인지 밝혀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들이 직접 국회에 들어가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감시하고, 문제의원들의 소환을 촉구하는 일은 분명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다. 심지어 국회 529호실 사건에 대해 시민단체의 대표들이 시민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국민회의, 한나라당은 물론 국가정보원까지 방문, 조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과거 공정선거 감시활동에 머물던 수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선거 때마다 공정선거 감시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선거기간 15일 가지고 정치인을 평가하기엔 한계가 많았어요. 그것 가지고는 정치발전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느꼈죠.”

오랫동안 공선협 활동을 전개했던 기독교윤리실천협의회(기윤실) 양세진 씨의 이야기다.

국민들이 직접 의정감시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작년 ‘뇌사국회’가 이어지면서부터였다. 그동안 쌓여왔던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시민단체들로 하여금 ‘의정감시’를 하게 만든 것이다.

뇌사국회가 의정감시운동 촉발제

정치개혁시민연대(정개련)는 작년 8월, 시민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의회발전시민봉사단’을 만들었다. 이들은 교수와 전문가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평가기준을 마련한 후 곧바로 정기국회 감시에 들어갔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국회 상임위의 방청권을 얻어내기 위한 싸움이었다. 과거의 타성과 권위주의에 젖어 있던 의원들로서는 ‘남에게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마침내 10월 23일 국회 상임위의 국감을 방청할 수 있게 된(결국 못 들어간 상임위도 있었지만) 의회발전시민봉사단은 시민의 눈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감시, 평가해 나갔다. 점심식사 후에 술 취해 국감장에 들어오는 의원, 질문만 하고 답변은 듣지 않은 채 나가버리는 의원, 상습적으로 결석하는 의원들이 시민감시단에 의해 적발당했다. 시민감시단이 매일매일 내는 평가서 때문에 의원들은 일희일비하기도 했다.

경제청문회는 더 많은 시민단체의 의정감시활동의 장이 되었다. 정개련의 ‘의회발전시민봉사단’이 정기국회에 이어 계속 활동을 하였고, 기윤실도 ‘책임정치시민모임’을 구성해 활동을 벌였다.

경실련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의정평가단을 작년 10월 정기국회를 계기로 다시 강화하였다. 시민 10명과 학생 30여 명으로 구성된 의정평가단은 지난 경제청문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첫의정평가활동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한 후 3월말에 정식으로 발족식을 가질 예정이다.

잘하면 칭찬, 못하면 퇴출

참여연대는 94년 창립과 함께 의정감시센터를 중심으로 일상적인 의정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의원 개인파일을 만들어 고스톱 의원, 각종 비리연루 의원, 자신과 관련된 상임위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의원들의 문제점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또한 그때그때 중요하게 제기되는 특정 사안은 속기록 등을 통해 내용을 검토하는 등 입체적으로 의정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이외에도 의원들이 지난 15대 총선 때 내세운 공약을 얼마만큼 지켰는지, 보좌관들은 의원들을 제대로 보좌하고 있는지 등을 하나하나 감시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의정감시활동에 대해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감시의 대상인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심하다. 출석상황이나 질문횟수를 가지고 의원들의 등수를 매기는 것이 객관적일 수 있느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대학에서도 출석일수의 20% 이상 결석하면 무조건 낙제점수를 준다. 출석은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것만 가지고 평가를 하지는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렇지만 결과를 놓고보면 출석 등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과 질문수준이 대개 맞아떨어진다는 게 시민단체 실무자들은 이야기다.

또한 국민들의 감시활동이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라고 반박한다. 정개련의 임애자 씨는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되어놓고 평가는 전문가들에게만 받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국민의 감시를 받지 않겠다는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무원칙하게 개개인의 선입견에 의해 평가를 한다면 문제가 있겠죠. 하지만 의정감시단은 교수 변호사들과 논의해서 평가의 기준을 마련하고 의정활동을 보고난 후에도 다시 함께 모여 토론을 통해 평가를 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부여된다고 봐요.”

각 시민단체들은 의정감시활동의 목적에 대해 똑같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한다. 잘하는 의원은 부각시켜 격려하고, 문제의원은 퇴출시키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의정활동을 잘한 선량의원이 지역주의 때문에 선거에 떨어지거나, 비리의원이 오너를 등에 엎고 당선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각 시민단체들은 의정감시활동을 통해 나타난 결과를 가지고 문제가 많은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한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할 예정이다. 감시에 그치지 않고 국민에게 알려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선거법에서는 선관위에 등록된 선거운동원 이외에 특정후보 지지운동을 하거나 특정후보의 낙선운동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선거법 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현재 선거법 개정논의가 진행중에 있는데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은 시민단체의 요구에 긍정적인 반면, 자민련은 반대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 이외에도 보다 시민들의 원활한 의정감시활동을 위해서는 국회 상임위는 물론 법률안을 심의하는 각 상임위의 소위원회에도 시민감시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현재 각 상임위의 관련법률을 다루는 소위원회의 회의에는 기자들도 들어갈 수 없고, 속기록도 기록되지 않는다. 이처럼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상임 소위는 관련의원들이 잇권을 챙기거나 여야간의 나눠먹기식 흥정이 이뤄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의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시민감시가 제대로 이뤄지면 자기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의원과 함께 자신도 부정적 인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민단체 간사들이 정치인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시민단체, 평가의 객관성에 신중 기해야

물론 시민단체들 스스로도 자성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도 많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