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947

생명을 가꾸는 고독의 노래

나무를 심은 사람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한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동네어귀의 오래된 나무를 좋아했다. 나무도 소년을 사랑했다. 소년은 나무에 매달리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그렇게 놀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소년이 자라 나무에게 말했다. “난 돈이 필요해.” 나무는 소년에게 나무열매를 따다 팔아 돈을 만들어 가지라고 했다. 소년은 그렇게 했다. 얼마후 소년은 나무에게 말했다. “난 집 지을 나무가 필요해.” 나무는 자기를 베어 집을 지으라고 말했다. 소년은 그렇게 했다. 그렇게 소년은 나무밑둥만 남긴 채 나무에게서 모든 걸 가져갔다. 소년이 늙어 노인이 되었다. 노인이 된 소년은 또 말했다. “이제 난 쉴 곳이 필요해.” 나무는 말했다. “난 이제 더 이상 가진 게 없단다. 하지만 내 밑둥은 네가 쉬기엔 아주 좋은 곳이지.” 소년은 나무밑둥에 걸터 앉아 쉬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

프로방스의 어느 고원지대, 나무를 마구 베어 숯을 구어 생계를 이어가는 마을은 사람들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숲은 황폐화되고 살벌한 바람만이 불어대는 버림받은 땅이 되어간다. 이 황량한 땅에 에이자부피에라는 외로운 양치기는 나무를 심고 가꾼다. 좋은 씨앗을 고르고 양들이 어린 나무를 밟지 않도록 양의 수도 줄이고 골짜기마다 정성스럽게 나무를 심는다. 더 이상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 같던 산등성이 골짜기는 다시 살아나고 계곡에는 맑은 물이 가득 흐르는 아름다운 숲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 숲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고, 관리들은 그 아름다운 숲을 보기 위해 모여든다. 그리고 그 숲을 보호하기로 하고 그 마을은 이제 숯을 굽지 못하도록 한다. 에이자부피에를 만난 한 산림전문가는 그에게 어떤 나무가 잘 자라는가에 대해 조언하지만 산을 내려오면서 ‘그 노인이 이 숲을 제일 잘 알지. 벌써 그는 알고 있을텐데…’라면서 친구에게 말한다. 1,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마을엔 사람들이 모여들어 새들과 아이들이 노래하는, 집집마다 웃음이 넘쳐나는 생명의 땅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양치기 노인은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무 심는 일을 계속한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장 지오노의 문학작품을 프레데릭 바크의 그림이 만들어낸 살아 있는 영상예술이다. 사실적인 그림, 수채화처럼 담담함이 또 다른 느낌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벌써 할리우드의 물량적인 만화공세(?)에 질려 있던 내게 캐나다의 단편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은 ‘감각’보다는 나의 ‘상상력’을 더 자극시켰던 어렸을 적 보았던 만화영화를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올라다니던 뒷동산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어릴적 뛰놀던 뒷동산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그곳은 언제 나무가 있고 개울이 흐르던 곳이었는지도 모르게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숲을 가꾸는 것이 결국 사람을 가꾸는 일이라면 우리는 숲도 사람도 가꾸지 못하고 산업화의 미명하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자연이 파괴되고 또 한 사람의 끝없이 외로운 노력으로 자연이 다시 살아나는, 푸른 지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는 환경운동의 뛰어난 작품이다.

언젠가 환경운동에 대한 회의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이 작품을 보았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내 고민의 지점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특이한 사람이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해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그가 던진 화두를 잊지 못한다. ‘스무살 때 쉰살은 죽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할 일이 바뀌었을 뿐이다.’학생운동을 접고 인권단체에 몸을 담은 지 6년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나름대로 정말 다양한 일들을 많이 했었는데 몸을 담고 있는 인권단체의 특성상 일반인의 다양한 인권피해 호소나 민원관련 상담이 업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또한 한 달에 대략 200여 건에 달하는 각종 민원을 다루고 있는데 그 사연이 정말 가지각색이다. 임대차 문제에서부터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호소, 그리고 정치적 사건에서부터 일반 사망사건의 처리 등에 대한 불만 등 이렇듯 다양한 사연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말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민원중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그리고 필자를 몇곱절 더 힘들게 하는 민원이 있는데 바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사연이다. 그들의 주장을 대략 정리해 보면 안기부, 경찰 등 정보기구가 자신을 밤낮으로 쫓아다니면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또는 먹는 음식마다 미리 약을 타서 자신을 서서히 죽이고 있다는 호소, 심지어 한 30대 남자는 전화를 걸어와 “TV를 시청하는데 전×× 전직 대통령이 나와서 나에게 레이저 총을 쏘았다”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 주장의 황당함에 뭐라 답변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필자에게 그는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못박기 위해서인지 다음과 같은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제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은데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용가리 통뼈(?)도 같이 총을 쐈단 말이에요.” 용가리 통뼈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암담할 뿐이었다. 따라서 어느날부터인가 필자는 민원전화가 오면 이 분이 어떤 내용을 말씀하시려고 하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생긴 어처구니 없는 “앗! 나의 실수”가 있으니 지금도 생각하면 부끄럽고 창피하면서 동시에 실실 웃음이 나온다.

천주교 인권위로 적을 옮기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영세를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낯선 상황에 적응하던 어느날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상담 좀 하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는데요.” 40대 중반쯤 되는 여성분의 목소리였다.

“다름이 아니고 쇼당에 대해 상담을 하고 싶은데요.” 쇼당!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 분이 지금 고스톱을 치다가 전화를 하신 것인가? 너무 황당한 전화라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리내서 웃을 수는 없어 아주 정중하게 답변했다. “저희는 쇼당에 대해 상담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 말하면 순순히 전화를 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민원인은 재차 “그러면 어디서 상담을 해야 하나요?”라고 또 아주 진지하게 물어 오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다시 한번 자신만만하게 “쇼당 문제로 상담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이 세상 어느 단체에서 고스톱의 ‘쇼당’을 상담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쇼당이 아니고 조당이라니까 왜 자꾸 쇼당이라고 하세요. 조당이요 조당” 순간 당황했다. 필자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한 후 사무국 분들에게 “조당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알아본 즉 조당은 천주교 신자중 이혼한 후 재혼을 제약하는 교회법 용어였다(굉장히 광범위한 의미의 용어이나 설명이 어려워 중략함). 이 사건(?)이 있은 후 필자는 한동안 사무실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그러나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단지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 나의 황당한 실수가 잊혀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참고로 오해의 소지가 있어 밝히건대 필자는 고스톱을 전혀 하지 않는다.

조혜영 크리스챤 사회교육원 환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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