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1152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익히 잘 아실 ‘님은 먼 곳에’라는 노래 한 소절입니다. 이 노래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자주 부르는 노랫말들 가운데는 했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가득찬 것들이 많습니다. 흔한 말로, 말하는 데에 세금이 붙는 것도 아니건만(저처럼 말을 해서 돈을 버는 경우는 예외겠지만요) 왜들 그렇게 말하기를 싫어하는 걸까요.

사실 우리 생활관습이랄까 문화랄까 하는 속에는 ‘말이 없음’은 예찬하고 ‘말이 많음’은 폄하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든지 여자는 말이 많아서 수염이 나지 않는다든지 하는 끔찍한 소리까지 나왔겠습니까. 사실 말로 밥을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는 방송에서도 토론이라는 것이 등장한 역사가 별로 길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송 속에서 하는 토론이라는 것도 동어반복이거나 오로지 ‘내 말’만 작정하고 외치는 답답한 광경이기 다반사입니다.

이런 줄기에서 보자면 모른 척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처지에서 그럴 수만도 없어서 한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대화와 말씀사이

최근에 말씀 잘하시기로 대한민국에서 으뜸이라고 할 어르신을 주인공으로 장장 두시간 동안 네 개나 되는 채널을 통해 방영된, <국민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워낙 말씀 잘 하시고 또 전할 말씀도 많으셔서 그랬겠지만 ‘대화’라고 하기에는 일방적이시더군요. 그럼에도 그것을 ‘대화’였다고 고집하신다면 우리 사전이나 교과서는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사회에 떠도는 저속한 말 가운데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소리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만, 존경하는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하는 모습을 시청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무안하고 부끄러웠던 사람이 저 하나만이 아니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바에는 아예 그 이름을 ‘국민에게 드리는 대통령의 말씀’으로 하는 게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숨길 수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기 위해 굳이 ‘대화’ 형식을 빌릴 필요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움직임이 옹색해지는 걸 달게 받아들이면서까지 그런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단정적으로 거칠게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일방통행 식보다는 쌍방통행 방식이 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서 한 일일 겁니다. ‘말씀’이 ‘쓴’ 약에 해당한다면, ‘대화 형식’은 ‘슈가 코팅’에 해당한다고 하겠지요. 뜻한대로 되기만 하면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셈이어서 다행이겠습니다만, 대화도 옳게 되지 못하고 아울러 말씀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면 꿩도 매도 다 놓친 격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보자면, 지난 <국민과의 대화>는 안타깝게도 꿩도 매도 다 놓친 셈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듣자 하니, 그 <국민과의 대화>를 준비하면서 몇분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하더군요. 그 자문에 응했던 분을 만나 들은 얘기니까 사실이겠지요. 그분 말씀이, 대통령께 질문하고 답변을 들은 뒤에 그 답변을 토대해서 다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더군요. 그래요. 그랬으면 훨씬 대화같았을 거예요. 주고 받고 다시 주고 받으면 그냥 주고 받기만 한 것보다는 한결 나았을테니까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더군요. 또 약속한 질문자로 참여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에게는 끝내 질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두 시간 내내 그냥 앉아 있어야만 했다는 겁니다. 아마도 무슨 이유가 있긴 있었던 모양인데 당사자가 입이 무거워 말을 하지 않는다더군요. 이밖에도 <국민과의 대화>를 둘러싼 이러저러한 소리가 들리지만 그걸 일일이 나열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아직도 못 다한 얘기

다만 두어가지 의아한 점이 있어 몇말씀 더 해야겠습니다. 첫째, 자문이라는 부분입니다. 물론 자문을 구했다고 해서 그 의견을 100% 따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문을 구하는 쪽이 가지는 자유이며 권리라고 저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경우에는 시비를 할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자문에 응한 분이 한 말을 존중했다면 <국민과의 대화>는 본디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자문까지 받았음에도, 그 의견을 무시하고 본디 뜻한 바에 배치되는 결과를 낳은 까닭이 무엇이냐는 점입니다. 국민에게도 대통령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대화’가 되게 한 저의가 무엇이냐 하는 점입니다. 김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말씀 잘하는 분이고 독서량도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국민과 마음껏 주고받고, 주고받고, 주고받는 대화가 되었더라면 누구보다도 김 대통령에게 유익한 시간이었을텐데 말입니다. 국민들은 가슴이 시원해서 좋았을 거구요.

둘째로는 매체에 관련한 부분입니다.

공중파 TV매체 가운데 무려 3개 채널, 그리고 CATV 매체 가운데 시청률이 높은 1개 채널 그래서 4개 채널이 그렇게 일제히 <국민과의 대화>에 매달려야만 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여러 변명과 해명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어떤 이유로도 이런 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김 대통령 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김 대통령이 누구십니까. 반독재 민주투쟁에 앞장 선 분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방송사들이 대통령을 향해 끓어오르는 존경심을 억제치 못하여 서로 방송을 맡겠다고 다투더라도 교통정리를 했어야만 합니다. 김 대통령은 이-박-전-노씨 등과 차별화 되어야 마땅한 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쩌자고 그들과 다름없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끝으로 <국민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 자체에 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진심으로 말씀드리거니와 프로그램을 기획한 의도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 나라 살림을 총체적으로 책임맡고 있는 대통령이 정례적으로 ‘국민들과의 대화’를 갖겠다는 것은 찬양받을 일일지언정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난 <국민과의 대화>를 보고 나서는 이런 식이라면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왜 필요했었던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요즈음 자주 보이는 캠페인처럼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생각컨대,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김 대통령 멋있게 보이게 하자는 의도에서 마련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짐작컨대, 어려운 나라 살림을 효과적으로 꾸려 나가려면, 나라가 처한 사정을 적나라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그 토대 위에서 국민이 제각기 가진 힘을 모아 큰 힘으로 만들자는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민과의 대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을 분열시키는 구석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마련하는 어떤 프로그램도 국민을 모으는 데 기여해야 마땅한 바 그 반대라면 그것이 천부당 만부당한 일임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는 점도 이런 기회에 분명히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과의 대화>는 바르게 열린 마당이 되게 하거나 닫아버리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은 늘 근본을 생각하는 분이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근본을 놓쳤을 때 그 나라 국민은 불행해집니다. 우리는 신물날 지경으로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구요.

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러한 까닭에 지난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 유감을 토로하였음에도 나는 ‘국민과의 대화’가 계속되기 바랍니다. 매우 진실하고도 진지한 ‘국민과의 대화’가. 여전히 국무총리 자리를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표현하는 언론이 상존하는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어디쯤 있는지 아는 까닭에 더욱 그렇습니다.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높은 자리인 대통령이 1년에 며칠만이라도 낮은 자리로 내려와 늘 낮은 자리를 면치 못하는 국민들과 마주앉아 진실로 허심탄회하게 가지는 대화, 그리하여 옛날 옛적에 한 해 농사를 마감하고 머슴들을 위로하기 위해 나으리 마님들이 베풀었던 그 마당놀이와 같은 대화를 가지고 싶습니다.

나는 김 대통령이 국민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국민 속에서 죽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달라스로 떠났던 케네디를 닮았기 바랍니다. 김 대통령이 국민들이 하는 말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말들이 거칠고 모자라고 야박하다고 하더라도 노여워하지 않고 나무라지 않고 야속해 하지 않는 분이기를 바랍니다. 국민과 대통령이 별난 얘기를 마음놓고 할 수 있는 나라, 국민과 대통령이 못할 말이 없는 나라, 국민과 대통령이 대화를 할 줄 아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대통령이 앞장 서시기 바랍니다.

말하는 형식이나 기술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리고 영원히 내용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님이 떠나가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나 기술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사실은 내가 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을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님이 떠난 뒤에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라고 노래하기보다는 떠나기 전에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사랑한다고 진실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옳은 사랑법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국민과 대통령이 서로 사랑해야 할 것임에 드린 말씀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김종찬 방송인·본지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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