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여행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

여행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

 

 

제일 좋았던 여행지가 어디냐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 여행 경험이 늘어갈수록 여행지는 꽤 많이 알게 됐지만 어디가 좋다고 단정 짓기는 조심스러워서다. 여행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니까. 언제 누구와 어떤 상태로 떠났는지에 따라 여행 소감이 갈리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여행은 내가 의미를 부여할 때 완성된다. 여행을 떠나는 나의 이유와 과정, 경험이 풍성해질 때 비로소 특별한 여행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2021년 베스트 여행을 꼽는다면

 

2021년 나의 베스트 여행을 꼽아보려고 한다. 보령 죽도에 있는 한옥 정원 상화원이 먼저 떠오른다. 작은 섬 전체가 정원으로 조성된 곳으로서, 2km 가량의 회랑길이 있어 누구나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7월 어느 날 회랑길을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일행들과 차를 마신 적이 있다. 그때 소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던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코로나19도, 마스크도, 더위도 다 날려버리는 상쾌함이었다. 

 

수국이 필 때 방문한 통영 연화도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섬을 걷고 난 뒤 선착장에서 앉아 맛본 고등어회 식사가 기억에 남는다. 맛보다 분위기가 정다웠다. 대청호를 끼고 유럽풍 건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수생식물학습원에서 바라보던 넓은 대청호수는 고요히 나를 느껴보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다리가 놓여 이젠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게 된 전남 신안 임자도. 끝없이 펼쳐진 텅 빈 대광해수욕장의 단단하고 고운 모래사장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거닐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모두 제각각의 특별한 경험으로 나의 한해를 빛나게 해준 여행들이다. 또한 그 여행을 함께 완성해준 동행자들 덕분이기도 하다. 여행의 추억이 쌓일수록 다음 여행의 기대감도 커진다. 새해에는 또 어떤 경험을 길 위에서 하게 될까. 

 

대청호

충북 옥천 대청호수 Ⓒ정지인

 

모래사장

전남 신안 대광해수욕장 Ⓒ정지인

 

 

철원 한탄강 협곡의 재발견

 

강원도 철원 한탄강 일대는 바닷가에서나 보던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약 50만 년 전부터 이어진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흐르면서 형성된 독특한 자연 지형이 펼쳐진다. 현무암 절벽과 폭포, 수직 방향의 주상절리 등 지형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바다가 아닌 강가에 형성된 용암의 흔적이라 독특하다. 최근에 이런 한탄강 협곡을 누구나 쉽게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과 한탄강 물윗길 트레킹이다. 

 

2022년 1-2월 합본호 (통권 292호)

강원도 철원 한탄강 협곡 Ⓒ정지인

 

나는 작년 11월 한탄강 주상절리길이 개장하자마자 방문해 직접 걸어봤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순담계곡에서 드르니마을까지 3.6km 구간은 아슬아슬한 절벽 옆으로 잔도길과 출렁다리, 아찔한 전망대가 이어진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용기를 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절벽에 어떻게 길을 냈을까 놀랍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한탄강 용암 협곡은 웅장하다. 깎아지른 수직 절벽과 흰 포말을 일으키며 거칠게 흐르는 한탄강 물줄기에 경외감이 들었다. 한탄강 협곡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였다.

 

한탄강의 자연미를 만나는 또 다른 코스는 한탄강 물윗길 트레킹이다. 물윗길은 한탄강 수면 위에 조성된 부교를 걷는 길이다. 태봉대교에서 시작해 고석정을 지나 순담계곡까지 8km 구간이 이어진다. 주의할 점은 한탄강 물윗길은 10월부터 3월까지 동절기에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겨울에 한탄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여행은 새로운 뷰를 찾아가는 과정 

 

주상절리길이 절벽에 매달린 위치에서 협곡을 바라본다면 물윗길은 수면 위에서 바라보는 협곡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방문했던 11월은 물윗길 전체 구간이 개통하기 전으로, 임시개통구간인 송대소에서 은하수교 구간만 걸을 수 있었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수면 위에서 바라보는 협곡 뷰가 놀라웠다.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쳤다. 용암 협곡 지형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원래 물윗길 구간은 얼음트레킹 코스였다. 한탄강이 꽁꽁 얼었을 때 얼음 위를 걸으며 협곡을 감상하던 길이다. 그러나 겨울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강이 얼어붙는 기간이 줄고 시민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철원군에서 동절기에 임시부교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탄강 주상절리길과 물윗길을 걸으며 내가 선 위치에 따라 협곡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실감했다. 조금만 자세를 바꿔도 피사체가 새롭게 보이는 사진 촬영의 경험과 비슷하다.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행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여행자의 눈이 향한 곳을 따라 새로운 공간이 열릴 것이다. 여행은 끊임없이 새로운 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길은 좋은 여행을 경험하게 하고, 지금의 나를 넘어서는 삶의 무대로 우리의 인생을 확장해 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멈출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참여사회〉 지면을 통해 여행으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 즐거웠다. 내 여행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독자들을 상상하며 나의 여행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족한 글이지만 꾸준히 쓸 수 있었다. 삶을 지탱하는 위로와 힘, 더 큰 지평으로 나를 이끄는 여행의 즐거움으로 여러분의 일상이 더욱 행복해지길 빈다. 

 

※ 정지인의 〈떠나자-국내 편〉 마칩니다.

 


글·사진. 정지인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여행, 성장하는 여행, 모두에게 평등한 여행을 꿈꾸는 여행카페 운영자입니다. 여행으로 바꿔 가는 세상, 우리 모두의 행복한 일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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