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8월 2002-08-10   488

아아, 이 민족을

3·1운동, 8·15해방 그리고 6·25전쟁

월드컵이 열리던 불과 한달 동안, 우리는 우리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골고루 체험했다.

‘붉은 악마’의 응원은 3·1운동의 함성과 8·15해방의 감격이 한데 어우러진 폭발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하지만 아마도 박정희는 남녀노소 구별 없이 전국을 누비는 이 ‘자생적 빨갱이’ 같은 붉은 악마 군단을 보면서 지하에서 통곡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 ‘6·25전쟁’이 찾아왔다.

우리 민족이 이 뜨거운 결속력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던 월드컵이 막을 내리던 순간, 적잖은 사상자까지 낸 서해교전이 터졌던 것이다. 말하자면 3·1운동의 갈구와 8·15해방의 열광이 6·25전쟁의 비극으로 마감하는 듯했다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전세계를 향하여 또다시 통탄스럽고도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날, 추운 네팔 지방의 한 산길을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추위가 살을 에는데, 인적도 민가도 눈에 띄지 않는 외딴 험로가 계속되었다. 얼마쯤 가다가 두 사람은 눈 위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였다.

“우리 이 노인을 함께 데려갑시다. 그냥 두면 얼어죽고 말 거요.”

그러자 동행인은 화를 내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도 살지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저런 노인네까지 끌고 가다가는 모두 죽고 말 거요.”

사실이 그러하긴 했으나,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그 노인을 그냥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노인을 들쳐업고 눈보라 속을 걷기 시작했다. 동행자는 벌써 앞서 가버려 보이지 않는데, 갈수록 힘이 들어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몸에서 이런 더운 기운이 확확 끼쳐서인지 등에 업힌 노인은 차츰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더운 체온 탓에 추운 줄 몰랐다.

마침내 이 둘은 마을에 이르렀다. 그는 마을 입구에서 한 사내가 꽁꽁 언 채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시체를 살펴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바로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앞서 가던 그 동행자였기 때문이다.

헌데 바로 우리 남·북한이 서로의 뜨거운 체온을 주고받으며 목숨을 건진 이 둘을 닮아야 하지 않겠는가.

농부와 여우

오래 전에 이솝은,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어처구니없는 남북한 관계 같은 것을 날카롭게 빗댄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솝우화에 ‘농부와 여우’라는 얘기가 있다.

평생 공처가로 살아온 한 농부가 그동안 자기 집 닭장에 끊일 새 없이 두고두고 피해를 입혀온 여우를 덫으로 잡았다. 농부는 쾌재를 부르며, “이, 교활한 녀석. 넌 빨리 죽이기도 아까운 놈이야. 그동안 내가 너한테 당한 걸 생각하면 말이야”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그 농부는 이 녀석한테 어떤 벌을 주어야 속이 시원할까 한참 생각했다.

마침내 농부는 헝겊에다가 석유를 흠뻑 적셔서 여우의 꼬리에 단단히 잡아맨 다음 거기다가 불을 놓았다. 그리고 나서 농부는 여우의 절망적인 원맨쇼를 즐기기 위해 여우를 풀어놓았다. 그런데 그 놈의 여우가 추수 직전의 잘 익은 자기 밀밭으로 허겁지겁 정신 없이 뛰어드는 게 아닌가.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그리고 농부는 여름 내내 비지땀 흘려 지은 농사가 바로 자신의 코앞에서 한줌의 재로 돌변하는 광경을 목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농부는 넋이 나갈 정도로 상심했다. 이 가슴의 상처는 몇 년이 지나도 아물 줄 몰랐는데, 그건 특히 그 모든 일이 당신 탓이라고 잊을 만 하면 잔소리를 해대는 상전 같은 마누라 때문이었다.

원래 멍청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잔인함이 재치로 통하는 법이다. 혹 남북한 관계는 이 농부와 여우 사이는 아닐까.

예컨대 ‘심지어’ YS 같은 이까지도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우방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남한식 ‘민족 제일주의’를 결연히 선언했고, 북한도 지금 이른바 ‘민족 제일주의’ 정신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요컨대 겉으로는 농부도 ‘여우 제일주의’, 여우도 ‘농부 제일주의’를 제창은 하면서도 틈틈이 서로를 질세라 욕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흐리멍덩하게 이웃 나라들의 놀림감이 되거나, 또 그들에게 귀한 것들을 차례로 앗기곤 한다. 왜 양쪽이, 둘다 똑같이 ‘민족’은 내세우면서도, 장기자랑 하듯 소란은 도맡아놓고 경쟁적으로 피워대야 하는가.

정치적 임포텐스

이윽고 서해에서 동족상잔의 교전이 다시금 발생했다.

곧이어 일부 인사들이 허수아비 모양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모형 화형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소 바치고 쌀 퍼주고 총탄 맞고 전사했네”라든가, “민족사 최악의 학살자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자”라고 적힌 플래카드 등도 내걸었다. 마침내 “정부 내 친북 좌경인사들을 즉시 파면 단죄하고 북괴의 도발이 자행될 경우 열 배, 백 배로 응징하는 국군 본연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비슷한 시간에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천막 농성장에서 주한미군을 규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었을까. 미군에 의해 처참히 일생을 마감한 이 두 소녀도, 강경몰이를 일삼는 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붉은 악마’의 일원이었을 텐데….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다.

예컨대 명절이 되면 귀성길은 차량의 홍수로 범람한다. 그러면 서울에서 대전까지도 무려 대여섯 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위대한 국민은 돈 몇 푼 던지고서는 멀쩡한 차를 견인차에 매달고 고스톱을 즐기며 여유 만만하게 갓길로 질주한다. 과연 이 세계에 이러한 창발력을 발휘할 민족이 우리 외에 또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민족의 이 ‘위대한’ 창의력이 이런 식으로 소진되어야만 할까.

DJ 정권 하에서는 대통령 스스로가 노벨상까지 수상하는 역사적 경사가 일어났다. 게다가 월드컵 4강에 드는 쾌거까지 달성해서 전세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호기가 물거품이 되고 있다.

이를 민족의 비약적 발전을 기약하는 도약대로 만들기는커녕, 정치권에서는 고작 ‘전쟁 불사론’이나 부추기며 분노와 증오의 불길만 지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긴장과 갈등을 부추기는 이러한 냉전 수구파를 비판하는 집단에게 ‘혼나라 당’ 이회창 후보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라는 극언까지 퍼붓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과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밭갈이에 대해 말하는 사람보다 쟁기를 잡는 사람이 더 많아야 한다. 그러함에도 우리의 정치권은 왜 이다지도 무능한가. 아니, 우리 정치인들은 정치적 임포텐스, 정치적 불능 상태로 전락하고 만 듯하다.

서해안 꽃게 따위가 민족을 앞서야 할까.

아아, 이 민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박호성 본지 편집인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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