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2월 2005-12-01   414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는 사람들

조그만 동네 슈퍼마켓의 세 회원, 최영민·임동경·장혜영 씨


11월의 어느 날 참여연대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참여연대 회원이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참여연대를 알게 된 사연이 독특했다.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시급근로를 하는데, 일터에 놓여있는 『참여사회』를 보고 후원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월 회비를 책정하면서 『참여사회』는 보내지 말라고 했다. 적은 후원금에 책까지 보내면 뭐가 남겠냐는 걱정이었다. 설득과 실랑이 끝에 처음 책정한 월 회비에 1,000원을 더 보태고 책을 보내는 것으로 합의했다.

참여연대 사무실엔 참 많은 전화가 걸려온다. 각종 문의와 민원 전화에서부터 항의성 전화까지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전화의 홍수 속에서도 활동가들을 미소짓게 하는 전화가 있다. 바로 회원들로부터 받는 격려와 후원의 전화이다. 그런 전화의 주인공들에겐 하나같이 아기자기한 사연이 숨어있고 전화선을 통해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그의 전화도 그랬다. 전화를 받은 간사로부터 이야기를 듣곤 그 회원과 슈퍼를 운영하는 또 다른 회원이 궁금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인천으로 갔다.

세상 부조리에 눈뜨게 한 『참여사회

인천시 연수구 주택가에 자리잡은 청학할인마트가 그들이 일하는 곳이다. 참여연대로 전화를 건 장혜영(33세) 회원은 그곳에서 오전 9시부터 낮 1시까지 일을 봐주고 있다. 아이 셋을 둔 장 씨가 여기서 일한 지는 4년째다. 일을 시작할 당시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애가 그새 4학년이 됐다. 슈퍼의 주인은 동갑내기인 최영민·임동경 부부(39세)이다. 참여연대를 후원한지 5년이 넘은 고참회원이다. 세 사람은 동네 이웃이면서 오래 함께 일해와서인지 서로에게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장 씨는 『참여사회』가 그에게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고 말했다.

“『참여사회』가 가게로 와요. 자연히 일하는 틈틈이 보게 됐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전 참여연대란 단체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거기서 읽은 내용이 저에게는 충격이었어요.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거든요. 어릴 때 시위하는 대학생을 보면 공부는 안 하고 거리로 뛰쳐나온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책을 보면서 이해하게 됐어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음이 자꾸 끌리더라구요. 작년부터 맘먹고 참여연대로 전화를 걸었지요. 여러 번 했는데 번번이 통화 연결이 안됐어요. 그 날은 끈질기게 걸어서 드디어 통화가 된 거죠.”

그러나 최 씨 부부는 장 씨가 회원이 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참여사회』를 누군가 보게끔 의도적으로 놔둔 것도 아니었고, 더욱이 회원 가입을 권유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참여연대가 누군가의 가슴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최 씨 부부는 90년대 초 노동운동에 뛰어들면서 인천으로 왔다. 둘은 활동하면서 알게 돼 결혼했다. 생산직 현장 활동을 그만둔 이후에 함께 활동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이곳을 등진 뒤에도 두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겠다는 각오로 가게를 꾸려온 지 6년째다. 먹고사는 일에 쫓기며 사는 형편이지만 사회를 바꿔가는 일에 참여하고픈 갈증은 어쩔 수 없었다. 참여연대를 후원하게 된 것도 그런 마음에서다.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죠

“예전의 꿈을 실현할 계기나 공간이 없던 터에 참여연대를 알게 돼 가입하게 되었어요. 87년 민주화의 꽃을 본 세대로서, 시민운동이 담론 중심의 운동에서 벗어나 생활현장의 대안을 찾는 운동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최 씨의 말에 임 씨도 동의한다.

“참여연대를 후원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남편이었어요. 하지만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았어요. 우리는 함께 운동했던 경험이 있어 사회에 대한 시각에서 큰 차이가 없거든요. 지금은 먹고사는 일에 매여 활동하지 못하지만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싶다는 맘은 변함이 없어요. 사회와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거든요. 다만 지금은 어떤 형태로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고 여건상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 같은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부부가 365일을 같이 일하기 때문에 힘든 점도 만만치 않다고 임 씨는 털어놓는다.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다 보니 상대방의 단점이 부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아르바이트를 쓰고 있어요. ”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거리 두기이다. 그 거리를 장혜영 씨가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같이 일해서 좋은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부부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는 최영민 씨.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사람 됨됨이가 저보다 훨씬 나아요. 저를 안 만났으면 어디 가서든 자기 역할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지금 가게에서 계산대 지키고 있으니까 미안해요.”

아내 역시 남편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저희가 가진 것 없이 맨 몸으로 이곳에 와서 집 마련하고 생계를 남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온 건데, 여전히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서로 미안한 거죠. 일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요.”

가게 일은 잠자는 시간 외에는 여가가 거의 없다. 늘 시간에 쫓기는 것이 한창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두 아들에게 특히 미안한 임 씨다. 그래서 부부는 새로운 일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최 씨는 2004년 총선을 계기로 지역의 젊은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조심스럽게 새로운 지역정치에 대한 희망을 키워온 터였다. 내년엔 본격적으로 지역사회의 일을 해보려고 구의원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임 씨 역시 가게를 정리하는 대로 자기의 일을 찾을 계획이라고 한다. 장혜영 씨는 최 씨가 구의원 선거에 나가면 기꺼이 도울 작정이다. 그들은 힘겹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힘으로 내일의 희망을 일궈가고 있었다.

정지인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