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4월 2007-03-29   1031

<안국동窓> 민생희망 캠페인을 제안합니다

민생이라는 화두

지난 2월 9일 청와대 회동에서 어디까지가 민생인가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개헌 빼고 모든 것이 민생이라고 응수하였다. 민생이라는 용어 자체는 사전적 의미로는 국민의 생활이라는 의미이므로 광의로는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여러 문제를 민생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북핵문제나 민주주의, 개헌, 한미FTA 등 모든 문제가 민생 문제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겠으나 이러한 광의의 접근으로는 민생 문제의 핵심을 흐릴 우려가 있다.

인간사회의 존립과 번영에 관한 기본 조건은 과거 동서양의 왕조 국가나 현대 민주주의 국가, 지역연합, 국제연합에 이르기까지 별 다른 차이가 없는데, 다른점은 바로 안보와 경제 문제이다. 여기에 민주국가의 일반적 과제인 인권 문제를 더하면 대한민국의 기본 좌표가 설정된다. 안보, 경제, 인권의 구분 틀 아래에서 민생이라는 개념에 접근해 보면 경제 문제를 국민 생활의 관점에 바라 본 것이 민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의 외형적 성장과 가계의 재정상황

경제 문제는 과거에는 국가 경제의 성장을 통하여 국부를 축적해 가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빈부격차의 확대와 자산의 소득이 없는 중산층의 몰락 등에서 보듯이, 국가 경제 전체의 성장이 그 구성원들의 경제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지난 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인 5%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올해에는 국민소득 2만 불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원화절상으로 인한 상승분까지 포함하여 미국 달러로 계산한 지난 5년간의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무려 연 평균 12.54%에 이른다.

수출주도형인 우리 경제는 지난 해 3,257억 불을 수출하고 지난 5년간 연 평균 16.96%에 달하는 높은 수출 증가세를 시현하여 1990년대 이후 최고의 수출 증가세를 기록했다. 또한 수출산업을 주도하는 대기업이나 은행 등의 금융기관들은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빈부 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중산층은 급격하게 몰락하고 있다. 국세통계연감에 의하면 2000년에서 2003년 사이에 연소득 5억 원 초과의 최고소득자가 90% 증가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연소득 1,000만 원 이하의 최하소득자 또한 65%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외환위기, 신용카드 위기에 뒤이은 부동산가격의 급등 속에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가계의 1년 소득으로 금융부채를 얼마나 상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개인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998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여 2005년 말 현재 139.6%로 상당히 악화되었다. 이 비율은 2001년부터 미국보다 높아져 미국과 비교할 때 소득에 비해 부채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그만큼 가계의 상환능력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계의 금융자산으로 금융부채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개인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빠르게 상승하다가 2004년까지는 정체하였으나 2005년에 다소 상승하여 52.9%를 기록했다. 이 비율 또한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약 20%포인트 정도 높고 일본(26%, 2006. 6), 영국(35%, 2003. 12), 대만(7%, 2003. 12)보다도 높아 우리나라 가계가 금융자산으로 금융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중산층·서민 가계가 몰락하는 이유

경제성장률로 나타나는 양성 성장에도 불구하고,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이 급격히 악화된 이유는 무엇인가?

하버드법대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는 그 딸인 워런 티아기와 함께 쓴 「맞벌이의 함정」에서는 미국 중산층 가구의 파산이 급증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필수지출의 급격한 증가속도를 소득의 증가 속도가 따라 잡지 못함으로써 중산층의 재량적 소득이 감소했고, 이로 인해 중산층 가계의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된 상태에서 조그만 외부의 충격에도 중산층 가계가 쉽게 파산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실증적 데이터에 기초하여 밝혔다. 워런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유자녀 가정의 파산 가능성은 자녀 없는 가정보다 3배나 높다. 이는 미국 중산층이 자녀의 안전과 교육 그리고 중산층 가정임을 나타내는 필수지출을 위하여 거의 모든 가처분 소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필수지출에 대하여 일의적인 정의를 하기는 어려우나, 중산층·서민 가계에서 자신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자녀를 중산층으로 키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된 지출들을 필수지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산층의 생활을 나타내는 지출 항목들을 필수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필수지출 항목에는 주거비, 교육비, 통신비, 의료비가 포함된다. 중산층·서민 가계에서 이러한 필수 지출의 증가속도가 소득의 증가속도를 훨씬 상회하였기 때문에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서민 가계는 재정적 건전성이 매우 취약해진 상태에 있다. 가계의 재정적 취약성은 가계가 필수지출에 충당하기 위하여 금융비용을 추가로 부담하게 되는 경우 더욱 증가한다.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위한 아낌없는 지출

우리나라에서도 자녀가 있는 중산층·서민 가정에서 자녀의 교육과 안전은 과히 종교라고 할 만하다.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위하여 모든 희생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고 실제로 그렇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장거리의 출퇴근이나 주말부부 또는 기러기 아빠 같은 이산의 아픔을 기꺼이 감내하며 자신의 노후 대비용 자산마저도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위해 기꺼이 사용한다. 미국에서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위해 좋은 공립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교육구에 위치한 교외 주택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것은 중산층 부모들이 자신의 모든 신용을 동원하여 그러한 주택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녀의 교육과 안전이 보장되는 좋은 주거·교육 환경의 주택을 구입하려는 부모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자신의 신용으로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금을 동원하여 좋은 교육구의 주택을 구입하려고 하고, 어떤 지역에 거주하는가에 따라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좌우된다고 믿는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가가 어떤 지역에 거주하는가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믿는다. 자녀의 교육과 안전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고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주거지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 중산층 가계의 재정적 위기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가계의 재정적 건전성 확보 운동 전개

가계의 재정적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가 많이 있어야 하고, 가계 소득이 증대되어야 하며, 필수지출이 줄어들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 기업의 투자 문제, 정부의 산업·노동정책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 가계 소득을 증대시키는 방안은 이미 고성장 시대가 막을 내린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정도나 규모에 비추어 그 한계가 자명하다. 따라서 가계의 재정적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민생개혁운동은 필수 지출을 줄이는 운동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실질적 평등조치의 실현

구체적인 사업 내용으로는 필수지출 항목인 주거비, 교육비, 통신비, 의료비, 서민금융비용에 대하여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설정하고 이러한 비중이 해 마다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나지 못하도록 국가 정책목표를 정해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비의 경우, 서민·중산층 가계의 교육비 지출 비중이 30%라고 한다면, 5개년 정책목표를 20%로 설정하고 해 마다 2%씩 지출 비중을 줄여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지출항목에 대한 총량적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고 목표의 달성 여부에 따라 엄격하게 관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불평등이 급격히 심화되어 가는 부분은 실질적 평등조치의 시행을 요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 지역에 주거를 확보하는가에 따라 교육의 질이 결정되는 사회가 되었고, 교육 정도가 사회적 신분을 의미하는 현실을 결합해 보면 어떤 지역에 거주하는가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정해지는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에 따른 이러한 차별은 어떠한 정당성도 인정될 수 없는 것이므로 실질적 평등조치를 시행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교육환경, 교통환경, 편의시설, 복지시설, 공공기관, 지방재정 등의 항목으로 나누어 정량적으로 평가한 주거환경지표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주거환경지표가 낮은 지역에 대해 예산 차등 배정, 사회 인프라 차등 지원 등의 방법으로 실질적 평등이 담보되도록 해야 한다.

교육의 공공성 확보 위한 노력 기울여야

지금도 우리 자녀들은 학교에서 한 반에 40명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대학 졸업자의 상당수는 교사발령을 받지 못하고 있다. 주거·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부터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야 하고 학급당 인원수를 줄여야 한다.

이러한 실질적 평등조치 시행에 대해 기득권층의 조직적인 반발이 우려된다는 견해도 있다.

주거·교육 수준이 열악한 지역에 대한 공적투자를 확대하고, 주거·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 대한 공적투자를 제한할 경우,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은 일체의 공적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은 결국 교육의 공공성, 평등성이 완전히 파괴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위해 좋은 교육구의 주택을 구입하는 것에 별다른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상류층의 경우에는 교육을 사적 영역으로 내몲으로써 계층적인 차별을 고착화하려고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미 계층적인 차별은 존재하고 현재의 주거·교육 정책 기조 하에서 계층적인 차별의 가속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류층의 경우, 교육을 국내의 공교육에 의존하기 보다는 외국유학과 사교육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므로 교육 부분에 있어서 상류층이 사적 영역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 확대된다고 해도 어떤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도 중산층도 상류층의 교육방식에 동조하게 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견해다 있다. 그러나 앞에서 자세히 살핀 바와 같이 중산층은 지금도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위해 가능한 최대의 돈을 지출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산층은 집을 팔지 않는 한 더 이상 쓸 돈이 없다. 이는 가계의 부채상환능력 수준이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중산층 가정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자녀의 교육과 안전을 위해 지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실질적 평등조치의 시행이 교육의 공공성, 평등성을 파괴할 가능성은 낮으며 오히려 교육의 공공성을 제고함으로써 가계의 재정적 건전성 확보를 위하여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헌욱 (변호사,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정책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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