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4월 2013-04-05   1919

[놀자] 카페를 가지고 노는 수두룩한 방법

카페를 가지고 노는 수두룩한 방법

 

 

이명석 저술업자

 

 

일러스트 나무

 

사오 년 전, 카페에 대한 책을 쓰며 전국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강원도 바닷가에서 전주와 부산의 대학가까지 파릇파릇 커피와 카페에 대한 사랑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전국의 골목길 구석구석에 카페들이 들어섰다. 초대형의 카페 체인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기도 하고,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모퉁이에 작은 카페가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이런 카페 붐에는 복합적인 상황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그 모두를 박수치며 바라보기도 어렵다. 어쨌든 그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렇게 활짝 피어난 카페들을 가지고 어떻게 놀까를 궁리한다.

 

 

만남의 광장, 나만의 밀실

 

옛 시절 ‘다방’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장소였고, 지금의 카페들도 그런 역할에 충실하다. 하지만 이제 카페는 단순한 약속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와도 함께하지 않기 위해 그곳을 찾기도 한다. 카페는 집과 직장 사이에 떠 있는 제3의 공간이다. 직장은 일을 위한 곳이고, 가정은 놀이와 사교를 위한 장소다. 하지만 우리의 집은 너무나 좁고 가족들끼리도 얼굴을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지저분한 원룸에서 뛰쳐나온 대학생, 아이들에게 TV를 넘겨준 주부, 회식을 일찍 마쳤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직장인들이 카페를 찾는다.

 

카페의 자리는 대부분 서로 열려 있다. 하지만 건너편의 테이블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심지어 커다란 테이블에서 한 자리씩 차지한 8명의 사람들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기도 한다. 커피 한 잔씩 올려놓은 그 자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이 된다. 근사한 인테리어도 갖춰져 있고, 청소도 해놓았고, 커피도 내려주고, 설거지도 해준다. 내게 잔소리할 사람도 없고, 내가 잔소리해야 할 누군가도 없다. 책 한 권, 노트북 하나, 스마트 폰 하나로도 그곳은 우리 각자의 놀이방이 된다.

 

 

혼자도, 함께도

 

카페의 테이블이 최소한의 공간으로 개인의 놀이를 허락하게 된 데는 기술의 도움이 컸다. 노트북과 무선 인터넷으로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고, mp3 플레이어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카카오톡으로 먼 동네의 친구와 수다를 떤다. 그러나 오히려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혜화동의 어느 카페에 가면, 거의 항상 프랑스 여자분이 스케치북과 물감 세트를 들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친구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제일 예쁜 노트를 들고 카페에 앉아 무엇이든 쓴다고 한다. 내가 예전에 말한 종이 공작 놀이도 충분히 가능하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러나 카페 테이블에 앉아 좋은 음악을 듣고, 벽에 걸린 멋진 그림을 보고, 옆 테이블의 누군가 꼼지락대는 걸 보면, 나 역시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아직까지 음악은 조금 어려운 놀이다. 하지만 홍대 앞의 카페에서는 작게 우쿨렐레를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곳은 기타를 한두 대 내놓고 누구든 마음이 동하면 간단히 연주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가끔은 피아노까지 내놓는다. 작은 집에서는 들여 두기도 어렵고, 설사 있더라도 층간 소음 문제로 뚜껑만 열었다 닫았다 하는 악기가 아닌가? 물론 거기 앉아 체르니 몇 번을 반복 연습하는 건 곤란하다. 태블릿 PC의 연주 어플을 이용하는 정도로 만족하자. 

 

 

카페가 친구 혹은 친구와 카페

 

물론 혼자만 놀란 법은 없다. 카페는 뜨개질, 독서, 보드게임, 외국어 배우기 등 많은 모임의 장소다. 요즘은 아예 특정의 취미로 특화된 카페들도 적지 않다. 이대 앞의 바느질 카페에서는 도구를 사서 바로 뜨개질에 도전할 수 있고, 부암동의 패브릭 카페에서는 인형 만들기 강좌에 함께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특이한 모습이기도 하다. 지역의 공동체 공간이나 문화센터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카페에서 벌어진다. 나만이 조용히 지낼 방을 찾을 수 없고, 친구들과 떠들 거실이 없고, 무언가 함께 배울 공간이 없다. 그러니 그런 욕망들이 카페로 굴러들어오는 것이다.

 

이젠 카페에서 친구들과 노는 게 아니라, 같은 카페를 다니다 보니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외국 여행을 가면 숙소 근처 카페의 작은 게시판Community Board을 챙겨본다. 작은 벼룩시장, 강아지와 함께 하는 자전거 경주, 갤러리 오픈 파티……. 동네의 작고 재미있는 소식들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동네 카페에서도 이런 움직임들을 볼 수 있다. 근처 초등학교에서 일반인 자전거 대회가 열린다, 동사무소에서 간이 텃밭을 신청 받는다, 이런 정보를 나누고 함께 즐기다보면 어느새 카페 친구들이 잔뜩 생기는 거다. 그쯤 되면 카페를 통째로 빌려 하룻밤 근사한 파티를 해도 좋다. 우리는 하룻밤 카페의 DJ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약간은 간지러운 아코디언 연주자가 된다.  

 

 

이명석

저술업자. 만화, 여행, 커피, 지도 등 호기심이 닿는 갖가지 것들을 즐기고 탐구하며, 그 놀이의 과정을 글로 쓰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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