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 2021-11-30   412

[떠나자] 마스크를 벗어 던진 여행

마스크를 벗어 던진 여행

스위스 취리히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91호)

 

무릎 아끼는 사람들의 하이킹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무릎이 튼튼한 이들이다. 평생 여행을 하기로 약속한 우리 부부는 무릎 연골을 아끼는 데 최선을 다한다. 방법은 잘 모른다. 그저 마흔이 넘은 뒤에는 높고 험한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피하는 정도다. 자연스레 산보다 바다를 찾아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2021년 가을, 이 계획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마테호른이며, 융프라우며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알프스의 명산을 찾아서 열심히 걷고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스위스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왔다. 그것도 전염병 대유행의 시대에! 출연하고 있는 유튜브 촬영을 위해서라는 핑계 좋은 외유外遊였다. 더욱이 일정을 스위스 관광청이 주관하니 여러모로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또 인구 밀도가 낮은 알프스라면 감염자를 만난다 해도 그의 비말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아무튼, 여행에 대한 허기를 참지 못하고 스위스로 떠났다. 팬데믹 이후 첫 출국이라 돌아오는 날까지도 타지에서의 감염을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즐거우면서 불안한, 양가적인 마음과 함께한 한 달살기였다. 

 

남몰래 여행 가는 사람들 같았다

 

2년여 동안 발목이 붙들렸으니 꽤나 복잡한 출국 준비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이전까지 여행을 위해 외교부 홈페이지를 이렇게나 들락거린 적은 없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국가들이 입국 시 백신 접종을 요구하고 있었다. 스위스도 비슷했다. 전자 입국신고서를 제출하고, 영문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를 출력, 휴대하고 있으면 별도의 비자 신청 없이도 예전처럼 입국이 가능했다. (근래는 입국 전 스위스 정부의 백신 패스를 미리 발급받아야 한다.) 또한 백신 접종 완료 후 14일이 지난 이들은 PCR 검사 면제와 도착 후 격리 대상에서 제외되니까 바로 여행도 가능했다. ‘이렇게 쉽게 떠나도 되는 건가?’ 뭔지 모르게 찝찝했다.

 

여행의 준비 과정은 전보다 늘었지만 짐의 크기는 예전과 같았다. 코로나19 시대의 여행에서 달라진 건 한 달 치 마스크와 체온계 그리고 방 한 칸이 아닌 집 전체를 빌려서 사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언제나 여행객의 흥분으로 가득했던 곳이 하루 두어 편 비행기가 내리는 소도시 공항처럼 한산했다. 발권 카운터에서는 여권과 함께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티켓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터미널 내 상점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고 비행기 내부에도 빈자리가 많았다. 마침 새벽 1시 출발 편이라 야반도주를 하고 있는 거 같단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 시국에 남몰래 여행 가는 사람들. 

 

12시간을 날아 환승하기 위해 도착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은 인천과 또 다른 풍경이었다. 상점은 모두 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레스토랑 앞에서 긴 줄을 따라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이트 앞은 유럽 허브 공항답게 환승 편을 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긴 코로나19가 사라진 건가?’ 싶을 정도로 인천공항과 극명한 온도 차였다. 그나마 모두가 착용한 마스크로 인해 현실감을 찾을 수 있었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91호)

지난 10월 스위스 거리 풍경. 스위스는 2021년 6월 26일부터 야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전면 해제했다. ⓒ김은덕, 백종민

 

스위스 거리에는 마스크 쓴 사람이 없다

 

그러나 취리히 공항을 나서며 우리는 경악하고 말았다. 스위스는 실외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지 않아서 거리를 지나는 이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던 거다. 고작 2년 전까지 우리도 이렇게 살았는데 코와 입을 드러내고 걸어 다니는 풍경이 왜 그리 낯설던지! 다행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탑승 전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여기도 내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물론 하차 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내림과 동시에 마스크를 벗어 재끼는 스위스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서 나도 곧 따라 했지만 말이다.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분명 이전과 달랐다. 산보다 바다로 떠나던 우리를 하이킹의 세계로 이끌었고, 얼마 되지 않지만 준비할 서류도 전보다 늘어났으니까. 아직 알프스로 향하지도 못했는데 팬데믹으로 바뀐 여행 풍경을 설명하다 보니 지면이 부족하다. 마테호른과 융프라우의 절경은 다음 편에 적어야겠다. 

 

 

➊ 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효소 연쇄 반응이라는 뜻으로 바이러스의 유전자 물질을 감지하여 코로나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검사를 말함  


글·사진.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함께 글 쓰며 사는 부부 작가이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마흔 번의 한달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 2021년 12월호 목차보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