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 2021-11-30   426

[읽자]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떠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꿈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떠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꿈

 

박물관과 미술관, 일상의 공간은 아니지만 종종 갈 때마다 더욱 자주 와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 나오게 되는 곳이다. 평소 생활과 분리된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았던 존재를 마주하는 기분은, 금세 들뜨면서도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아 내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이곳에서는 모든 게 멈춰 있고 나만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스스로 살아있다는 감각이 멈춰 있는 존재마저도 살아 움직이는 듯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이처럼 박물관과 미술관은 꿈과 환상으로 가득한 곳이고, 애초 그런 마음과 기대로 만들어진 공간일 테니, 그곳에서 할 수 있고,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껏 펼쳐보자.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서 

홀로 작품을 마주하는 기회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 리디 살베르는 조각가 자코메티의 작품 〈걷는 사람〉을 사랑했다. 그 덕분에 그 작품이 자리한 피카소 미술관에서 하룻밤 동안 온전히 홀로 충만하게 〈걷는 사람〉을 만끽할 기회가 주어진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작품을 직접 마주하는 일도 흔치 않은데, 아무도 없는 조용한 미술관을 오로지 작품과 나의 만남으로 가득 채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작가는 너무 흠뻑 빠져들지 않기 위해 “의자나 탁자 혹은 일상적으로 보이는 평범한 사물을 대할 때와 똑같이 냉랭하고 수학적으로 초연한 태도로” 작품을 응시한다. 물론 이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걷는 사람〉의 힘이 참으로 커서 느끼고 생각하는 내 능력을 공격해 무력하게 만든 걸까?” 이후 글을 쓰며 명료하고 선명해진 생각은 어쩌다 “나 자신의 죽음을 일깨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걸까. 같은 기회가 온다면 어디에서 무슨 작품을 만날지 못지않게 나의 어떤 마음을 그것에 비춰 다시 읽고 싶은지를 고민해봐야지 싶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91호)

저녁까지 걷기 | 글 리디 살베르 | 뮤진트리

〈걷는 사람〉은 나처럼, 우리처럼 죽음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았다. 안다는 사실이 그의 등줄기를 휘게 했고, 무한히 겸손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기 삶이 자기를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는 걸 알았고, 세상의 모든 시, 세상의 모든 예술, 세상의 모든 황금, 세상의 모든 철학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걷는 사람〉은 땅에 발을 딛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다랗고 무거운 발, 디딘 땅의 흙이 묻어 더 무거워진 발로 단단히 땅을 딛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출근하며 ‘진짜’와 대면하는 

큐레이터의 마음

 

박물관과 어울리는 단어는 분명 ‘견학’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출근’이 맞춤 표현이기도 한데, 바로 큐레이터가 그렇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정명희 작가는 “박물관은 유적도 고택도 아닌 이상한 집”이며 “500명이 넘는 집사를 거느린 대저택에 41만 점의 유물이 산다”고 묘사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큐레이터는 꿈만 같은 직업일 텐데, “우리는 이미 각자의 보폭으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고 기억을 수집하는 큐레이터”라며 동료 의식을 북돋워주니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다. 더불어 늘 이곳을 찾는 이들을 상상하면서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건네는 말에는 여러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곱씹고 깨달은 이야기가 촘촘하면서도 다정하게 담겨 있다. “기대했던 속도만큼 나아지지 않는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91호)

 

한번쯤, 큐레이터 글 정명희 | 사회평론

일단 박물관 안으로 들어오면 바깥세상의 분주한 일상이나 나를 괴롭히던 여러 생각을 그대로 놓아둘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을 그저 바로보고 있기만 해도 되는 그 느낌이 좋았다. 발길이 멈춘 그림 앞에 서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하며 모든 것이 이대로 괜찮은 듯했다. 전시 공간에 머물 때의 느낌은 책을 펼칠 때의 몰입감과는 또 달랐다. 눈으로 다가와 마음에 머무는 이미지의 힘은 우리 안의 어둡고 후미진 구석까지 닿을 만큼 강하면서도 자유롭고 편안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마음으로, 

마음껏 상상하기
 

박물관과 미술관이 매력적이고 즐거운 공간이며 그곳에 가면 신나고 재미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지만, 막상 가보고 싶은 곳은 너무 멀리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점점 멀어지게 되어 그곳을 찾는 이유를 잃어버리면 너무 슬픈 이야기 아닐까. 

 

박물관 마니아 황윤 작가는 그간 오가며 보고 듣고 익힌 세계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안양에 꿈의 박물관을, 아니 꽤나 현실적인 박물관을 세울 계획을 전한다. 가장 인기 있는 주제 인상파 작품과 이집트 유물을 이곳에 두고 사람을 모으려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처음부터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건 쉽지 않으니 유명한 박물관의 분관을 추진하는 방법도 생각해보는 등 잠깐 정신을 놓치면 작가의 상상인지, 아니면 실제 안양시의 계획인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구체적인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어쩌면 작가의 뜻대로 안양시에 세워질 박물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변화는 정말로 꿈만 같다. 부디 깨지 않고 그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꼭 가보고 싶으니 말이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91호)

 

박물관 수업 | 글 황윤 | 책읽는고양이

203X년 박물관 개관 5년을 기념하고 앞으로 올 2040년의 발전을 위해 안양시에서 그동안의 행적을 데이터로 발표하였다. 박물관은 첫해 관람객 70만 명을 시작으로 매해 평균 50~60만 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으며, 이 중 34.4%는 국내 학교와 연관한 역사 탐방 형식이고 25.5%는 외국인 관람객이라 한다. 여기에다 안양에 관광으로 온 사람들이 소비한 금액이 XXX억 원이며 ‘박물관 입장료+뮤지엄 숍+레스토랑 수입’까지 합치면 박물관 운영에 필요한 금액을 충당하는 액수로 발표되었다. 특히 안양시의 시민 만족도 및 자부심이 크게 높아졌다.

 

 

 

 

➊ 1903년 제정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 상


글. 박태근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했습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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