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7월 2002-07-02   876

피플세상속으로 – 가난해서 행복합니다.

8년간 한국에서 자원봉사한 인도인 아니마 수사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지방선거 출마자의 유세가 마이크에서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주변 공사장의 소음도 마을을 울리고 있었건만 갑자기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마당에는 누런 개가 그늘 아래 자고 있었고 노인들이 곳곳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맑은 미소와 지난 삶을 이야기하는 작은 목소리만 선명하다. 8년 전 인도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사랑의 선교 수도회 아니마 수사는 독특한 분위기로 마주 앉은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고 대화에 빨려들게 만들었다.

삼겹살과 칠갑산

함께 사는 수사들과 교인들이 차 한잔 마시자며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인도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주변에서 묻자 아니마 수사는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인도가 아니라 일본에 갑니다. 수도회에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일본에 가서도 한국에서처럼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할 것입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가겠죠. 비자 발급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엔 스님들이 많은 반면 수사는 없습니다. 일본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디 가도 우리가 도와야 할 사람은 있습니다.”

수사의 행선지가 인도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화제는 계속 인도로 이어진다. 아니마 수사가 인도 여자들이 이마 한가운데 붙이는 장식을 시작으로 인도의 결혼풍습, 장날 풍경을 들려주자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진다. 그러다 아니마 수사가 일본에 가기 전에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 광주에 있는 야시장에 가보는 것이라고 말하자 화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얘기를 하면서 가장 신명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니마 수사.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 좋아하는 노래는 칠갑산이라고 한다.

아니마 수사는 열여덟 살이던 1968년 사랑의 선교 수도회에 입회했다. 사랑의 선교 수도회는 테레사 수녀가 1950년 창설한 남성 수도회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수도회에서 일하는 앤드류 수사를 만났어요. 그 분의 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가난하고 단순했습니다. 거기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앤드류 수사의 말을 듣고 저희 집에 가난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행복했고 저는 수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후 인도에서 계속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아니마 수사는 8년 전 한국에 파견됐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의 막막한 기분을 그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 한국 생활이 낯설고 어려웠을 때 자기를 도와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는 말도 몇 번이나 했다. 대화 내내 아니마 수사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와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게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말투와 눈빛에서 금방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서강대에서 한국말부터 공부했습니다. 그때는 ‘가나다라’도 ‘1234’공부도 너무 어려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금방 배우는데 저는 너무너무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손이 시렵습니다. 음식도 입에 맞지 않고 날씨는 너무 추운데 혼자 살아야 할 때…. 그때 참 힘들었습니다. 한국에 오자마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인도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한국말을 터득한 뒤에는 전국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 지부를 옮겨다니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열다섯 명의 말동무

“한국에 왔을 때 인도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라서 가난한 사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게 있더라구요. 집에 전화가 있고 먹을 게 있다고 해서 가난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인도의 가난한 집들과는 다르게 이 사람들은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병들어 있는 할아버지들을 찾아가서 일했고 인천에 있을 때는 동네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저를 반겼습니다. 언제나 밥상을 차려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받은 친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지낸 8년 동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게 참 즐거웠습니다.”

현재 아니마 수사가 속해 있는 서울 종로구 세검정의 사랑의 선교회에는 15명의 할아버지들을 6명의 수사들이 돌보고 있다. 병으로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 할아버지들의 수발을 하고 말동무가 되어 준다.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광주에 있을 때는 산 속에 사는 노인들을 도왔는데 그들은 먹을 것만 생기면 자신을 찾아왔었다며 그게 한국 생활 중 가장 감사했던 순간이라고 털어놓았다. 인천에 있었을 때 동네 아이들에게 라면 끓여주던 추억도 있다. 날마다 학교만 파하면 아니마 수사에게 달려와 수다를 떨고 배고프다며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단다. 간혹 짓궂은 아이들이 ‘수사님은 얼굴이 왜 그렇게 까매요?’ 하고 놀리면 ‘밤에 태어나서 그래요?’ 하고 답했다며 웃음을 짓는다.

선교회 주위에 자라는 갖가지 채소들도 다 아니마 수사가 손수 심고 키운 것이라고 했다. 손이 무척 거칠었다. 한순간도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인 흔적이 여기저기 배어 있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웃으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하니 할말이 없어진다. 아니마 수사가 생각하는 행복과 인생은 무엇일까.

“많이 가난해지면 편합니다. 나는 걱정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삽니다. 내일 뭐 먹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게 없습니다. 내일이 되어 먹을 게 없으면 굶으면 됩니다. 어디에선가 도와주는 곳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합니까. 나도 신기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생활하면 분명 누군가 도와줄 것입니다. 나는 가난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나도 가난한 사람들을 돕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앓습니다. 나는 그대로 둡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괜찮아집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가는 게 인생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게 행복인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다 좋은 옷 입고 싶고 사회생활도 하려고 들면 힘들어집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이고 인생입니다. 나는 가난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우리는 매일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캐묻는다. 행복하기 위해 일하고 더 행복하기 위해 사람을 만난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돈이 없다, 아프다, 일이 힘들다며 불행한 표정을 짓는다.

행복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았지만 아니마 수사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편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마 수사는 그저 ‘감사하다, 그래서 행복했다’는 기억만 가지고 일본으로 향한다.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자이기 때문일까. 그에겐 일체의 ‘세속적인 행복의 가치’가 없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내 그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많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살아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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