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10월 2018-10-02   389

[특집] 눈물겨운 ‘진짜 사나이’의 재림

특집3_군대 없는 나라, 군기 없는 사회

눈물겨운
진짜 사나이’의 재림

 

글. 문아영 평화교육프로젝트 피스모모 대표

 

 

입시‘전략’을 세우고 지원‘사격’을 하는 일상?

얼마 전 한 기관 주최로 청년여성을 위해 기획된 교육과정 검토 회의에 참여했다. 교육내용을 꼼꼼히 브리핑해주시는 강사님 자료에서 한 가지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들의 미래를 위한 전진기지.” 며칠 전 있었던 평화관련 행사에서는 사회자가 이렇게 얘기했다. “○○님께서 멋진 토론으로 포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다음 순서였던 나는 이렇게 내 토론을 시작했다. “평화와 관련된 행사에서까지 포문을 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사회자는 깜짝 놀라 곧바로 사과했고 장내에는 웃음이 터졌다. 

전쟁은 이렇듯 우리 일상에 촘촘하게 스며들어 있다.

 

시험을 앞두고 D-day를 계산한다. D-day는 미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FM’대로 하라고 하는데 그 FM은 라디오 채널이 아니라 ‘야전교범(Field Manual)’의 약어다. 누가 힘들어하면 ‘지원사격’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 하고 돈이 떨어지면 ‘총알’이 떨어졌다 하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입시‘전략’을 세워야 하는 일상. 월드컵에는 태극 ‘전사’가 뛰고 프로농구에는 ‘용병’이 있으며 야구에서는 ‘홈런포’를 쏘는 나날들. 어떤 노래는 이렇게도 말한다. ‘전쟁 같은 사랑.’  

 

학창시절 병영캠프에서 체험한 경쟁중심 성과주의

군복을 입은 열일곱 살의 나를 기억한다. 고등학교 1학년, 학교 학생회에 참여하면서 강원도 지역의 인문계고등학교 학생회 신입간부들을 위한 병영캠프에 다녀오게 되었다.

 

당시 나는 3박 4일간 내 몸보다 조금 큰 군복을 입고 군모를 쓴 채 강하훈련, 사격을 포함한 다양한 훈련을 받았다. 등으로 땅을 밀어 통과해야 했던 뾰족뾰족한 철조망 너머의 하늘은 유난히 맑아서 잊히지 않는다. 그날의 경험들이 모두 강렬했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축구 골대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1등으로 들어오는 사람만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하던 교관의 딱딱한 얼굴이다. 

 

고단한 하루 끝 저녁밥을 먹으려는 필사의 질주 속에서 나는 20여 명의 여자아이들 중 세 번째로 식당행 티켓을 받았고 의기양양하게 연병장을 떠났다. 처음 10명까지는 조금의 격차를 두고 한 명씩 식당으로 왔지만 그다음 10명의 아이들은 내가 밥을 다 먹고 나올 때까지 식당에 도착하지 못했다.

 

식당을 나서며 보니 남은 친구들은 구령에 맞춰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숙소로 배정된 내무반에 모두 돌아왔던 밤 시간, 먼저 먹었던 10명, 먼저 샤워하고 쉬고 있었던 10명과 그제야 내무반에 도착하던 나머지 10명이 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던 그 순간, 미묘한 긴장의 진동을 기억한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제 씻으려고 준비하는 그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금 더 쓸모 있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도 제대로 못 해서 밥도 꼴찌로 먹나. 저러면서 무슨 학생회를 할까. 

 

우등과 열등이라는 개념은 학창시절을 통해 내 몸에 스며들어왔다. 영어와 수학 과목에서 나는 영어는 우등반, 수학은 열등반에 소속되어 공부해야 했다. 영어 시간이 되면 자신감이 샘솟다가도 수학 시간이 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열심히 달려서 1등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나는 남겨져 있는 이들과 구별되었다는 차별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동등하게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말로만 존재한다는 것도 매일 매일의 경험을 통해 서서히 나의 일부가 되어왔던 것 같다. 모두의 생명의 존엄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가 성립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모두’가 아군으로 여겨질 때 만이다. 그 ‘모두’ 중 일부가 ‘적’으로 규정되는 순간, 이 가치는 더 이상 그 일부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나는 이 경험이 나만의 특수한 경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안보 불안 속 ‘진짜 사나이’만 살아남는 남한 사회 

남북한의 군비경쟁은 직접적 분단폭력을 전제로 하는 거대한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해왔다. 국가는 국가안보를 강조했고, 남북한 사회 구성원들은 안보를 위해 자신의 결정권을 양측 정부에 위임함으로써 국가의 국민 통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군대에 가는 이와 군대에 보내는 이의 관계로 설정된 남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군대와 연계된 사회 문화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한국 사회의 군사화 과정에 동원되거나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안보’를 통해서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는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면서 강자의 주도 아래 약자가 관리되는 힘의 시스템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안보교육의 프레임은 아이들의 일상, 어른들의 일상, 현대사회의 일상 속에 스며든 권력관계와 경쟁중심 성과주의 경험과 연계되어 외부의 적을 규정하고 제압해나가는 방식으로 삶의 장면 속에 촘촘하게 엮어져 들어간다. 

 

현 교육체제 속에서의 지속적인 긴장, 경쟁, 상급자 또는 권력자의 명령에 대한 복종의 경험, 침묵과 부동자세의 강요, 줄세우기와 극기훈련, 군사훈련의 경험, 체벌과 학교폭력의 경험은 몸과 마음을 동시다발, 지속적으로 마취시켜 ‘진짜 사나이’의 삶의 방식을 연마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또 상처받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음에 굳은살이 배게 하는 경험은 무감각을 가져오고, 그러한 무감각은 각 존재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퇴화, 파괴시킨다. 이렇게 불안과 불확실성은 서로에게 양분이 됨으로써 끝없는 안보불안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안보가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힘이 센 아저씨, 힘이 센 남자, 힘이 센 아버지, 힘이 센 오빠와 형이 이 나라를 지켜주어야 하며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함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어린 남성들이 힘이 세고 멋진 남성, ‘진짜 사나이’로 성장해야 하는 공동의 목표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안보교육은 심각한 젠더불균형을 초래해왔으며 ‘진짜 사나이’들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상호 검열하고 등급을 나누는 문화를 정당화해왔다. 

 

지하철 간첩신고 포스터를 보며 출근하는 일상이 낯설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을 ‘종북좌빨’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남한 사회가 준전시 상태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2018년 올 한 해 진행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과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여러 가지 균열이 발생하고는 있다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공영방송 MBC’의 프로그램을 보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싶다. “가장 독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진짜 사나이 300” 더 순도 높은 진짜 사나이를 찾겠다는 결의가 눈물 겹다. 그리고 촛불로 되찾은 공영방송이 여전히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지 못함은 더욱 더 눈물 겹다.  

 

월간 참여사회 2018년 10월호 (통권 259호)

<진짜사나이>는 MBC 간판 예능프로그램으로 최근 시즌1, 2에 이어 ‘진짜사나이 300’이라는 제목의 시즌3을 선보였다

출처 MBC 공식홈페이지

 

 

 

 

특집. 군대 없는 나라, 군기 없는 사회 2018년 10월호 월간참여사회 

1. 군대 없는 안보를 상상한다 

2. 대체복무제에 대한 고찰 

3. 눈물겨운 ‘진짜 사나이’의 재림 

4. 새로운 전쟁 앞에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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