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1월 2005-11-01   1848

사회운동에서 현대예술로, 빈 집 점거 ‘스쾃’

스쾃(squat)은 빈 공간을 점거하여 사용한다는 말로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서 자신의 양을 먹이던 행위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관습화된 목동들의 유목문화에서 온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토지의 소유관계가 엄격하지 않았던 당시 사회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스쾃은 산업혁명 때에는 노동계급과 도시빈민의 빈집점거운동으로 발전했고, 프랑스 68혁명 당시에는 지식인들과 무정부주의자, 예술가들이 결합하면서 사회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들은 스쾃에서 ‘다르게 사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실험하기를 원했고 지구촌 곳곳에서 환경, 생태, 예술 등 특색 있는 공동체를 실천하고 있다. 그들의 땅에 대한 관심은 그 땅의 주인이 누구이건 간에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에 집중된다.

공간사용에 대한 권리주장은 1980년대 초반부터 스쾃 예술가들에 의해 창작의 권리로까지 확장된다. 그러나 스쾃운동은 이름처럼 과격하지만은 않다. 스쾃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도심의 흉물이 될 수도 있을 빈 건물에 들어가 살면서 쓸만한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스쾃은 도심의 슬럼화를 막고 도시의 효율적 활용과 미관 개선을 이루는 등 사회적이고도 경제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변화를 갈구하는 예술가들의 행보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이러한 스의 기본정신을 실천하는 것 외에도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 같은 실패한 문화 행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문화예술계의 과거사 청산작업과 다름없는 이 문제에 예술인들 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이 골고루 참여하게 됨으로써 예술계 내부의 문제에서 사회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핵심은 현실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컨대 재건축을 위해 철거가 예정됐던 카페 ‘시월’ 건물을 상대로 점거연습을 감행한 일이나 6월 18일 예술인회관 분양 광고를 내 세간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점, 7월 17일 목동 예술인회관 공사현장 점거를 위해 굴삭기 퍼포먼스와 게릴라 퍼포먼스를 벌인 일이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특히 2004년 8·15 점거는 예술행정의 실패와 부패한 예술권력의 문제를 여론화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문화관광부 정문에서 1인 시위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2005년 3월에는 범국민대책위를 발족했고 9월에는 국정감사장까지 달려갔다. 예술가들이 직접 확인했던 국정감사의 현장에는 정치인들의 정치 논리, 행정부의 행정 논리, 예술권력의 처절한 로비가 있었다. 그러나 실패한 국고보조금사업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다. 볼 것 다 보고, 확인할 것 다 확인한 예술가들은 다시 발길을 돌려 예총이 있는 서울 동숭동으로 향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합법으로, 해야만 한다면 불법이라도

10월 3일 새벽 3시, 10여 명의 예술가들이 동숭동 예총회관 담벼락에 붙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속공간을 점거했다. 이번 점거는 장기간 표류하고 있는 목동 예술인회관건립사업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서 한 달 동안 계속될 예정이었다. 점거에 착수하기 전 문예진흥원에 공간사용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문예진흥원 스스로 불법건축물이라며 재건축을 이유로 거부했다. 어차피 건물을 헐겠다면 헐기 전까지라도 예술적으로 활용하고 싶다며 다시 요청해보았지만 거부당했다. 모든 행정적인 절차를 합법적으로 밟으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최후의 방법인 점거를 선택했다.

3일 하루 동안 대청소 퍼포먼스에 이어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그 다음날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병익 위원장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점거 참여 예술인들은 위원회가 민간으로 전환된 의미를 살려 목동예술인회관의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과 한 달 동안 공간을 제공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대해 김위원장은 ‘점거라는 방법은 분명히 불법이다. 문제는 최대한 합법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문을 연 뒤 ‘목동 예술인회관 문제 등 현재 예술계의 현안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점거 공간 사용문제에 대해 김위원장은 ‘독일을 여행하면서 빈 공간을 시가로 구입해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에게도 저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며 ‘일단 점거를 철수하고 한 달 동안의 행사계획서를 제출하면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협상은 타결됐다.

한국 최초의 공식예술스, 오아시스프로젝트

이번 사건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민간위원회로 전환된 직후 취해진 조치로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목동예술인회관 건립사업과 연관되어 있어 매우 예민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위원회가 유연성을 발휘해 자칫 불미스러운 사태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을 합법적인 영역으로 유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공간사용의 합법적 전환에도 불구하고 문예진흥원과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계속해야 한다. 예총의 위원회 항의 방문 등을 볼 때, 행위의 옳고 그름을 넘어 현실적으로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야 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두드러진 예로 위원회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문예진흥원 소속 건물을 예총에 무상지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사무공간이 모자라 남의 건물에 월 3,000만 원의 세를 들어 사는 상황을 들 수 있다.

동숭동 프로젝트 룸은 항상 열려 있다. 이 공간에서는 예술인회관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 외에도 빈 공간의 문화 예술적 활용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창작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공간이다. 이 실험은 2006년부터 이전될 중앙관공서들에 대한 문화적 활용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문화공간 조성방법, 공간 조성에 필요한 비용 문제, 프로그램 개발, 다양한 예술실험들의 사회적 파급 문제에 관한 것들이 포함된다. 한국 최초의 공식예술스쾃인 오아시스 동숭동 프로젝트 룸이 현재는 10평에서 출발하지만, 한 달 뒤엔 마로니에 공원을 예술가의 창작공간으로 탈바꿈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김윤환 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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