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1월 2005-11-01   832

문화 다양성과 예술적 저항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이자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이기도 한 안성기 씨는 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통과된 것을 환영하는 동시에 표결 이후 협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문화다양성 협약’이 채택된 이후에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협약의 완성을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유네스코(유엔교육문화기구)가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담긴 ‘문화다양성 협약’을 체결한 것은 스크린쿼터제를 사수하기 위한 그간의 한국 영화계의 노력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국내 영화인들은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해 자국의 문화를 지켜가기 위한 스크린쿼터제의 중요성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스크린 쿼터제가 무역자유화의 장벽이 될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정보교류의 흐름을 끊어버린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며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왔다. 안성기 씨가 ‘문화다양성 협약’의 체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힌 것은 이러한 협약이 약소국의 문화를 국제법적인 차원에서 보호할 수 있으며, 이 협약에 근거해 영화를 포함한 문화산업을 보존하기 위한 각종 규제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불가피하게 문화의 다양성과 관련한 논란은 커져만 갔다. 이러한 논란은 국제화를 통해 문화가 다양해져간 것이 아니라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가 국제화로 인해 문제로 떠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국제사회와의 공존공영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은 인류를 구성하는 집단이나 사회의 정체성이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생물 다양성이 생태계에 있어 필수의 요소인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은 문화의 교류·혁신·창조성의 근원으로서 인류에게 불가결한 것이다. 스크린쿼터를 포함한 자국의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그래서 이런 문화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과 깊게 관련돼 있다.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국제화사회에서 전통적인 국민국가에 근거한 예술의 보호를 강조하는 논의는 사실 의문시되는 면도 있다. 국민적인 경계의 관념이나 국민적인 서사가 의미의 맥락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부분적으로는 불가능해지고 있으며 그래서 국민적인 규모에서 영화예술의 연속성을 이뤄내는 것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화다양성 협약’의 체결이 보여주듯 국제화의 과정에서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무엇보다 국민적인 조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영화예술은 국민국가의 역사와 국민적 요구(정체성의 반영)를 의식·무의식적으로 반영하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국민의 관념이 ‘투영’의 산물이라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영화가 왜 국민국가의 조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가를 말해준다. 만약, 국민이 상상의 정치공동체, 즉 허구임과 동시에 객관적 현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러한 상상의 힘을 보다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국민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현실의 투영이자 대중적인 허구(국민적 표상)이다. 그러하기에 영화예술은 무엇보다 국민적인 조건에서 고려되어야만 한다.

이번 유네스코 총회 기간에는 영화배우 문소리 씨 또한 파리를 방문해서 ‘문화다양성 협약’을 지지하는 예술인선언 한국대표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소리 씨는 성명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의 예비초안이 이번 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수정 없이 채택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강력한 협약만이 각 나라의 문화정책 수립의 자주권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평화로운 공존과 균형 잡힌 교류입니다. 문화를 자유무역의 폭력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우리 시대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의무이고 시대적 요청”이라 호소했다. 문소리 씨의 발언은 문화의 공존을 위한 노력이 보편성 이전에 국민적 조건을 고려해야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이는 문화와 예술의 연속성이 이러한 국민적인 견지에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전후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은 르네상스의 회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네오리얼리즘의 기수였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는 도시 로마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국민국가와 민족적 정체성의 지속을 위한 역사적 필요성이 영화예술의 일차적인 동기와 의미를 부여한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체결은 그러나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협약의 최대 반대국인 미국이 다자간 협약을 근거로 한국의 스크린 쿼터제의 유지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것이며, 한국정부 또한 협약의 체결에 찬성표를 던지긴 했지만 이후의 후속조치와 관련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다양성을 위한 노력은 그래서 협약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이지만 근원적으로는 저항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저항은 예술적인 의미 또한 지닌다. 영화가 만약 국민국가의 조건에서 보호받아야만 한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불평등한 문화산업을 고려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영화가 국민적인 조건에서만 예외로서의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욱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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