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11월 2015-11-02   889

[여는글] ‘국정’ 역사교과서와 학문의 자유

 

‘국정’ 역사교과서와
학문의 자유

 

글.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 다니고 있음.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정부의 쓸데없는 방침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이 소란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와 국가관을 가르쳐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서 발단했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대통령 개인의 역사취향 탓으로 비난하고 말 일은 아니다. 또 논란의 공방이 우리 현대사 해석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고 해서 현대사 해석만의 문제로 보는 것도 곤란하다.

 

누가 어떻게 역사를 해석할 것인가

물론 우리 현대사 해석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서로 상대방을 친일·독재미화로, 또는 종북·패배주의 역사인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성숙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 현대사를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는 곧,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어떤 가치와 비전으로 바라보고 만들어 나가느냐라는 생생한 현실 문제인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 현대사 해석은 중요하고 그 해석을 놓고 서로 다툴 만하다. 그러나 그 현대사 해석이 하나뿐이라는 독단은 곤란하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박정희 평가만 놓고 보더라도 그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인 동시에 산업화를 성공시킨 인물이다. 민주화와 산업화가 우리 현대사의 성과라고 할 때 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쉽지 않은 문제다. 나의 박정희 평가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한걸음 크게 물러서서 보면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역시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한걸음 더 크게 물러서서 보면 다양한 역사 해석과 견해가 공존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역사인식이 올바르다고 다투는 표층 아래에 놓인, 더 심층적이고 심각한 문제는 역사 해석은 누구의 몫이냐는 문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도 있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도 있다. 이 말들은 모두 모든 역사 해석에는 현재의 관점이 불가피하게 개입되고 오늘의 문제에도 과거 역사가 개입되지 않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현실 정치가 역사 해석에 간여하는 것도 전적으로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 해석은 기본적으로 역사를 탐구하고 서술하는 역사학자의 몫이다. 나는 실증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객관적 역사서술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이 최대한의 객관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하고 논쟁하는 가운데 정직하게 생산해 내는 것이 올바른 역사해석이고 역사서술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사회 2015년 11월호 (통권 228호)

 

학문의 자유 위협하는 국가권력

역사 교과서는 이렇게 역사학계가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산하고 승인한 여러 역사해석을 후세대 교육 목적으로 정형화시킨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국가가 역사교과서를 만든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역사학자들의 학문세계에 개입하여 특정 역사해석을 선호하고 선택한다는 뜻이다. 과장하면 국가가 역사를 쓰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태의 본질 중 하나는 역사학과 국가권력 간의 갈등이다. 

이는 국가권력이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학문세계 전체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학문은 외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자기 스스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거쳐서 발전한다. 학문의 자유와 자율 없이는 학문의 발전도 없다. 국가권력이 학문의 영역에 간여하는 것은 서구의 봉건시대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조선왕조도 그러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문 세계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돈의 논리와 힘에 좌지우지되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 연구가 위축되고 자연과학 연구도 기업에 종속된 지 오래다. 여기에 더해 국가권력까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지경이 된다면 우리 학문의 앞날은 암담하다. 나만의 기우일지 모르겠으나, 학문의 자유가 침해되면 머잖아 생각의 자유가 훼손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당연히 약화될 것이다.  

    
어쩌다 역사교과서를 국가가 직접 만들겠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이런 엉뚱한 생각은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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