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3월 2007-03-01   354

작지만 큰 행복

친구들이 있다. 사춘기 시절 진작 버렸어야 할 변덕을 20대가 넘도록 질질 끌고 다니고, 싫은 소리 들으면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 하고, 그러면서 술값 한 번 제대로 낸 적 없는 나에게도 친구들이 있다. 왜 나와 놀아주느냐고 물었다가는 훌쩍 떠나버릴 것 같아서, 나는 오늘도 그들과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든다. 그야말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친구들이다. 나머지 이 할은 술이고.

인간이란 여러 사람을 만나고 겪으며 성장하는 법이다. 길다고 하기에는 죄송하고 짧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나의 이십삼 년 동안에도 많은 인연이 있었다. 조용히 잘못을 꾸짖던 선생님, 나에 대한 아쉬움을 어렵게 꺼내던 친구, 서투른 나의 노래에 웃으며 박수를 보내던 사람들,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수고한다며 음료수를 건네주시던 아주머니까지도. 그런 사소한 만남들은 큰 인연 못지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모두 내가 사람들 속에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것은 두껍고 지루한 교과서가 아니라 얇은 시집의 한 구절인 것이다.

때로는 원치 않은 만남에 휩쓸리기도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조롱에 상처 받기도 한다. 이럴 때 몽고메리는 자연으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내가 향한 곳은 다시 사람들 속이다. 누구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기에 누구만을 소중히 여기지도 못 한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심지어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로 받는 순간 만큼은 전부 고마운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오만한 생각이 나의 매력이자 단점이지만, 그럴 수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치료 받은 나 자신은 조금 성장하기 마련이고, 그럴수록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으니까.

얼마 전 내 안에 누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주저 없이 내가 있다고 답했다.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비틀즈조차 ‘I Me Mine’을 노래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내 안의 나’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난 돌을 둥글게 해준 것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작은 만남에서 큰 인연까지. 사소한 손짓에서 가시 있는 말까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오늘도 나는 조금씩 변화해간다.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달려가는 동안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까닭은, 내 주변에 있어준 모든 이들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내일 나는 누구를 만나게 될까, 10년 후에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나중에 자식새끼 이름은 뭐라 지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웃고 있다. 슬픔일랑 없을 것 같은 내일의 내 모습. 설령 어려움이 눈앞에 닥친다 해도 내 안의 내가 멋지게 극복하리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조용석 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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