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아이로 키우면 아이밖에 안 된다
김영규 회원
글 김수 영화인
사진 Nina Ahn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학교 2013>의 초반부 한 장면. 주인공 고남순(이종석)은 학습 장애를 겪는 친구를 보듬기 위해 시를 한 편 읊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학습 장애를 겪는 아이를 ‘틀린’ 존재로 봤던 어른들에 비해, 고남순은 친구를 조금 ‘다른’ 존재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뒤처진 친구를 기다려주고 다르다고 배척하지 않는 깜냥을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를 연일 자극적으로 다루는 언론 보도, 혀를 끌끌 차며 아이들을 미숙하게만 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재단하는 건 부당하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 아이들을 구겨 넣는 방식은 온갖 꿈을 꾸며 다양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아이들의 생기를 담지 못한다.
요즘 아이들?
“요즘 아이들이 제가 고등학생일 때보다 나아요. 솔직하고, 자기주장 분명하고. 어른들 눈치 보고 가식 떠는 모습이 없더라고요. 저만 해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 어려워 했고 교무실에 가본 일도 손에 꼽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교무실에도 쉽게 들르고 교사들한테 자기 얘기도 편하게 해요. 선생님을 친구처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영규 회원은 고등학교 지리교사로 재직 중인데, 요즘 아이들에 대해 언론에서 다루는 자극적 기사와는 사뭇 다른 평을 내놓는다. 소크라테스 시절부터 내려왔다던 ‘요즘 애들 버릇없어’ 류의 이야기가 반전되는 순간이다.
“또래 간 커뮤니케이션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어요. 온라인 게임이나 SNS를 통해 일상적으로 소통하면서 경험과 감정을 즉각적으로 나누거든요. 그러다보니 소통 감수성이 발달한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이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에만 빠져있다는 세간의 우려도 김영규 회원의 시선엔 아이들의 장점을 발달시키는 근거가 된다. 김영규 회원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이들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가 너무 부정적이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언론에서 워낙 극단적인 사례를 다뤄서 그렇지 착한 아이들이 훨씬 많아요. 아이들은 교사가 노력하는만큼 피드백을 줘요. 요즘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은 예전보다 세련된 부분이 많아요. 저는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의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그들의 문화에서 쿨한 사람이 되는 게 관건이지요.”
이런 추세면 인터뷰 내내 아이들의 장점만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태도로 미루어 아이들과 공명하고 스승으로서 지도하는 교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점도 분명 있을 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담당 과목이 지리예요. 고3 학생들의 경우 사회탐구 영역은 자신이 수능에 응시하겠다고 선택한 과목이 아니면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친구들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요.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기형적으로 되어있다 보니 이걸 아이들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고요.”
대학 서열과 경쟁을 부르짖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입시 위주의 과목에 치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교육 현장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김영규 회원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학급당 인원수 감축이라고 답했다.
“한 반에 인원이 40명 정도 돼요. 그러다보니 담임 업무가 과중할 수밖에 없어요. 담임과 비담임 교사 간 업무 강도 차이도 굉장히 크고요. 아이들과 교사가 대면하고 나누는 소통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학급당 인원수 감축이 필수예요. 현재의 절반 수준인 한 반에 20명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봐요. 이명박 정권 이후 학급당 인원수 감축이 아닌 교사당 인원수 감축으로 제도가 바뀌었어요. 지표로만 보면 교사 한 명이 담당하는 학생 수가 줄어서 교육 환경이 좋아진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예요. 교사당 학생 수 지표는 비담임 교사까지 포함하거든요.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관리하는 건 담임교사의 몫인데, 통계로 장난치는 셈이죠.”
학급당 인원수 감축의 필요성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10여 년 전과 비슷한 수준. 왜 개선되지 못하는 것일까?
“교육 정책은 당연히 교육적 목표를 설정해서 그것에 맞춰 예산을 책정해야 하는데, 실상은 돈에 맞춰서 교육 정책을 수립해요. 예산이 부족해서 불가능하다며 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젊고 멋모르는 교사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건 국가의 의지 문제라고 봐요.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멀쩡한 강 바닥을 파는 데도 22조 원을 쏟아 붓는데, 학급당 인원수를 20명 정도로 감축하는 게 어려울 이유가 없어요.”
강남과 강북의 차이?
김영규 회원은 소위 ‘강남 8학군’의 하나로 불리는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현재는 강북에 위치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길지 않은 교사 생활 동안 강남과 강북을 오가며 그 교육 현장의 차이를 몸소 체험한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은 학교 종이 땡 치면 학교로 와서 교사들을 만나는 게 일상이예요.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작은 일만 생겨도 학부모부터 불러요. 그러다보니 강남에선 아이를 보면 아이만 보이는 게 아니라 등 뒤로 학부모 얼굴이 겹쳐 보여요. 워낙 자주 방문하고 영향력을 미치니까 아이의 얼굴에 엄마 얼굴이 오버랩 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재직 중인 학교에선 학부모 부르는 게 엄청 큰일이거든요. 대부분 맞벌이를 하니까 바쁜 학부모를 부르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소위 ‘강남 학부모’ 이미지도 과장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강남 학부모를 거만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아요. 엄청 예의 바른 편이예요. 교사를 어려워 하고 깍듯이 대하고요. 불만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않아요. 다만 외부적으로 교사를 압박하는데, 그게 더 무섭긴 하죠.(웃음)”
학부모의 자식 사랑과 교육열의 크기가 어떻게 지역으로 나뉘겠냐마는 경제력에 따른 학부모의 학교 개입 수준의 현실적 격차는 분명 존재한다. 김영규 회원은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건강한 학교 교육 환경의 핵심은 결국 사제 간의 소통과 보살핌이기 때문이다.
그림者, 그림 그리는 사람들
그가 참여연대 회원이 된 건 2011년 가을이었다.
“잡지를 보다가 우연히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광고를 봤어요. 평소에 관심이 있던 사진이나 드로잉 분야의 수업이 있어서 눈여겨보는데, 회원은 강좌 수강료를 할인해 주더라고요(웃음). 강좌를 들은 건 그보다 시간이 지나서고, 전부터 관심이 있던 차에 눈에 띈 김에 가입했어요.”
그리고 2012년 봄에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서울 드로잉> 강좌를 들었다. ‘초딩’ 수준이었던 김영규 회원의 그림 실력은 드로잉 수업을 마칠때 쯤엔 ‘고딩’ 수준이 되어 있었다.
“강좌가 끝난 후에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은 사람들끼리 <그림자者> 모임을 하고 있어요.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요. 최근엔 모델을 섭외해서 누드 드로잉을 하기도 했어요. 어제도 모임을 가졌는데,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문득 ‘내가 이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는데 2시간이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친해지니 이야깃거리도 많고, 대부분 참여연대 회원인 데다 같은 강좌를 들었던 멤버들이라 신뢰도 있고요. 나이 들어서는 새로 만나는 사람들이랑 친해지기 어렵잖아요.”
3월 4일부터 15일까지 참여연대 카페통인에서 두 번째 <그림자> 전시회를 한다.‘기쁨’을 주제로 카페통인에서 열릴 예정이다.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좋다는 김영규 회원은 어떤 그림으로 기쁨을 이야기 할까.
김영규 회원이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서울 드로잉> 강좌를 수강한 후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한 <숨은서울찾기> 전시회에 낸 작품. 전시회는 2012년 6월 22일부터 7월 2일까지 카페통인에서 열렸다.
인터뷰 내내 공손하지만 소신 있게 질문에 답하고, 교육 현장의 문제를 아이들 탓으로 돌리는 법이 없는 김영규 회원. 어쩌면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내 아이만을 챙기는 학부모의 욕심과 ‘요즘 아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편견이 부추기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새 학기를 맞는 학부모들을 향한 김영규 선생님의 당부를 전한다.
“아이들을 너무 어리게만 보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는 부분이 있으면 수긍하면서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면 저마다 주관과 근거를 갖고 있더라고요. 어른들이 이미 정해 놓은 답을 주입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구한 답을 가지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어요. 아이는 보살핌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크기도 하거든요. 아이를 아이로 키우면 아이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김수 합리적 낭만주의자. 10년 넘게 영화에 대한 외사랑을 지키고 있는 나름 순정파. 인터뷰가 타인과 소통하며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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