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3월 2013-03-08   1573

[특집] 인간의 조건 – 인간적인 상담을 하고 싶다

인간의 조건

인간적인 상담을 하고 싶다

 

 

조혜순 희망연대노조 다산지부 ktcs 지회장

 

 

경쟁의 대가는 정체성 잃은 상담

 

나는 서울시청의 대표 전화 120 다산콜센터의 상담원이다. 그리고 외주 업체 ktcs의 직원이기도 하다. 다산콜센터는 3개의 외주 업체에 위탁되어있어 상담원끼리 소속이 다르다. 우리는 기본급 99만 원에 콜을 많이 받았는지, 친절했는지, 업무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였는지, 후처리 시간이 짧은지 등을 계량한 수치를 가산하여 급여를 받는다. 고로 외주 업체끼리, 상담원끼리 서로 경쟁 상대이다.

 

그래서 서울시민들의 말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가, 점수를 더 받기 위해 상담을 빠르게 진행을 해야 하는가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내가 점수 몇 점, 돈 몇만 원을 포기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외주 업체 3사가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게 외주 업체에 위탁한 서울시의 목적이고, 그 경쟁의 대가로 우리는 가난하다. 정체성 없는 상담원들.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하나…….

 

 

이리 저리 치이고 멍이 든다

 

일러스트 황진주

“모든 문의는 120다산콜센터로 하세요”라고 되어있지만, 실상 우리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제한적이어서 대개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를 안내한다. 서울시는 다산콜센터에 버스 노선 변경 정보 정도를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다산콜센터는 모르는 것들이 많다. 시청과 구청 사이에 공문이 오갔거나 정책이 바뀌었어도 어떤 정책이 바뀌었는지, 왜 바뀌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문의가 오면 양해를 구하고 담당자를 찾아 이리저리 전화해야 한다. 간혹 그런 중요한 사항이 왜 우리에게 공지되지 않았나 싶어 왕따 당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긴 우리는 서울시청 직원은 아니니까…….

 

민원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드리고, 업무 진행 절차에 대해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필요한 정보만 듣고 끊어버리는 전화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지만, 갖은 욕설과 폭언은 아무리 자주 겪어도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다. 가능한 한 많은 상담을 처리해야 할 뿐, 감정을 추스를 시간은 없다. 하루 8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마라톤을 한다. 옆에 있는 너보다, 다른 업체보다 많은 상담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종종 울먹이는 목소리로 시민을 대할 때도 있다. 상담원은 화풀이 대상이 아니라고, 자동 응답기가 아닌 사람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언어는 제한되어 있다.

 

매뉴얼에 따른 상담에 만족하지 못하는 민원인을 구청이나 시청 담당자에게 연결하면 공무원은 그런 민원 전화를 대신 받으라고 다산콜센터가 있는 거라며 전화를 넘긴다고 핀잔한다. 담당자에게도 민원인 전화가 많이 오겠지만, 우리보다 많이 받나?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참고, 설명을 했으나 이러저러해서 담당자를 찾는다며 한 번 더 부탁하여 전화를 연결한다. 그 사이에 기다리다 끊는 민원인도 있다. 담당자가 너무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하여 “담당자가 지금 자리 없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의 노예. 그렇게 우리는 멍이 든다.

 

 

인간답게 상담하고 싶다

 

대부분의 상담원들은 여성이다. 엄마 상담원들은 대부분 퇴근하면 집안일을 하고 12시가 넘어야 잠이 들고 다음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느라 일찍 일어난다. 내 시간은 없다. 아이를 낳아 출산휴가를 다녀오면 연차휴가도 없다. 전년도에 쉬었으니 연차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쉬게 되면 그만큼 급여가 삭감된다. 이 때문에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두고 출근한 언니들을 보면, 직장 내 어린이집만 있어도, 양육수당이라도 받으면 좋겠다 싶다. 하긴 명절 상여금이 3만 원 인데, 양육수당을 줄 리는 없겠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 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은 돈 밖에 없었다. 잠을 못 자고, 아픈 아이를 맡기고 일하러 나오고, 욕을 먹고, 인격적으로 무시를 당해도 결국 돈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돈만 있다면 아이를 잘 기르고, 내 집에서 대출 걱정 없이 잘 지내지 않을까? 사람에게 필요한 의식주는 다 돈으로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과연 돈이 많아 일을 하지 않으면 행복할까? 내가 이룰 것이 없고, 목표가 없는데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서울시를 대표하는 전화를 받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혼란스럽다. 직접고용이 되면 서로 경쟁하지 않고 아픈 사람들의 말을 더 자세히 들어줄 수 있을텐데 간접고용이 나를 제3자로 만든다. 우리에게는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우리의 권리를 주장한다. 조합원들은 함께 일하면서도 데면데면하던 사이에서 인사를 나누는 따뜻한 관계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다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다. 나의 한 마디가 시민들에게 소중한 정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 살면서 서로 위로가 되고, 내 꿈을 이루어 나가는 게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 한 번 더 옆을 돌아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자부심이다. 우리가 그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조혜순 10여 년 동안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했다. 노조 설립으로 상담원들도 권리를 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상담원들이 노동조합으로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

 

 

월간 참여사회 2013. 3월호 [특집] 인간의 조건
김 대리 격문
엄마는 신神이 아니다
인간적인 상담을 하고 싶다
5년차 직딩 채식인의 하루
한국에서 이주 여성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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