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0월 2005-10-01   732

‘묻지마’ 개발은 그만, 삶의 질 끌어올리는 지역 개발을

대규모 개발사업 건드리지 않은 부동산 개혁 방안

오랜 논란 끝에 지난 8월 31일 정부의 ‘부동산제도 개혁방안’이 발표됐다. 아직 국회의 입법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부동산 시장을 투명화하고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수요를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의 있는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동안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번 부동산 종합대책은 주택에 대한 투기적 수요뿐만 아니라 토지에 대한 과도한 개발과 소유를 억제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2004년 1월 부과 중지되었던 개발부담금이 부활되고 기반시설부담금제도가 신설되며, 비사업용 토지와 부재지주 토지에 대해 보유세와 양도소득세를 강화했다. 또한 그간 지방의 대규모 개발사업 주변지역의 투기 원인이 되었던 현금보상제도를 채권보상으로 전환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종합대책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 산업단지 등의 대규모 개발사업에 따라 지방의 지가가 급등했던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사업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수도권에서 새로 송파 거여 신도시를 개발하고 기존 신도시와 국민임대주택단지에서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계획을 포함시켜 개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이나 주택 문제를 새로운 개발사업을 통해 해결하려는 지금까지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동시 개발 악순환

전국적으로 주택보급률이100%를 웃도는 현실을 고려하면, 수도권 주택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주택량의 절대적인 부족보다는 인구와 기능의 과도 집중에 있다. 수도권에서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이미 집중된 인구와 산업의 수요 충족을 위해 끊임없이 개발을 확대해왔다.

지방에서도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새로운 개발을 추진해 왔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대규모 개발사업이 그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에서 동시에 개발이 확대되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본격화된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수많은 종류의 도시를 지방에 건설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3개의 경제자유구역, 제주국제자유도시, S-프로젝트, 지역특화발전특구 등이 그것이다. 이 사업들은 분권과 분산, 분업의 원칙에 입각해 지역혁신과 지역균형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공간 조성으로 결국은 개발주의적 속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수도권에서도 인천경제자유구역 지정 이후 개발제한구역의 조정, 성장관리권역의 첨단업종 공장 증설 허용, 평택 개발, 첨단산업 분야 외국인 투자기업의 대기업 공장 설립 허용, 판교 김포 파주 등 제2기 신도시와 국민임대주택단지 건설, 공공기관 이전지역 개발 등 규제완화와 개발계획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개발 확대 경향은 자치단체가 작성 중인 도시기본계획에서 확인되고 있다.

2005년 6월 현재 경기도 31개 시군이 수립했거나 수립 중인 2021년 도시기본계획의 목표인구는 지금보다 391~608만 명이 늘어난 2,724~2,941만 명에 이른다. 인구는 도로, 상하수도, 주택, 시가화 용지 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개발이 확대될 것이 자명하다.

발전은 제쳐놓고 건설에만 치우친 개발 논리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개발이란 것에 대해 회의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지역균형발전정책에서는 발전과 성장이 개발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역 발전에 관심이 많은 자치단체일수록 개발사업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개발이라는 개념에는 시설의 건설 외에도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발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 사회는 물리적 개발에만 치중하게 되었을까?

우선, 짧은 시간에 지역발전의 성과를 보려는 정책당국자나 자치단체장의 조급증을 들 수 있다. 때문에 긴 시간을 두고 구조를 바꿔가는 발전보다는 단기간에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개발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건설산업 때문이다. 과도한 건설산업은 끊임없이 새로운 개발처를 찾게 된다. 건설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와 투자효과 때문에 단기적인 경기변동에 민감한 정부는 건설경기 활성화를 통한 경기진작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

셋째는 성장지향적 계획체계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토계획은 출범부터 개발주의적 속성을 띠고 있었다. 특히 국토종합계획은 압축적인 경제성장 과정에서 산업화를 지원하기 위한 공간계획으로 출발했으며, 경제부문의 개발수요를 공간계획에 수용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때문에 국토계획은 국토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쾌적한 삶의 공간을 실현하기보다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유도하거나 사후 합리화해주는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넷째는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업자체의 비용·편익보다는 개발로 인한 지가상승이나 자본이익을 목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지게 되어 과도한 개발이 발생하게 된다.

,b>지역개발, 왜 어떻게를 고민해야 할 때

지난 8월 건설교통부는 기업도시 시범사업에서 유보되었던 영암·해남과 태안을 시범사업지역에 포함시켰다. 이로써 기업도시는 이미 지정된 원주, 무안, 무주, 충주를 포함해 6개로 늘어났다. 전국 11개 시도에 추진되고 있는 혁신도시, 3개의 경제자유구역, 31개의 특화발전특구, 3,000만 평에 이르는 S-프로젝트…….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시가 지방에 건설될 것인가. 이 도시를 무엇으로 채우며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앞서 대규모 지방도시 개발사업이 지역과 지역주민에게 어떠한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엄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 만들어지는 도시들이 기존 지역과 무관한 ‘개발의 섬’이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집합체에 그치거나 투기꾼들을 불러모으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지역개발사업이 장소의 번영이 아니라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기 위해서는 외부에 의한 개발이 아니라 지역 안의 자원과 인력을 활용하는 구상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적 자원을 활용하면서 지역 산업과 연계될 수 있는 발전 모델을 주민과 산업 주체,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마련하여야 한다. 작지만 체계적이고, 느리지만 성공적으로 지역과 결합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