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0월 2005-10-01   1113

불필요한 필요를 만들어내 환경을 망치는 토건국가

토건이란 토목과 건축의 줄임말이다. 흙과 나무라는 한자어인 토목은 목재와 토석, 철재 등을 이용해서 도로, 둑, 교량, 항만, 철도, 상하수도 등을 건설하는 일이다. 건축 역시 나무, 돌, 벽돌, 쇠 등을 이용해서 건물이나 시설물을 만드는 일이다. 인류가 문명을 가진 이후 토목과 건축은 끊임없이 일어났고, 이들 기술이 없었다면 문명은 아직도 토굴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없는 수요를 만들며 국토를 파괴한다

그러나 환경 측면에서 보면 토목과 건축은 환경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이다. 다리를 놓고, 건물을 짓는 행위 자체가 기존의 자연을 인간의 뜻대로 변형하는 것이고, 그 재료가 되는 나무, 돌, 쇠를 가공하는 일 역시 제2, 제3의 환경파괴를 낳기 때문이다. 토목, 건축과 환경파괴의 이러한 전통적 관계는 권력이 개입되면 새로운 양상으로 바뀐다.

쉬운 가정을 하나 해 보자. 당신은 물건을 파는 상인이다. 물건이 한참 잘 팔릴 때 직원도 늘리고 생산 설비도 늘려서 많은 수익을 거두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물건을 갖게 되고 따라서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업종을 바꿀 것인가? 사업을 접을 것인가? 조금만 머리를 쓸 줄 아는 상인이라면 자신이 팔던 물건보다 더 좋은 다른 물건을 내놓고 이전 것보다 좋다고 선전하고 다닐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건’이라고 떠들었던 것이 모두 거짓말인양 말이다.

만약 내가 국가기관에 물건을 판다면 정책적으로 내 물건이 사용될 수 있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마치 이 물건이 사용되면 엄청나게 생산성이 향상되고 국민들의 삶이 한층 윤택해질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이것이 결정되면, 국가는 상인의 말을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달한다. 그래야 왜 그것을 구입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사의 원리이고, 자본주의와 국가가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다.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하고, 국가는 그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다시 확대 재생산한 형태로 홍보한다. 이러한 방식은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생태주의자들의 비난을 줄기차게 받아왔다. 그 중에서 토목과 건축으로 인한 이윤추구는 다른 상품과 달리 자연환경을 직접적으로 파괴하기 때문에 더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왔다.

사회를 반생태적으로 몰아가는 토건

현재 천성산 구간 공동조사가 진행 중인 고속철도의 예를 보자.

고속철도 개통 이전부터 고속철도의 실효성(경제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았다. 천문학적인 공사비와 과다 책정된 교통수요 예측은 왜 고속철도를 건설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항상 봉착했다. 날마다 평균 22만 명이나 이용할 것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건설비도 계속 늘어나 처음 5조원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18조원으로 늘어나 버렸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이해찬 국무총리조차 ‘하루 7만 명만 이용할 것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서둘러 건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국가의 큰 부담이 되었다. 사업을 추진했던 건설교통부조차 ‘고속철도 운영부채, 이자 등으로 철도공사에 매년 1조원의 적자가 생기고 2010년이 되면 누적적자가 12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국가예산지원을 요청했다. ‘왜 고속철도를 건설할까?’라는 질문에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답을 찾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의 적자는 결국 국민이 떠 안게 되고, 책임지는 공무원 없이 대금은 지불되고, 건설업체는 실적을 올리게 된다. 결국 국민이 세금을 모아 건설업체에 가져다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십분 양보해서 빚이야 갚으면 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건설공사로 파괴된 자연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지율스님의 단식으로 세상에 알려진 천성산 관통 터널도 마찬가지이다. 천성산 터널이 미칠 영향을 조사한다고 하지만, 결국 터널은 -건설업체와 정부의 뜻대로- 뚫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몇 가지 조치만을 취하게 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답답한 현실을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건설업체와 정부가 긴밀히 붙어 움직이는 토건국가의 예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핵폐기장 건설문제에서도 확인된다. 부안 사태가 불거졌을 때 부안에 건설업체들이 ‘등록 성시’를 이루었다. 핵폐기장 건설공사가 진행되면 지역경제 발전 등을 이유로 지역업체를 선정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군산, 포항, 경주, 영덕 등 핵폐기장 주민투표가 진행되는 지역에서 찬성 측 인사들 중에 건설업자들이 많다는 것 역시 건설업이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들이 앞장서서 만들어가고 있는 핵폐기장 유치 열풍과 핵발전의 안전성 홍보는 우리 사회 전반에 핵 안전 불감증을 퍼뜨리고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바꾸려는 노력을 가로막고 있다. 토건국가의 피해는 직접적인 환경파괴를 넘어 국민의 이데올로기를 바꿔 반생태적인 사회로 만드는 데까지 이어진다.

‘개발=발전’의 환상을 버려야 한다

원래 토목과 건축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일익을 담당해왔다. 우리의 선조들이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집과 건축물을 지은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자연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서 토목과 건축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토건이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국가중심의 개발주의와 만나게 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이윤 추구를 위해 ‘불필요한 필요’를 만들어내기, 그 비용을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기, 이를 막아내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오히려 장려하기 등이 토건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들의 손아귀에서 놓여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작업을 치밀하게 감시하고 막아내는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또한 사회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개발’과 ‘지역발전’에 대한 환상을 하나씩 깨뜨리지 않는다면, 토건국가의 악행을 결코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헌석 청년환경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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