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10월 2005-10-01   365

뚱뚱한게 죄인가?

10월이다. 어느새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 우리 앞으로 훌쩍 다가왔다. 천고마비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뜻이다. 그만큼 계절이 좋아서 식욕이 좋아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높은 것은 즐거울 수 있으나 식욕이 좋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식욕이 좋아지면 살이 찌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살이 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주위를 살짝 둘러봐도 각종 다이어트 관련 상품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정말 건강을 위해 살을 빼는 걸까? 오히려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살을 빼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도대체 이 사회에서 살찐 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기에 이렇게 호들갑일까?

하지만 한번만 살이 쪄보면 주위에 비수 같은 시선들을 경험하게 된다. 나 자신도 상당기간 동안 소위 비만이었다. 174㎝의 평범한 키에 86~87㎏의 체중을 3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는데 그다지 불편은 없었다. 다만 가슴과 배가 좀 많이 나와서 티셔츠 입기가 부담스럽다는 거 외에는 말이다. 오히려 맛있는 걸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넉넉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냉정했다. 당장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부터 벗은 나의 모습을 보고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한다. “여보야, 가슴 보니까 브래지어 구입해야겠다.”

충격적이었다. 그 말에 엄청난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 뒤로는 아내 앞에서도 옷을 벗기가 겁이 났다. 친구들의 반응은 조금씩 강도가 높아진다.

“진한아, 걷는 거 보니까 뒤뚱뒤뚱 한 게 펭귄 같다.”

“영화 <역도산>에 나오는 설경구 몸매 같다.”

이런 얘기들을 자주 듣게 되었다. 이런 지적은 나의 모든 습관에도 집중되었다. 주말에 늦잠을 즐기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받으면 한마디 던진다.

“야, 그렇게 자빠져 자니 살이 찌지.”

살 찐 사람은 늦잠도 못 잔다. 그런 말들이 나에게 엄청난 상처로 다가왔다. 그 때부터 독한 마음을 먹고 살을 빼기 시작했다. 처절한(정말 이 표현 밖에 없다)고통 속에 5개월 만에 12㎏ 가량을 감량했다. 주위 사람들은 은근히 놀라는 눈치다. 살을 빼고 나니 조롱은 사라졌다. 오히려 찬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나 자신은 별로 기쁘지 않다. 살 뺀 후유증으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요요현상에 대한 걱정으로 약한 거식증 증세까지 나타나고 있다. 음식을 보면 즐거운 것이 아니라 겁부터 난다. 삶의 중요한 기쁨이 사라진 것이다. 가끔 꿈에서 심한 요요현상으로 체중이 100㎏쯤으로 불어있는 나를 볼 때가 있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다. 악몽도 이런 악몽이 없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무섭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이 선다. 살이 찌면 다시 사람들의 조롱의 중심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기사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40세 이상 31% 비만 ‘뚱뚱보 한국인’. 한국사회에서 살이 찐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전진한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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