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2월 2007-02-01   1331

30년 상록야학맨이자 ‘대천장’ 주인인 최대천 선생님

학생 때 외박하고 집에 안 들어간 날이 있었다. 다음날 어머니가 대뜸 하시는 말씀. “또 최 선생님 댁에서 자고 온 거냐? 전화 좀 해라.” 그 때 ‘아, 내가 대빵 선생님 집에서 많이 놀았나 보네. 어머니가 이렇게 여길 정도면.’하고 생각했다.

최대천 선생님은 서울 회기역 근처에 있는 상록야학 교감선생님이다. 내가 1996년 상록야학에서 활동할 때 만났으니 벌써 10년이 넘게 알고 지냈다 보다. 올해로 예순이 되었지만 여전히 건빵바지에 빨간 셔츠를 입고 가끔 야구모자까지 쓰고 나랑 같이 다니면 친한 선배랑 같이 논다고 여겨질 정도다. 실제로 서슴없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친한 선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최대빵이라는 호칭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선생님은 중랑천 근처의 판잣집 밀집 지역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지역에 학교 가지 못하는 청소년이 많다는 것을 알고 동사무소 한 구석에 공부방을 마련한 것이 상록야학의 시작이다. 76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상록야학에서 수업을 하고 있으니 30년 ‘상록야학맨’이다. 공무원 퇴직한지 몇 년이 흘렀지만 상록야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긴 한번 상록야학에 맛을 들이면 그곳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내가 상록야학맨이었던 시절 야학협의회 일을 맡은 적 있다. 다른 야학의 경우 사람들이 1~2년 이상 계속 있는 경우가 드물다. 회의에 올 때마다 사람이 바뀌기 때문에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상록야학의 경우 보통 3~5년은 있게 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최대빵이다. 최대빵과 회기역 근처를 같이 걷다보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나누느라 바쁘다. 탁구장 주인, 호프집 아저씨, 가게 아주머니 등등 모두에게 친하게 구는 그의 털털한 성격 탓이다.

여태 주례만 200번을 넘게 선 ‘전문 주례선생님’인 그는 정작 총각이다. 만일 최대빵이 결혼하게 된다면 잠실 종합운동장을 빌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긴 상록야학 졸업생만 해도 3000명이 넘으니 농담만은 아닐 것 같다.

대빵 선생님 댁에 자주 놀러가던 상록야학맨 한 명이 어느 날 문패를 맞춰온 적이 있다. 그 문패에는 ‘대천장’이라고 씌어있었다. 상록야학맨들에게 대빵 선생님 댁은 여관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문패를 우리가 아파트 현관문에 걸어놓으면 대빵 선생님이 남우세스럽다고 떼어버리고, 그러면 우리가 다시 걸어놓는 실랑이가 반복되었다. 그런데 그 문패를 치우기만 하지 버리지 않는걸 보면 아예 싫지만은 않은가 보다. 다음번에 대천장에 놀러가면 다시 그 문패를 붙여봐야겠다.

이상민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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