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2월 2013-02-14   15395

[만남] 봉화치에서, 거칠고 느린 삶, 소박한 기도 – 김씨돌 회원

김씨돌회원 인터뷰

집에 드나드는 산새들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김씨돌 회원. 아저씨는 집에 가기 전부터 “통나무 5년 땔 거 해놨어. 5년치 해놓으니 부자 된 기분이야.”라고 자랑스레 말하더니, 집에 가니 손님들에게 장작 패고 나르는 일을 도와달라 하고는 사람이 많아 금방 했다며 좋아한다. 아저씨는 그렇게 쉽게 도움을 주고 아무렇지 않게 도움을 받으며 기뻐한다. 

 

봉화치에서, 거칠고 느린 삶, 소박한 기도

김씨돌 회원

 

글·사진 편집팀

정선에서 동강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조양강을 따라 아우라지 방향으로 굽이굽이 거슬러 올라가다가보면 북평면이라는 평평한 지형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 남평리로 들어가 논밭 사이로 5분 남짓 차를 몰다 보면, 돌연 불쑥 솟아오른 듯한 가파른 산등성이를 만난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한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봉화치 마을이 나타난다. 봉화치는 봉화를 올리던 곳이다. 태백에서 정선과 평창으로 이어진 태백산맥의 준령들을 병풍처럼 거느리고 있다. 아래로는 굽이굽이 동강의 물길이 장관이다. 신선이 나올 것 같은 동네, 여기는 ‘6.25동란마저도 비껴갔던’ 숨겨진 마을이다. 예닐곱 가구가 사는 마을까지 시멘트 길은 닦여있지만 눈이라도 내리면 군청에서 포크레인을 동원해 눈을 치워주어야 차가 들어올 수 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6개월간은 인적이 끊기곤 한다. 대부분의 핸드폰이 불통이다. 봉화치 사람들은 사람이 반갑고 말이 그립다. 봉화치 강아지 길순이도 낯을 가리지 않는다. 거기서 김씨돌 아저씨를 만났다. 김씨돌 아저씨는 종횡무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말이 두서가 없다며 껄껄 웃는다. 

 

짐승을 품고 사는 토끼 아저씨

 

김씨돌 아저씨는 참여연대의 오랜 친구,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친구다. 최근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그의 산속 생활이 소개되면서 그이의 얼굴을 알게 되었다. 그가 가끔씩 참여연대로 보내오는 종이 상자 안에는 그이가 텃밭에서 키운 당근 따위의 채소들과 풀꽃들이 향기롭게 담겨져 있었다. 그가 참여연대 사람들을 초청했다. 

봉화치 오르는 길 중턱에서 눈을 치우던 아저씨가 일행을 반겼다. 웃음이 많다. 초면인 이태호 사무처장을 오랜 친구처럼 반기며 한 번 안아보자 한다. 낡은 바지며 스웨터에 찢어진 데가 언뜻 봐도 예닐곱 군데… 왼쪽엔 파란, 오른쪽엔 빨간 양말을 신었다. 

 

“동네 사람들, 스님이나 목사님께서 주신 옷들이 부엌에 가면 많아요. 근데 그 옷들 사이사이에 들짐승들이 들어와서 둥지를 틀어요. 신문 한 장, 옷 한 벌이 짐승들에게는 보금자리가 돼요.” 

 

아저씨네 집은 봉화치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버려진 농가다. 김씨돌 아저씨는 이 움막과도 같은 폐가에서 24년째 살고 있다. 마당 안팎에는 수풀이 무성하고, 마당 이곳저곳에 땔감용 나무 등걸과 지난 20여 년간 동네에서 주워모았을 잡동사니들이 가득하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날만한 통로 좌우에는 산새들에게 겨울 양식을 나누어주는 작은 공터가 흩어져있다. 이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뭔가를 꺼내어 쓰려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이 위태롭지만 김씨돌 아저씨에겐 뭇생명이 깃들어 사는 소중한 공간이다. 오랜 장작더미 밑에는 지렁이가 살고, 그 지렁이를 먹으러 두더쥐가 오고, 두더쥐를 따라 뱀들이 오고, 너구리 족제비가 온다는 것이다. 움막의 아궁이도 동물들 차지다. 그래서 김 씨는 두 개의 아궁이 중 하나만 사용하고 있다. 

 

“여기 구렁이, 뱀, 청솔모, 다람쥐가 자고 있어요. 이놈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살더라고. 그래서 편하게 살라고 사람 손이 타지 않도록 일부러 더 지저분하게 둬요.” 

 

김씨돌 아저씨는 동네에서는 ‘토끼 아저씨’라 불린다. 예전에 집토끼를 많이 키워서 붙은 별명이지만, 초식하며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 순한 모양새도 토끼와 닮았다. 본명은 김용현이다. 자기 자신이 붙인 이름은 씨돌이다. 

 

“무, 배추, 상추 씨앗 할 때 그 씨예요. 그게 가장 중심이 되는 거니까. 내가 씨앗이 되어서 돌같이 두드려 맞아도 뼈를 묻고 사라져야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 좀 부끄럽다~” 

 

또 껄껄 웃는다. 김씨돌 아저씨의 말은 이런 식으로 횡설수설이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막 쏟아내는데 정리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듣는 이는 말의 조각을 맞춰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하여간 김씨돌이라는 이름에는 생명을 피워내는 씨앗과 단단한 돌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뜻임에는 틀림없다. 아저씨는 과거에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쫓기고, 두들겨 맞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단다. 그래도 부서지지 않으려고 ‘돌’이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말을 많이 했는데, 내가 하도 짓밟혀서 종종 팔다리에 마비가 와요.”

 

김씨돌회원 인터뷰

산골에 살아선지 늑대같은 소리를 내는 이웃의 개 길순이와 김씨돌 아저씨.인적이 드문 봉화치의 겨울에는 개도 사람을 몹시나 반긴다.

 

민주화 운동이 그에게 남긴 것

 

김씨돌 아저씨의 세례명은 ‘요한’, 1980년대에는 가톨릭을 배경으로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에 참여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평화민주당에서 종교부장으로 일하면서 군 의문사 진상 규명 운동에 관여하기도 했다. 아저씨 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그는 공안기구로부터 주목받게 되었고 극심한 폭행과 위협, 집요한 사찰에 노출되었다. 특히 명동성당 인근에서의 의문사 진상 규명 집회 중 당시 ‘백골단’으로 악명 높던 체포 전담 형사대에게 체포당하고 집단 폭행당하자 ‘여기서 다른 의문사 희생자처럼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에는 함께 활동했던 故 김승훈 신부가 김 씨를 입원해있던 병원으로부터 빼내 정선으로 피신시켰다. 그 후 김 씨는 지금까지 부인과 자녀를 서울에 둔 채 정선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사찰과 고문, 그리고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에 대해 극도의 피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1982년 경에는 제주도에서 ‘사랑과 믿음의 집’을 꾸려 제주 각지의 고아, 부랑아들을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같은 조작된 공안사건, 간첩사건이 비일비재했는데, 김 씨 역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무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사찰은 정선에 와서도 지속되었다고 한다.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 돈이며 문서가 사라졌기 일쑤였다고 한다. 인근 경찰서장이 기무사 등의 요청으로 김씨돌 님을 사찰해왔다고 시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의 일이다. 아저씨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지금도 전화가 도청될 수 있다고 느낀다. 

 

김 씨는 2005년에야 민주화 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김씨돌 님은 군 의문사에 관한 진실, 그리고 자연에서 새 소리와 물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명상한 바를 엮어 『청숫잔 맑은 물에』라는 두꺼운 자료집을 엮었다. 요즘도 이 자료집을 보완하는 집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자료집 타이핑 값만 6백만 원이 들었단다. 컴퓨터로 직접 하시지 그랬냐는 질문에 “어우, 나는 컴퓨터를 만지질 못하겠더라고. 핸드폰만 건드리면 숨이 막 턱턱 하고, 손이 떨리고”라며 정말 숨이 턱, 막히는 말투로 말한다. 6백만 원이라면 적은 돈이 아닌데 어디서 났을까. 

 

“노가다 하고 산불 감시해서 번 돈으로 했지. 산불 감시는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해요. 겨울에는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한 달 반 정도 될 거예요. 지금은 4만2천 원 주는데 전엔 얼마 안 줬거든. 그래도 하나도 안 쓰고 모아놓으니까 6백만 원 되더라고요. 내가 뭐 산꼭대기에 살면서 다방에서 차 한 잔 먹을 일이 있나, 짜장면 한 그릇 시켜 먹을 수가 있나? 그 돈 가지고 시민단체 후원해요. 천주교인권위원회, 환경운동연합, 한살림. 그리고 예전에 방문했던 파라과이나 브라질에도 보내요. 나는 주머니에 만 원만, 배춧잎 하나만 있어도 괜히 불안해지더라고요. 맞아서 그런 것도 있어요. 1982년에 ‘사랑과 믿음의 집’ 활동하면서 땅을 평당 천 원 주고 샀었는데, 그 돈 출처를 의심받아서 기무사에 끌려가서 맞았어요. 근데 그거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이었거든. 출처가 불분명했으면 아마 바로 간첩으로 몰렸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만 원이라도 있으면 ‘내가 남의 돈을 갖고 있는 거 아닌가?’ 해서 있는 대로 퍼줘요.” 

 

돈만 퍼주는 게 아니다. 재난이 있을 때나 인근에 환경파괴가 있을 때면 달려가 힘을 보탠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에는 인명 구조 자원봉사를 도왔다. 90년대 말 영월 동강댐 반대운동, 최근의 삼척 핵발전소 반대운동에도 참여했다. 

 

뭇생명들을 위한 기도

 

우리는 사실 이웃한 반장댁에서 머물렀다. 김 씨 아저씨는 여럿이 둘러앉기에 비좁고 내어줄만한 먹을거리가 마땅찮은 자신의 움막 대신 이웃 반장 댁이 서울에 사는 아들과 지내려고 만들어둔 펜션형 독채로 마치 자기 집처럼 우리를 안내한다. 반장댁 내외도 당신들 손님처럼 우릴 반겨준다. 농번기 밭일같이 서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서로 힘껏 돕고, 아프면 서로 챙기며 이렇게 나누며 산다. 반장님은 오랫동안 직업군인 생활을 했던 골수 박정희, 박근혜 지지자지만 여기선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골수 운동권인 김 씨와 티격태격해도 곧 다른 얘기로 넘어간다. 음식 솜씨만큼이나 마음씨도 좋은 반장 댁 할머니는 살생을 싫어하는 ‘보살님’으로, 김 씨 아저씨를 한 식구처럼 걱정하고 챙겨준다. 그 댁 강아지가 길게 살라는 뜻의 ‘길순이’라는 이름을 얻고 7년간의 복날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할머니 음덕이다. 참여연대 일행을 따뜻한 자리에 앉히고 귀한 잣죽과 동치미를 내어 놓는다. 할머니는 김 씨가 이걸 꼭 대접해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장난스럽게 눈을 흘긴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것이 김 씨와 반장댁네가 사는 방식이다.  

 

정선 인구는 4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석탄 광산이 흥했던 한 때 인구가 13만이 넘기도 했지만, 이제는 많은 집들이 비어 있다. 지금 봉화치에는 예닐곱 가구가 남았다. 아우라지와 구절리를 오가는 철도는 더 이상 주민들과 석탄을 실어 나르지 않는다. 대신 관광객을 위한 레일바이크가 다닌다. 흥성하던 정선 5일장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지붕을 얹은 전통시장이 되었다. 2000년에는 인근 태백에 카지노가 개장했다. 해가 지면 대낮처럼 훤한 카지노의 불빛을 봉화치에서도 볼 수 있다. 김 씨 아저씨 말에 따르면 도박에 중독된 피해자들이 봉화치를 찾아와 스스로 생명을 끊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런 변화의 한가운데서 김씨돌 아저씨는 20여 년간 처음과 꼭 같은 방식으로 사라져가는 마을과 사람들, 훼손되는 자연환경, 쫓겨나는 뭇생명들과 어우러져 거기 살고 있다. 

이런 아저씨가 기인 같아 보였는지 간첩 신고를 두 번이나 당했고, 최근에는 여러 방송국에서 촬영해 갔다. 처음 방영된 SBS <세상에 이런 일이>는 소방관의 제보를 받고 왔단다. “화재 방지 장치를 달러 왔다가 엉망인 방 안에 사람 하나 누워 있고 뱀이 왔다 갔다 하니 이상해서 제보하지 않았겠냐”는 게 김씨 아저씨 추측이다. 하지만 홀아비 냄새로 가득할 것 같은 두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 겸 침실에는 건초에서 나오는 그윽한 향기가 가득하다.

 

김씨돌회원 인터뷰

마을을 둘러 보며 각종 짐승의 서식지와 지형을 알려주는 김씨돌 아저씨와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최근 아저씨는 움막 근처 땅 70여 평의 땅을 샀다. 아저씨가 신념과는 달리 땅을 소유하기로 한 이유는 이 땅을 개발과 투기로부터 온전히 뭇생명들의 터전으로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이 땅을 참여연대에 기증하려 한다. 아저씨는 계속 거기 머물 것이지만 당신이 소유할 수는 없으니 시민단체가 이 터전을 지켜달라는 취지다. 김씨돌 회원은 그 땅에 작은 쉼터를 조성해서 활동가들이 집 앞 연못의 개구리들, 그리고 모든 생명들과 공존하는 법을 조용히 묵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참여연대가 김씨돌 회원의 토지 기부를 받을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봉화치 모든 생명들의 삶이 아저씨와 더불어 오래도록 느릿하게 계속 흘러가기를,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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