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2월 2013-02-14   1179

[살림]미국은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요?

미국은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요?

 

원마루

 

미국을 뒤흔든 사건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곳 <살림> 꼭지에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참여연대 식구들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사는 영국 남동부는 기후가 온화해서 지금은 마치 겨울이 끝난 것 같습니다. 꽃밭 한 모퉁이를 보니까 벌써 새싹이 오르고, 헤더 꽃 더미가 향기로운 꽃 내음을 풍깁니다. 그럴 때면 그곳의 분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지난해 말 미국 코네티컷 주의 뉴타운에 있는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서입니다.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 때문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 사회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뜨린 사건입니다. 심지어 학교에 가기 싫다며 두려움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미국 곳곳에 생겨날 정도였으니까요.
12월 14일 아침 미국의 조용한 도시 뉴타운의 초등학교에 같은 동네에 사는 애덤 랜자라는 스무 살 청년이 들어가 마구 총을 쏴 일고여덟 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 스무 명과 선생님 여섯 명의 목숨을 무참히 앗아가 버렸습니다. 왜 이런 끔직한 일을 저질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범인은 정신병 증세를 보이고 있었고, 친구가 하나도 없었으며, 집에는 총이 잔뜩 있었다”는 언론 보도만 쏟아졌습니다.
곧 미국 사회는 애도의 분위기에 잠기는 듯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눈시울을 적시며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총기 소지 규제를 암시하는 말을 하자 미국 사회는 곧바로 총기 논란에 휩싸여 버렸습니다. 충격에 빠진 부모들을 농락이라도 하듯 갈라져 말싸움을 벌이더니 심지어 총기 로비 단체에서는 “학교를 총으로 무장하자”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 사회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조용한 시간을 두려워하는 미국은,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요?

 

201302_참여사회2월호

 

절망하는 이에게 손을
그래도 온전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폐 아이를 둔 리자 롱이라는 미국의 한 어머니는 <나는 애덤 랜자의 엄마입니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리자는 샌디 훅에서 총을 마구 쏜 애덤의 어머니는 아닙니다. 애덤의 어머니가 된 심정으로 글을 쓴 겁니다. 애덤 랜자도 일종의 자폐 증상 때문에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리자는 세계 최고의 부와 힘을 자랑하는 미국 사회에서 애덤같이 자폐를 앓고 있는 아이를 둔 가족은 고립과 절망 속에 살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아들이 갑자기 폭력을 휘두르고 가족의 생명을 위협할 때 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병원이나 경찰에 신고하는 일입니다. 의료 당국에 좀 더 장기적인 대책을 물으면 “아들을 감옥에 넣는 수밖에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하지만 리자는 아들을 절대 감옥에 보낼 수 없습니다. 아픈 게 죄는 아니니까요. 리자는 미국은 사회 문제를 감옥으로만 해결하려 든다고 꼬집습니다. 부랑인이나 정신병 같은 문제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넣어 두려고만 해서 감옥에는 사람이 넘쳐납니다. 저도 몇 년 전 성탄절 때 미국의 한 구치소 안에 들어간 본적이 있는데, 조그만 도시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감옥 속에서 멀쩡한 사람들이 ‘범죄자’로 만들어진다는 게 리자의 생각입니다.
자폐 증상 때문에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온 애덤의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애덤의 형제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학교 친구의 말마따나 애덤은 “지구상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괴물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세상에 ‘복수’를 해 버렸습니다. 리자는 지금 총기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정신병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아이들과 절망하는 가족에게 손을 내밀자고 합니다. 성찰하자고 합니다. 아마 리자가 한국의 어머니였다면 리자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아이들을 ‘공부하라’며 다그치지 말고 함께 놀아주세요. 성공과 공부라는 괴물에 포로가 된 한국의 가족에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금속탐지기 대신 마음을
총기 소지가 다시 큰 논란거리가 되자 1999년 미국의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딸을 잃은 한 아버지의 외침이 다시 사람들 사이에 울리고 있습니다. 콜롬바인 사건의 첫 번째 희생자인 레이철 스콧의 아버지 데럴 스콧은 1999년 5월 총기 규제 법안을 만들기 위해 열린 미국 의회의 범죄 위원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너무 쉽게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합니다. 하지만 비난을 받을 사람은 사실 이 방(의회 위원회)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증오와 폭력에 문을 열어 줬습니다. 총기 규제법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금속 탐지기로는 그런 학살을 막지 못합니다. 속이 빈 말만 토해내는 그런 종교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가난한 삶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수백만 달러를 들여 교회 건물을 올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 겸손해지고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말에 그 자리에 모인 의원과 언론은 얼굴을 붉혔습니다. 총기 소지를 비난할 줄로 믿었는데, 오히려 문제의 뿌리인 인간의 오만과 위선을 지적했으니까요.
얼마 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어린이들과 함께 모여 샌디 훅 초등학교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 큰아들 또래의 1~2학년 아이들은 촛불을 하나씩 밝히며 소망을 말했습니다. “이 일로 상처받은 가족들이 평화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요.”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이런 말에 저는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저 아이들처럼 단순한 믿음을 갖고,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할 뿐입니다.

 

원마루
영국 다벨 브루더호프에 살며 어린이 장난감을 만듭니다. 교육 책 『아이들의 정원』을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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