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5월 2002-04-28   890

이제훈이만난사람. 100년만의 파업,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이호동 발전노조위원장

이호동 발전노조위원장

이호동 발전산업노조 위원장을 만나러 가는 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4월 10일, 농성 46일째란다. 그런데 나는 그가 4월 3일 노-정간 ‘잠정합의서’ 이후에도 계속 농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다. 한반도 남쪽 산하엔 봄이 이미 많이 내달려왔음을 알리는 꽃들이 만발하지만,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바람은 한 겨울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맵찼다. 태양을 가리는 최악의 황사 뒤끝이어서 그랬을 게다. 세상과 격리된 채 성당 마당 한구석에 ‘불청객’이 되어 외로운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분노와 한이 계절의 흐름을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 점이 인터뷰 내내 나를 괴롭혔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언론은 똥파리 떼처럼 찾아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4월 3일 이후 많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발전노조 파업 소식을 듣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웠다. 노-정간 대립이 격렬할 때는 발전노조원들의 파업으로 ‘전력대란’이 올 것이라고 쉼없이 걱정하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이 있든 없든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고, 노동자들의 싸움 또한 계속되고 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 사퇴

지금 노동계는 들끓고 있다. 발단은 4월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노동부와 민주노총이 ‘합의’한 ‘합의서’였는데, 내용은 이렇다.

“노사는 이번 파업으로 인해 국민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드리며, 앞으로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 발생하기 않도록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발전산업의 미래를 위해 공동으로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노조는 2002.3.8일자 중앙노동위원회 중재재정을 존중하여,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한다.

2. 회사는 조합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가 적정한 수준에서 해결되도록 노력하며 필요한 경우 이를 관계 당국에 건의한다.

3.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즉각 회사에 복귀한다.”

이 합의서의 ‘해석’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를테면 정부는 “민영화는 교섭과 쟁의대상이 아님을 노조 쪽에서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노동계는 “회사는 휴폐업, 분할, 양도 등으로 인하여 조합원의 신분변동이 초래되는 경우에는 60일 이전에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한다. 민영화는 연말까지 몇 차례 토론을 개최한다”는 중노위 권고안을 상기시켰다. 어쨌거나 많은 이들은 발전노조 쪽이 장기 투쟁에도 불구하고 얻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 합의서를 ‘항복문서’라고 힐난했다.

민주노총은 4월 3일 투쟁본부대표자회의를 열어 ‘4월 2일 잠정합의안은 폐기한다’고 결정했고, 8일엔 임시중앙위에서 허영구 위원장 직무대행 등 지도부가 사퇴했다. 발전노조의 상급단체인 공공연맹도 10일 임시중앙위를 열어 양경규 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직무대행체제로 전환했다. 양 위원장은 4월 12일 발표한 ‘조합원들께 드리는 글’에서 “ 노정합의는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을 훼손하고 현장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는 동지들의 가슴에 커다란 잘못이었음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그 틈을 비집고 서울지하철노조 배일도 위원장 같은 이는 ‘과격한 정치투쟁’(?)을 지양하는 ‘제3노총’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인터뷰는 이런 어수선함 속에서 무겁게 시작됐다.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주면?

“우선 상급단체인 공공연맹과 민주노총이 발전노조 관련 총파업 유보를 놓고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어 마음 아프다. 발전노조 내부를 보면, 현장 복귀 이후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서약서 강요, 강박에 의한 의사표현 강요, 침묵할 권리라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쪽에서 38일 만에 업무 복귀한 조합원들의 힘들어하는 심리를 파고들며 서약서를 강요하고 있어 조합원들이 심각한 자기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조합원들이 파업기간에 했던 주장을 뒤집도록 하는 내용이 서약서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파업기간에 조합원 343명이 해고됐는데, 심지어는 동지적 애정을 악용해 동료를 살리려면 서약서에 서명하라는 압박도 있다. 우리는 복귀확인서 이외의 어떤 문서에도 서명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서약서 강요는 비밀리에 개별적으로 회유와 협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현장이 아주 혼란스럽다. 가압류와 손해배상 소송, 앞으로 이뤄질 대규모 징계 등등이 ‘현장복귀’ 뒤 투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앞으로 현장 복귀한 조합원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고, 정부가 발전회사 매각방침을 강행하면 노동자들의 마지막 무기인 2차 총파업을 조직해 응징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태도와 의지를 보며 2차 총파업의 시기와 방법을 면밀하게 고민하고 있다.”(농성장에서 만난 한 발전노조 간부는 ‘극소수이긴 하지만 일부 지부장이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조합원들의 서약서 서명을 강요하고 있다’며 착잡해 했다.)

4월 2일 민주노총과 정부가 마련한 잠정합의안에 논란이 많다. 그 합의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명동성당에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고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공연맹에 교섭권을 위임했다.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분명하게 밝힌 원칙은 직권조인은 없다는 것이다. (협상)결과가 나오면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가결되는 부분만 체결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어쨌거나 4월 2일 노-정간 최종 조율안의 내용은 언뜻 전화로 듣기에도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안이었다. 물론 협상이 어려웠겠지만, 조합원 찬반 투표에 부치기에는 미흡한 안이었다. 그래서 거부했다. 다시 전화가 와서 그러면 적어나 보겠다고 답하고 받아 적고 있는데 방송에서 ‘협상타결’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왔다. 총연맹과 공공연맹, 발전노조 모두 정부의 언론플레이에 당한 측면이 강하다. 당사자인 발전노조에서 아무런 공식 언급이 없었는데 언론에 띄워버리고…. 대대적인 보도가 시작되자 많은 조합원들이 내려가는 등 대오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잠정합의안을 발전노조가 가져와 찬반투표에 부치겠다고 하고 조합원들을 명동성당으로 불렀다. 그런데 명동성당을 열어주지 않아 총회를 열지 못했다. 총회를 열었다면 부결됐을 것이다.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고, 불만이 상당히 있었다. 어쨌거나 총연맹이 최종 조율안을 폐기한 상태고, 그러니까 찬반투표의 필요성이 자동 소멸된 것이다.”

애초 잠정합의안을 거부한 핵심 이유는?

“전문의 내용이 상당히 적절치 않았다. 3개항 가운데 첫 번째 ‘민영화 부분의 노코멘트를 코멘트 한다’라는 부분, 노코멘트면 노코멘트지 그걸 뭘 코멘트하나?,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가 적당한 수준에서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부분도 그렇다. ‘적당한 수준’의 기준을 누가 결정하나. 그건 사쪽에서 하는 것이다. 만약 500명을 해고한다면 그게 ‘적당히’인가.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차라리 빈 손으로 돌아가더라도 그걸 받아갈 수는 없었다.”

공공연맹이나 총연맹이 잠정합의안을 받은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왜 받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발전노조 내부 문제와 총연맹, 공공연맹의 총파업에 대한 입장을 다 봐야 할 것이다. 내부는 혼란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일선 소대장인 지부장들한테선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얘기가 많았다. 더군다나 4월3일은 대규모 징계가 예정돼 있었다. 대규모 징계를 앞두고 무작정 돌파하자고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부를 추슬러 다시 돌파를 시도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총파업이 96∼97년 노개투(노동법개정투쟁)처럼 폭발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는데, 완성차 3개 노조가 시한부로 돌아섰고, 3일 파업에 나서는 곳이 별로 없다는 얘기도 들리고, 좀 실망했다. 그런 게 정확한 실상이라면 교섭력이 약해지는 게 사실이다. 이런 두 가지 요인이 협상을 취약한 수준으로 하게 했던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한다. 외부상황을 잘 몰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는 지도부를 비판하는 격한 글들이 마구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는 어용노조라는 비난도 적지 않고,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부분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사안의 중대성은 인정하지만, 그게 극단적 인신공격으로 비화하고, 일정 부분은 조직적 저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총파업을 정말 위력적으로 조직했던 부분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면 그건 자기 권리일 수도 있지만, 이미 결의해놓고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고서 그런 비판을 가하는 것은 좀 그렇다. 공공연맹의 경우 10만 조합원 가운데 2만도 조직이 되지 않았다. 20%의 파업조직률을 보이며 나머지 80%가 비판을 가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노조운동을 위해서도 문제다. 총연맹과 공공연맹, 조합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도와줬다. 민주노총이 살아 숨쉬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냉정한 비판이지 인신공격이 아니다.”

‘조직적 저격’의 공간이란? 정파적 논란?

“해석을 해보라. 그런 경향도 보인다. 그런 게 총사퇴로 이어지고 선거국면의 도래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그러나 그는 이 부분에서 말을 무척 아꼈다)

발전노조 파업은 아직도 진행형인가.

“그렇다. 4월 3일 참담한 심정으로 복귀명령을 내리며 ‘파업중단’이라고 했다. 파업 종료나 철회가 아닌 중단이기 때문에 다시 파업에 들어가는데 파업찬반투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파업을 끝낸 것이 아니라, 현장투쟁 상태라고 말하는 게 정확하다.”

이 위원장은 언제나 ‘발전소 매각 반대’라고 한다. 발전산업 민영화나 사기업화/사유화가 아니라 ‘발전소 매각’이라고 말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민영화 개념은 아이엠에프를 거치며 국민 뇌리 속에 긍정적인 의미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사유화라는 용어는 일반 국민들에게 좀 생소하고…. 투쟁의 목표를 명확하게 발전소 매각이라고 구체적으로 설정하자고 생각했다. 2000년 12월 23일 통과된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이 발전소 매각 방침의 근거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구조개편과 발전소 매각은 동의어가 아니다.”

발전소 매각에 대해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런데도 정부가 발전소 매각, 즉 사유화를 강행하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공기업 매각 논의가 급진전된 것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해외 초국적 자본이 통상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산업자원부만 해도 줄곧 가스와 전력부문의 개방을 반대해오다 미국의 압력 때문에 1999년 2월 태도를 완전히 바꿨다. 우리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고물 비행기는 사고, 황금알을 낳는 발전소를 파는, 이런 매국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에만 1조7000억 원이나 순익을 낸 초우량 기업이다. 국민적 저항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저항이 노동자들의 위력적 투쟁과 결합했으면 한다. 올해엔 지자체 선거,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국민의 저항이 심판으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정권에 대한 심판 기능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하고 싶다.”

발전노조 파업은 일반적인 파업과 달리 발전소 매각 반대라는 정책적인 것을 문제삼았다. 때문에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투쟁이라며, 이 싸움이 어떻게 되느냐가 한국노동운동, 크게는 한국사회의 미래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가 있었다.

한편에서는 4월 2일 이후의 상황을 두고, 80년대 초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의 항공사 노조 대대적 해고 이후 미국 노동운동의 장기 침체를 떠올리며 한국 노동운동이 장기침체에 빠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막무가내식 민영화 방침 강행엔 이번 기회에 노동운동의 기를 꺾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강경일변도, 탄압일변도 대응을 보며 발전노조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레이건 시기와 현재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우선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상황이고 발전산업은 아직도 상당기간 성장산업이다. 2015년까지 발전설비를 두 배로 늘려야 한다. 한국의 관료들이 레이건의 항공노조 탄압이나 대처의 영국 탄광노조 탄압 사례를 모델로 삼고자 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식자우환이다. 그때와 현재의 한국은 상황과 조건이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도 그걸 한국에 이식하려는 것은 식민지적 유습이고, 그것이야말로 한국의 관료가 빨리 버려야 할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발전산업 민영화 사례를 한국만 쫓아 가려한 게 아니라 미국의 다른 주도 그렇게 하려 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전력대란을 보고 미국의 75%가 철회 또는 장기유보 조처를 취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관료들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다. 엉뚱한 것을 잘못 배우고 사용하고 있다. 그런 것이 심각한 정책 실패로 나타나고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드러날 때, 그런 관료들은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계량적인 지표만으론 이번 파업은 우리가 진 것 같아 보인다. 공공부문으로선 유례없이 38일간 장기파업을 벌이며 진이 빠지도록 싸웠으나 발전소 매각 방침 철회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성과도 있을 것이다. 발전소 매각 방침 철회와 관련한 문제를 2002년 상반기의 사회적 의제로 분명하게 부각시켰고,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이 우리 투쟁을 지지해줬다. 우리도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우리 발전 노동자들에게 이번 투쟁이 전설처럼 역사로 남을 것이다. 이번 싸움의 역사적 평가는 우리가 하기는 그렇고 나중에 많은 분들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전노조는 이 땅에 전기가 들어온 지 100년 만에 파업을 했다. 38일이라는 긴 기간동안 흔들림 없이 투쟁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발전소 매각 반대를 중심으로 한 전력산업 구조개악 저지 투쟁을 4년 동안 벌였다.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발전소 매각의 문제점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을 신념화한 것 같다. 자기 투쟁에 대한 정당성, 목표의식이 분명했다고 할 수 있다. 하여간 공공부문 노동자로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봉사를 한 것이다. 팀별 근무형태를 거론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건 전혀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에 살고싶다

그는 단구(키가 165cm)에 얼굴이 동글동글하다.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 이미지다. 농성 중에 삭발을 했는데도 대한민국을 뒤흔든 발전노조 파업의 사령탑다운 비장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노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노래방엔 거의 가지 않고 자주 부르는 노래가 ‘파업가’란다. 그렇다고 성격이 썰렁할 것이라고 예단할 일은 아니다. 두주불사형이고 성격이 좋기로 정평이 났단다. 특별히 어느 정파에 속해 있거나 정치성향이 강한 것 같지 않다는 게 오래도록 함께 해온 조합원들의 평이다. 신념이 강한 ‘선진대중’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는 “한국적 노동현실, 어용노조 아래 공공부문 노동자로서 당연히 느껴야만 하는 현실 때문에 노동운동을 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발전노조는 대한민국 노조 설립 필증 1호를 갖고 있지만, 94년엔 전국의 노조 가운데 정부의 임금 가이드 라인 3%를 가장 먼저 받은 노조였다. 위원장 직선제도 2000년에야 쟁취했다. “그동안 노동귀족 양성소였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94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에서 살고 싶단다.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 누군가 권리를 주장하면 탄압으로 대응하지 않고 당연한 권리행사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그런 세상, 노동자의 파업이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세상…”, 말이다.

그런 그가 명동성당을 나서면 가게 될 곳은 자신의 삶의 터전이자 그의 부인의 일터인 울산화력발전소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러대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한 3년 구형 받을 거라고요. 전기사업법 위반 혐의가 추가될 지는 잘 모르겠구요. 감옥에 가면 담배 참기가 가장 어렵다는데 전 담배를 피울 줄 몰라서 상관없을 거 같아요.” 감옥에 가게 될 자신의 처지를 웃으며 얘기하는 그를, 명동성당 마당에 고요히 서 있던 성모 마리아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제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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