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5월 2002-04-28   1004

나라 빚, 흥분할 필요 없다

살다 보면 빚을 질 수 있다. 개인과 기업만이 아니라 국가도 그렇다. 여기서 국가란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특별시, 광역시, 도, 시, 군 구를 모두 포함한다. 국가도 개인이나 기업처럼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채권자가 외국기업이나 외국정부라면 국가부도가 날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파산 위험은 전혀 없다.

우선 대한민국의 나라 빚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자. 아래 재정경제부가 밝힌 2001년 말 현재 국가채무 현황은 이렇다.

2001년도 말 현재 국가채무 122조 원은 같은 해 국내총생산의 22.4%로 최근 3년간 해마다 1%씩 높아져 왔다. 그런데 이것이 다는 아니다. 국가가 직접 차입하거나 채권을 발행해서 진 부채말고도 보증채무가 또 있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등이 기업 및 금융부문 구조조정을 하느라 발행한 채권에 대해 정부가 지불보증을 해준 것이다. 2001년 말 현재 국가의 보증채무 총액은 107조 원으로 국내총생산의 20%에 가깝다. 만약 두 공사가 빚을 갚지 못한다면 국가가 대신 짊어져야 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 무거운 짐인지는 개인에 비유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예컨대 연봉 1억 원을 버는 월급쟁이가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연봉의 22.4%에 해당하는 2240만 원을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 동생이 신용대출을 받는 데 연대보증을 서 주었고 그 액수가 연봉의 20%인 2000만 원이다. 동생이 빚을 갚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대신 물어내야 한다. 이 사람이 과도한 빚 때문에 파산위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은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겠지만,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 볼 때 연봉 1억 원을 버는 사람에게 이런 정도의 빚은 사실 크게 무거운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4240만원 모두를 빚으로 인정하더라도 최근 통용되는 가계대출 이자율 6.2%를 적용하면 이 사람이 물어야 할 이자는 연간 250만 원, 매달 20만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누군가에게 비슷한 액수의 돈을 빌려주었거나 은행예금을 가지고 있다면 파산의 위험은 더 줄어든다.

국가채무위험 과장보도 곤란하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는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재정투융자 특별회계 융자와 국민주택기금 융자 등 빌려준 돈과 은행 예치금 등 2001년 말 현재 국가의 채권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장부상으로는 국가채무보다 많은 155조 원 정도 된다. 채권을 일부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은 물론 있다. 하지만 보증채무 채무자인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일부라도 갚을 수는 있기 때문에 큰 걱정거리는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국가채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1년 11월 23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국가채무 현황이다. 『중앙일보』는 공적자금 회수율을 10%로 보고 142조 원을 국가채무에 추가했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국민연금, 건강보험의 향후 예상적자를 현재가치로 환산해서 212조 원을 덧붙였다. 여기에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추가 재정소요액과 남북경협 비용, 그리고 101조 원의 공기업 채무까지 보탰다. 이렇게 해서 2002년 말 현재 국가채무를 예측하면 무려 400조 원이 넘는다. 국내총생산의 80%나 되는 무시무시한 액수다.

국가채무의 위험을 경고하는 건 좋다. 국가채무가 좋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그 위험을 과장해서 덕볼 일 역시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가는 직접채무에 상응하는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공기업 역시 채무에 상응하는 자산과 채권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재정적자는 경제성장률과 경제활동 참가인구의 변화에 따라 그 폭이 달라질 수 있고,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도 항구적인 적자를 막기 위한 제도개혁을 할 수 있다. 경고는 좋지만 마치 최악의 상황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판단할 근거는 없다는 이야기다.

빚은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하지만 빚지는 게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니다.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는 때로 세금보다는 빚을 내서 일해야 하며, 일부러 그렇게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첫째, 수익이 생기는 투자가 그렇다. 둘째, 미래 세대가 혜택을 보는 대학, 교통망 등 인프라 건설 사업은 빚으로 해도 된다. 셋째,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빚을 얻어도 된다. 이 세 번째 문제는 특히 중요하다.

어느 시점에서 총수요가 부족한 탓으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졌다고 하자. 정부는 민간가계의 소비수요와 기업의 투자수요를 확대하기 위해 감세를 할 수 있고, 직접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할 경우 재정적자가 난다는 것이다. 불경기에는 기업의 당기순이익이 줄어들고 실업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조세수입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런 판국에 또 감세를 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한다면 큰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적자를 메우려면 정부는 국공채를 발행해서 차입을 해야 한다. 차입 그 자체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경우 국가부채가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또 정당한 일이기도 하다. 국가채무 증가가 무섭다고 불경기를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국가채무는 그 자체로 비난해야 할 사회악은 아니다. 게다가 외국에 진 빚이 아니라면 국가채무 때문에 국가가 파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국가는 조세징수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채무의 원리금 상환에 쓸 돈이 부족하면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국가채무를 갚는 것은 종국적으로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다. 국가가 발행한 국공채를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한, 국가채무는 곧 우리 국민이 자기 자신에게 진 빚인 셈이다. 자기 자신에게 빌려 준 돈 때문에 자기가 파산할 리는 만무하다.

민간기업의 대외채무가 더 위험하다

정말 위험한 것은 국가채무가 아니라 민간기업의 대외채무다. IMF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 온 원인도 국가채무가 아니라 재벌과 금융기관 등 민간기업이 외국 금융기관에서 얻어 쓴 빚이었다. 기업들이 대외채무를 갚지 못하게 되자 한국경제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무너졌고, 그래서 한국 돈의 가치가 반 토막이 나는 외환위기가 닥친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IMF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이런 사태를 민간기업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그대로 방치하면 국민경제 전체가 주저앉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업인단체나 재벌그룹의 경제연구소들은 국가채무의 위험성을 경고하기에 앞서 제 앞가림부터 잘 해야 할 것이다.

유시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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