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9월 2005-09-01   874

빵 대신 선택한 고상한(?) 즐거움

1년 전만 해도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정책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막연한 꿈이 있었기에 선택한 길이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과정에 대한 논문을 읽던 중 참여연대를 알게 되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생각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한동안 신입회원 한마당에 참석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정중하게, 조금은 귀찮아하면서 거절했다. 『참여사회』는 정독이 아니라 속독했다. 부서 별 간사 명단을 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고작 반 년 뒤 내 이름이 그곳에 적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공부밖에 모르는 참여연대의 ‘유령회원’이었다. 참여연대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일 뿐이었다.

올해 초, 나는 논문을 마무리하고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전자우편을 확인하다가 참여연대 뉴스레터에서 ‘신입간사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서류 마감은 그 날 오후 5시였고, 시계는 이미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순간 온갖 생각들이 교차했다.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 유학에 대한 미련, 학교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참여연대에서 하는 일에 대한 동경…….

10분 뒤 나는 지원서를 쓰고 있었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경력란에 쓸 것이라곤 6년 동안 공부한 것이 다였다. 사회운동 경력은 물론 관련 단체에서 일한 경험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참여연대를 선택한 순간, 경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 참여연대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었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을 준비하면서 그 확신은 커져만 갔다. 면접 날, 어떤 질문에도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뒤 6개월이 지났다. 단 10분의 고민이 나를 이 자리에 오게 만들었고, 우연은 필연이 되었다. 내 선택에 대해 사람들은 ‘대단하다’는 말로 일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은 돈을 받으며 고생한다는 것. 그러나 나는 대단할 것도, 희생한 것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회사에 들어가고, 유학을 가는 것처럼 나도 참여연대에 온 것이다. 참여연대에서 하는 일은 대단하다. 참여연대가 대단해서, 거기서 일하는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참여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시민의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의 활동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러시아의 혁명가 크로포트킨은 “주위의 모든 사람이 진흙 같은 빵 한 조각을 위해 투쟁할 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하고 물었다. 오늘날 시민운동가들은 눈앞의 이익이나 돈과 같은 빵이 아니라 공익과 신념이라는 즐거움을 택한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진흙 같은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지만 이젠 고상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 되었다.

참여연대 회원이 되었을 때부터 나는 진흙 같은 빵 대신 고상한 즐거움을 택했다. 자신의 선택을 믿고 참여연대와 함께 하는 것, 책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하고,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는 지금, 나는 고상하게 즐겁다.

변금선 참여연대 투명사회국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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