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1월 2013-01-12   1842

[만남] 세상을 구하는 법-김희경 회원

세상을 구하는 법

김희경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애 엄마
사진 박영록 사진가

 

“세상은 비정하지 않다.
다만 상상력이 모자라고 바쁠 뿐이다.”
– ‘세이브 더 칠드런’ 창립자 에글렌타인 젭

 

‘쩍’하고 홍해가 갈라지듯, 대통령 선거는 나라를 두 쪽으로 쪼개며 끝이 났다. 혹자는 선거는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고 점잖게 타이르지만, 점잖음과는 거리가 먼 나는 내내 열패감에 시달려야했다. 하필이면 이런 때 인터뷰 일정이 잡히고, 인터뷰 주인공인 김희경 회원을 만나는 날은 한술 더 떠 오천 년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지구 멸망의 날. 대한민국의 양분과 지구 종말을 축하라도 하듯 눈까지 퍼붓는다. 이것이야말로 삼재三災로구나. 문득 마야인들의 달력 제작과 유통 과정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연말이니 원고를 빨리 넘겨달라는 담당 간사의 채근에 오천 년을 거슬러 온 마야인들의 친절한 예고 따윈 간단히 무시된다. 이런 파국의 시대에도 집필 노동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남아, 곧 있을지도 모를 대량의 임종에 대한 준비도 없이 인터뷰이가 있다는 마포로 갔다.

 

201301_참여사회

김희경 회원은 국제 아동 구호 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을 위한 정책 개선, 옹호 활동을 한다. 그녀는 스스로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기자의 길을 거두다
이번 인터뷰는 아예 시작이 어렵다. 온통 대선 결과에 대한 분석과 감상, 주변 소식들을 말하느라 시끌벅적. 그러니까 날짜가 이상하대두……. 하지만 참여연대 시민 기자는 오가는 대화의 맥을 툭 자르고는 용감무쌍하게 첫 질문을 던진다. 기자셨다구요?
“동아일보에서 2009년까지 18년 동안 일했어요. 김대중 정부 시절 세무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동아일보도 정론지였어요. 입사할 때만 해도 공정 보도의 기준이 분명했기 때문에 기사가 우리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해도 노력하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들이 있었죠. 공정한 언론을 위한 기자들의 모임에도 참여해 함께 활동도 했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용산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그것의 역사적 명칭은 ‘용산 참사.’ 2009년 1월 19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 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포털 사이트는 건조하게 요약해 놓고 있다.
“우리의 기대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죠. 용산 참사를 대하는 동아일보의 보도 태도는 더 이상 제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어떤 기사는 ‘검찰에 의하면’으로 온통 도배되어 있었어요. 전 사회부 기자 시절에 그렇게 배우지 않았어요. 누구의 말도 믿지 말고 자신이 직접 확인하고 검증할 것, 이게 제가 아는 기자였지요.”
생각과 생활이 일치하는 삶이 절실해지는 순간, 그녀는 오래 머물러 익숙했던 삶터를 떠났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마련해 놓지 못한 채, 기자로서 걸었던 18년의 길을 황망히 거두었다. 그 이후 1년 동안, 그녀는 한 권의 저서와 두 권의 번역서를 냈다.
“『내 인생이다』라는 책을 썼어요. 인생의 중년기에 과감히 삶의 방향을 전환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에요. 인터뷰이 중에 광고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NGO 활동가로 변모한 분이 있어요. 그 분이 일에서 느끼는 보람을 행복하게 말씀해 주시는데, 자신의 노동이 가치를 만들어내고 아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구체적인 흐름을 눈으로 확인하며 일하는 너무 매력적인 삶이었죠. 그래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저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내가 하는 일이 만들어내는 가치의 연결선과 구체적 결과를 보며 행하는 즐거운 노동이 가능한 곳, 지금 그녀가 몸담고 있는 ‘세이브더칠드런’이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나보다 하고 예단하려는 순간 너무도 솔직한 그녀의 고백이 이어진다.
“아니에요, 전 아이도 없고 또 아이들에게 관심도 많지 않았어요. 꼭 그런 사람만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러니 더 궁금해지네요. 어떤 곳인가요, 세이브더칠드런은?

 

 

201301_참여사회

 

세이브더칠드런
“저희 단체는 정체가 좀 복잡해요. 국제개발 사업을 위해 모금도 하고 정부에서 위탁받아서 아동보호 전문 기관을 운영하기도 하고, 또…….”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 다시 포털 백과사전 호출. “1919년 영국에서 창립한 세이브더칠드런은 전 세계의 빈곤 아동을 돕는 국제적 비정부기구(NGO)로서 29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구호 기구이다. 주력 사업은 정기후원, 결연후원 등을 통해 후원자를 모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어린이 구호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보건의료, 빈곤 아동 지원, 아동보호, 교육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한다.”
“저는 우리 부서원들한테 우리는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해 일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없는, 언제 어디서나 가장 취약한 계층인 아동의 인권 보호를 위해 일하는 것이지 그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라구요.”
아동 학대가 의심스러운 상황, 그런 상황에서 신고 의무가 있음에도 알리지 않는 어른들, 그리고 그런 못난 어른들을 처벌하지 못하는 세상의 법, 그런 것들을 바꾸는 일이 바로 권리옹호부 부장으로 있는 그녀가 하는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난민신청자의 자녀가 한국에서 출생과 동시에 무국적자로 처리되는 상황의 개선과 올바른 정책 수립을 위해서도 싸운다.
“정책 개선·옹호advocacy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끔 이주 아동 인권과 관련한 연대 모임에 나가면 ‘세이브더칠드런이 이런 일도 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앞으로도 이런 놀라움 섞인 질문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소수자 인권 이슈에 연대하고 함께 하고 싶어요.”
세이브더칠드런에는 많은 캠페인이 있던데 혹 그중에서 꼭 알리고 싶은 것이 있나요?
“긴급구호 아동기금 캠페인이요. 대부분의 긴급구호는 문제가 터지고 언론에 의해 이슈화가 되고 나서야 이루어져요. 그런데 그러면 이미 늦어요. 긴급구호는 말 그대로 사태가 불거졌을 때, 초기에 개입해야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거든요. 그렇게 하기 위해 미리 기금을 만들어놓자는 취지의 캠페인이죠.”
최근에도 긴급구호 문제 때문에 레바논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지금 시리아 내전 때문에 주변국들로 난민이 많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들을 위한 긴급구호 문제로 출장을 다녀왔어요. 레바논에서 만난 난민들은 여름에 자국을 탈출한 사람들이어서 전부 여름옷을 입고 있더라구요. 워낙 따뜻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라 약간의 추위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데, 아이들이 전부 맨발이었어요.”
사람들이 모두 추위에 몸을 오그리고 있었다. 빗물이 고여 있는 방 두 칸에 23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물었다. 지금 무엇이 가장 절실하냐고.
“뜻밖의 대답이었어요. 당연히 담요나 식량, 의복 이런 것일 줄 알았죠. 그런데 한 아이의 엄마가 말하더라고요.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인간적인 대접이라고…….”
그 아이 엄마의 시린 가슴을 덮어줄 수 있는 건 담요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벗겨진 발을 어루만져주기에 한 켤레의 신발은 어쩌면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으로서 또 다른 사람에게 갖추어야 하는 예의는 과연 언제쯤 구호품 목록에 들어갈 것인가.
한국에도 난민들이 있다. 난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한동안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 위로 내 학생들의 얼굴이 자꾸 오버랩된다. 그들의 얼굴과 인간의 존엄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은 늘 힘겹다. 이래서는 기자의 냉철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

 

참여연대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다
그녀는 스스로 참여연대와 인연이 깊다 말했다. 글자 그대로 그녀는 ‘창립’ 회원이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다 지금 국회의원으로 있는 김기식 씨와 대학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어요. 당시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참사연(참여민주사회를 위한 사회인 연합)’이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새로운 형식의 시민운동을 고민하는 자리였죠. 그 흐름이 다른 흐름과 엮이며 결국 ‘참여연대’가 되었어요.”
참여연대 창립을 위한 준비들을 옆에서 도왔던 그녀는 당시 동아일보 재직 중이었다.
“제가 그때 참여연대의 창립 이야기를 기사로 썼어요. 일간지에서 가장 중요한 기사는 1면 톱이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기사가 사회면 톱인데, 이 기사는 그 날 사회면 톱으로 나갔죠.”
그녀가 흐뭇해하며 오래된 신문의 복사본 한 장을 내민다. 그 흑백의 이미지 안에는 빛바랜 활자들이 새로운 시민운동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한때 그런 기사를 실었던 신문이 오로지 가진 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 언론으로 거듭나는 동안에도 그녀는 여전히, 처음부터 그러했듯, 참여연대의 회원이다.
“참여연대 회원으로서 자랑스러울 때가 많아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도 참여연대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사법부에 대한 개혁 논의도 참여연대가 가장 먼저 했고 부정부패 감시 활동, 낙천낙선운동도 감동이었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란 국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가구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모든 가구에 대하여 정부가 최저생계비와 가구 소득의 차액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이런 걸 한다, 내가 시민기자로 있는 참여연대는.
NGO 활동가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들었습니다. 언제 가장 힘드세요?
“이런 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마무리를 위해 정리된 인터뷰 원고를 읽는다. 그녀의 이야기, 그 서사의 긴 줄기를 관통하고 있는 건 ‘아픔’의 정서다. 삶터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모순의 생과 그 가난한 죽음마저도 끝내 정의롭게 다루지 못했던 세상과 차가운 땅 위에 맨발로 서야하는 아이들과 그 앞에서 자신의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봐야만 했던 먼 이국 땅에서의 하루. 서럽게 아프고 또 아픈 세상이 보인다.
쉽지 않은 정리 작업을 미루고 거실에 나와 보니 둘째 놈이 소파에 인형을 눕혀놓고 옷을 벗기느라 용을 쓰고 있다. 진찰 중이란다.
“엄마도 아파, 치료해줘.” 눈을 뚱그렇게 뜨며 아이가 묻는다. “어디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아, 어디가 아픈 걸까? 나는, 우리는, 이 세상은. 상상력도 모자란 데에다가 바쁘기까지 한, 못난 어른은 그렇게 아이에게 되묻고야 만다. 그렇게 되물으며 오래 오래 ‘세이브더칠드런’이란 글씨를 바라본다. 우리가 정말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이 병든 세상을, 그 안에서 신음하는 아이들을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구하고 싶다, 그녀처럼.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