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1월 2013-01-12   1707

[경제] 세대 간 착취

세대 간 착취

Intergenerational Exploitation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88만원 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에 졌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 어느 정도 살만해지자 사람들은 너도 나도 아이를 낳았다. 하여 1955년생부터 1963년생까지 한국의 50대는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 이들이 박근혜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1960년생인 나도 포함된 이 세대는 앞으로 점점 더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201301_참여사회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
이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 배고픔을 경험했지만 그들의 부모 세대처럼 죽음을 넘나들지는 않았다. 10대와 20대 청년기 때는 고도성장의 과실을 맛보았다. 이들 중 일부는 목숨을 건 학생운동을 했고, 당시로선 특권이었던 대학생 신분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들의 이타적 행동은 같은 세대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독재 속에서 경제성장은 30대까지 지속됐고(학자들은 ‘발전국가’라고 부른다), 웬만해선 취직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독재 속에서도 희망이 활활 타오르던 시대를 살았다. 농지개혁과 전쟁으로 지주계급이 소멸됐고 보편 교육으로 인해 사회적 이동이 가장 활발했다. 누구나 노력하면 신분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고 통계상으로 그러했다.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그랬지만 일찍이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에 뛰어든 친구들도 꽤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세대는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자기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부동산과 교육 투기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높아진 자산 가격은 패배자의 아이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불행하게도 이 ‘상대적 지위 경쟁’은 끝이 있을 리 없고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을 패배자로 만든다. 자산 가격이 소득보다 더 빨리 오른다면 그건 곧 절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은 40대가 되면서 과거의 이타성을 청춘기의 어리석음으로 치부하면서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물론 자산 가격이 한 없이 오를 수는 없다. 머지않아 닥쳐올 가격 파괴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떤 정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서서히 가격이 떨어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생각이 있을 리 없는(놀랍게도 경제학자 대부분은 아직도 ‘거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박 당선인의 정책가들이 이명박 정부처럼 가격을 끌어올릴 궁리만 한다면, 어느 순간 가격은 폭락하고 말 것이다.

 

50대가 정치를 시작했다
문제는 인구 집단이 가장 큰 50대가 본격적으로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리 되면 그 사회는 곧 정체할 수밖에 없다. 자산의 불균등 소유가 가장 큰 문제지만 세대 간 정의를 해칠 정책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증액 경쟁에 나선 노인연금도 그런 종류에 속한다. 연금과 연령별 수당은 한 해에 생산된 부를 세대 간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노인연금의 증가는 기존 자산Stock의 소유에 더해서 소득Flow마저 노령 세대에 유리하게 분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인들이 대부분의 자산을 틀어쥔 채 근검절약까지 한다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세대 간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다. 지난 20년간 일본이 제로성장을 하면서도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는 데는 이러한 세대 간 착취, 세대 간 부정의가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어떤 세대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집단 간 경쟁은 집단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고 다수결로 대결하는 선거에서 세대 간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이 70년대부터 성장률이 떨어졌고 일본이 80년대 후반부터 장기 침체에 빠진 것이 이런 세대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대 간 착취를 택할 것인가, 연대를 택할 것인가
이미 오래 전에 고령화를 겪고 있는 서구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UN은 2002년에 ‘세대간 연대Intergenerational Solidarity’ 개념을 만들었고 EU에서는 여러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노인 복지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라는 기치를 내걸고 더 많은 일자리를 통해 노인들이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개인주의적 접근은 동시에 세대 간 갈등을 함의하고 있다.
한국만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이제 초로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내 자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자손을 위해서, 나아가서 아이들이 살아갈 생태를 위해서 ‘혁명적인 정치’를 할 때 비로소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생활에 필요한 자원이나 돈은 줄어든다. 자산과 소득을 아낌없이 후 세대로 분배하고 아직 남아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역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그리하여 아무런 재산도 능력도 남기지 않고 무소유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생의 혁명일 것이다. 개인의 각성이 어렵다면 제도적으로 그렇게 만들면 된다. 북유럽의 소득재분배를 넘어서 자산재분배까지 나아가는 정치, 나아가서 생태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정책을 베이비붐 세대가 지지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런 세대 정치는 한국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세대 간 착취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세대 간 연대를 택할 것인가가 50대의 손에 달려 있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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