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10월 2021-10-01   448

[보자] A-장녀, 루비의 노래

A-장녀, 루비의 노래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일과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두 남자와 함께 배에 올라 생선을 잡아 올리며 노래하는 루비. 잡은 생선을 유통업자와 흥정한 뒤, 노동의 체취를 빨아들인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학교에 간다.

 

“어디서 생선비린내 나지 않아?” 학교에는 그를 깔보며 웃음거리 삼는 아이들이 있다. 루비가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음성언어가 서툴렀던 탓에, 아이들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그에게 ‘절친’도 있고, (겉으로나마) 태도는 당당해졌으며, 자꾸 눈길이 가는 남자애도 생겼다. 남자애 이름은 마일스(퍼디아 월시-필로). 루비는 그가 합창반에 가입하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간다.

 

월간 참여사회 2021년 10월호 (통권 289호)

코다 CODA

2021 | 프랑스 | 드라마 | 111분

감독 션 헤이더 

출연 에밀리아 존스, 퍼디아 월시-필로, 트로이 코처

 

가족들은 루비의 합창반 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루비가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우리말로 풀어 말하면 ‘귀가 들리지 않는 양육자에게서 자란 아이’기 때문이다. 그의 양친, 그리고 남자 형제인 ‘레오’(다니엘 듀런트) 모두 농인이다. 모친인 ‘재키’(말리 매틀린)는 루비가 가족과 공유할 수 없는 세계로 나갈까 걱정하고, 루비는 가족들 사이에서 겉돌고 있다고 느낀다.

 

루비가 가족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발생시키는 소음에 괴로워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어느날 저녁. 재키는 밥상머리에서 예의 없다며 이어폰을 빼라고 한다. 식사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반면 같은 밥상머리에서, 레오가 ‘틴더’를 하는 것은 용인된다. 가족 구성원 ‘모두’ 동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루비는 불공평하다고 느낀다.

 

동시에 가족들은 루비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소규모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가족을 돕기 위해, 돌발 상황을 대비해 ‘반드시’ 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며 매일 새벽 배에 오르는 루비. 가족들은 유통조직의 횡포에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하는데, 이 역시 루비가 빠지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는 구조다. 루비네 협동조합을 취재하러 온 방송국 인터뷰에서 통역도 ‘당연히’ 그의 몫이다. 인터뷰 일정이 사전에 협의되지 않았기에, 루비는 미리 조치하지 못한 채 중요한 약속에 불참하게 된다.

 

어느샌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루비의 희생. ‘K-장녀’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K-장녀(Korean-장녀)’는 최근 몇 년 한국에서 부쩍 가시화된 정체성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감정적으로 억압받으며 살아온 딸들이 문제 제기하며 쓰이는 말이다. 루비의 경우는 ‘A-장녀(American-장녀)’이지만, ‘K-장녀’와 공유할 수 있는 설움을 겪고 있었다.

 

해방의 음악

 

다른 사람이 가족으로 인해 느끼는 서러움이나 울분에 나는 쉽게 감정이입한다. ‘문제 있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하지만 ‘화목하게’ 자랐더라도, 코다 혹은 장녀가 아니여도 영화 속에서 루비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 울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창반 교사인 ‘베르나르도 빌라로보스’(에우헤니오 데르베스), 일명 ‘미스터V’는 루비에게 묻는다. “노래할 때 기분이 어때?” “글쎄요. 설명하기 어려워요” 머뭇거리는 루비를 기다려 주는 미스터V. 루비는 노래를 부를 때의 감정을 몸짓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속 안에 응어리진 것들, 그리고 그것을 내보내는 감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루비에게 특별한 재능을 발견한 선생은 “시간 낭비 싫어하지만” 음악 레슨을 해주겠다고 자청한다. 루비는 버클리 음대 장학생을 노리며 공부를 시작하고, 마일스와 듀엣곡 준비에 들뜬다. 그러나 가족들을 돕느라 여러 차례 레슨에 늦게 되고, 미스터V는 한 번 더 늦으면 다시는 레슨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앞서 루비가 방송 인터뷰로 가지 못한 ‘중요한 약속’은 미스터V가 준 마지막 기회였다. 그는 루비에게 닫힌 문을 열어주지 않고, 낙담한 루비는 다음 날 새벽 아버지의 배에 타지 않는다. 대신 마일스에게 위로받는 루비. 그런데 하필 그날 가족에게 곤경이 닥친다. 해경이 청인이 동승하지 않은 배를 문제 삼으며 부과한 벌금 폭탄에 생계가 곤란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루비는 꿈꾸고 욕망한 것들을 포기할 때라고 느끼는데….

 

코다2

영화 <코다> 스틸컷

 

돌봄의 사회적 역량 높이기 

 

사회의 몫을 생각한다. 방송국이 미리 인터뷰이에 대해 알아본 뒤 전문 통역사를 대동했다면? 공공 수어통역 혹은 문자통역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대부분의 문제를 가족 내 돌봄으로 해결하도록 내모는 사회는 가족을 지옥으로 만든다. 루비는 가족의 ‘공짜 통역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사회가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폭넓은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코다〉와 같은 작품으로 지평을 넓힌 시민들이 많아진다면 도움 될 것이다. 가족들의 눈으로 루비가 노래하는 모습을 응시하며 사운드를 제거해 농인의 감각을 전하는 시퀀스, 부친이 루비와 얼굴을 마주하고 성대를 만지며 노래를 느끼는 장면의 낯선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도 꼭 경험하길 바란다. 세계가 수많은 다름으로 구성돼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고 느끼고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으므로.

 

8월 31일 개봉한 영화 〈코다〉는 ’유익한’ 동시에 재미도 있다. 풍부한 감정을 전하는 아름다운 노래가 가득하며, 노골적 표현이 오가는 남매의 싸움은 웃음을 선사한다. 2021년 선댄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US 드라마틱 부문 심사위원 대상, 관객상, 감독상, 앙상블상을 수상하고 ‘애플TV+’가 2천 5백만 달러에 글로벌 판권을 확보해 화제를 모았다. 

 

 

➊ 소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➋ 농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음성언어를 중심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을 뜻함 

➌ 한화 약 280억 원


글. 최서윤 작가

〈월간잉여〉 편집장으로 많이들 기억해주시는데 휴간한 지 오래됐습니다. 가장 최근 활동은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한 것입니다. 화가 나서 만든 영화입니다. 저는 화가 나면 창작물로 표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가 봅니다. 종종 칼럼이나 리뷰로 생각과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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