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4월 2002-04-10   499

꽃나무 그늘 아래의 불만

꽃나무 그늘 아래의 불만


목월이 노래를 쓰지 않았더라도 사월은 목련의 계절이다. 베르테르의 편지를 받지 못해도 목련꽃 그늘 아래 앉고 싶은 시간이다. 그러나 땅을 풀어놓고 꽃잎을 흔들어 깨운 따스한 기운에 서서히 빠져들던 심신은 화들짝 놀라 일어나고 만다. 어쩌면 이 땅에서는 혼자 서거나 앉아 수상쩍게 시간을 보내다가는 체포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봄의 기운보다 더 강력하고 알차게 개정하겠단다. 그 안에는 1인시위의 운명도 포함되어 있다.

집시법이라고 줄여서 부르면 그나마 듣기에는 좋다. 그러나 그 법은 집시들처럼 마음대로 무리지어 거리를 활보하거나 서성댈 자유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억압하고 있다. 신고만 하면 헌법의 기본권 목록에 올라 있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떠벌리면서, 실상은 질서를 명분으로 불허한다고 대답하는 것이 집시법이다. 우리가 뭉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애당초 시민의 자유이기 때문에 헌법에 적혀 있는 것이지 법률이 규정하기 때문에 권리가 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인간은 답답하여 참지 못할 지경이 되면 거리로 나서 소리를 지른다. 그 양식이 국회가 허물어져 가는 현대국가에선 시민의 의무가 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거리의 일시적 무질서를 구실로 국가의 힘으로 누르려고 해도, 그 불만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쌓였다 한꺼번에 쏟아지면 상처는 더 커지고 만다. 그것들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술이다.

광화문 앞의 넓은 거리에서 가스통을 동원한 불기둥 시위를 경고판의 하나로 삼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불법시위 외에는 의사 표현의 길을 찾을 수 없었던 그들의 가슴은 어디에 숨겨야 하는가. 사회적 설득은 포기될 수 없는 과정이요, 목표다. 어떤 계산법은 시위가 초래하는 교통혼잡 등으로 수백 수천억 원의 비용이 허비된다고 강변한다. 제대로 된 의회와 정부와 사법부가 시민과 어울리려면, 그 청구서가 신빙성이 있다 할지라도 민주주의 비용으로 당연히 치러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기술과 비용을 무시하는 태도의 하나가 집시법 개정 발상이다.

그래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그토록 무지한 집시법의 체면을 살려준 아이디어 중의 하나가 1인시위였다. 당장 집시법을 무시하고 시민불복종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경찰보다는 우리가 평화를 더 아끼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1인시위를 통해 시위문화의 새 질서를 만들었다. 편의주의적 관행에 젖은 국가권력과 맞상대하지 않고 점잖게 홀로 서서 평화적 시위의 전형을 마련했다. 진지하고 고독한 몸의 언어를 부도덕한 정부를 향해 던지며 참여민주주의의 한 페이지를 적어왔다. 그런데 이제 그것조차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안타깝고 다급한 마음에 절실하고도 품격 있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리저리 뜯어고쳐 볼썽사나운 꼴을 만들 게 아니라, 아예 집시법을 폐지하자. 집시법의 규제조항을 개정하여 강화할 때와, 과감하게 집시법을 폐지해버릴 경우 어느 쪽이 질서 유지에 더 나은가? 경찰은 물대포와 방패 대신 폭행이나 교통방해죄를 담고 있는 형법을 무기로 삼으면 무법천지가 되진 않을 테니 큰 걱정 말기 바란다. 집시법이 없어져버리면 어느 정도 질서가 파괴될까? 혹시 질서가 더 파괴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손실과 집시법 폐지로 확보하는 자유가 쌓아올릴 자율적 시민의식 중 어느 것이 더 무게가 나갈까? 함께 민주주의의 천칭에 달아볼 때다.

경찰의 말은 질서고 시민의 행동은 무질서가 아니다. 기어이 1인시위를 금지하려 시도한다면, 우리는 다시 1인, 아니 백인 만인의 시위로 저항할 것이다.

차병직 변호사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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