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6월 2018-06-01   460

[듣자] 음악이 흐를 때 영혼에 새잎이 돋는다

음악이 흐를 때
영혼에 새잎이 돋는다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민중의소리’와 ‘재즈피플’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공연과 페스티벌 기획, 연출뿐만 아니라 정책연구 등 음악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기도 하다. 『대중음악의 이해』, 『대중음악 히치하이킹 하기』 등의 책을 함께 썼는데, 감동받은 음악만큼 감동을 주는 글을 쓰려고 궁리 중이다. 취미는 맛있는 ‘빵 먹기’.

 

 

고단한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들 

사람들은 어떤 음악을 들을까. 언제 음악을 들을까. 가온차트의 결산을 보면 한국 대중음악을 듣는 이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발라드를 많이 듣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펴낸 『음악산업 백서』에는 이동하면서 음악을 듣는 이들이 가장 많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동하면서 발라드를 많이 듣는다고 할 수 있을까.

 

음악을 듣는 이유는 다양하다. 특정 뮤지션이나 장르를 좋아해서 듣기도 하고, 심심해서 듣기도 한다. 신나거나 슬픈 감정을 만끽하기 위해서도 듣는다. 대부분의 음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새로운 음악을 꾸준히 찾아 듣는 이들이 아니라면, 한 사람의 음악 취향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 부담이 없다. 그러나 부담 없다는 사실은 새로운 만남과 자극이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때로는 도전하고 탐구할 때 취향과 안목은 새로운 경계를 만든다.  

 

대부분의 대중음악은 감정을 증폭시킨다. 록, 소울, 알앤비, 일렉트로닉, 재즈, 팝, 포크, 힙합 모두 대동소이하다.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고 감정을 매개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어떤 음악은 감정을 가라앉힌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시공간으로 인도한다. 많은 소리와 이야기를 정교하게 채우지 않고 비워둔 음악이다. 소리의 공간을 비워두고 그 틈에 다른 시공간이 스며들게 하는 음악이다. 다른 시공간에서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만난다. 영혼이라 상상하는 허상을 만날 수도 있지만, 이미 알고 있던 자신 아닌 자신을 만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뉴에이지, 재즈, 월드뮤직을 담은 독일의 재즈 레이블 ECM의 음반들이 독보적이다. ECM의 음반들이 대동소이하다고 오해하지는 말기를. ECM의 음반들도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영혼을 눕힐 때 ECM의 음악이 흐르면 고단한 머리칼은 쉽게 잠든다. 

 

재즈레이블 ECM의 음악과 함께 마음의 평화를

유독 자주 꺼내 들었던 ECM 음반이 있다. 첼로 연주자 데이비드 달링의 음반들이다. 1941년에 태어난 첼리스트 데이비드 달링은 1979년 첫 음반 [Journal October: Solo Cello]부터 ECM에서 발표했다. 그중 [Cycles], [Cello], [Dark Wood] 음반을 추천한다. 첼로 한 대로 채우는 연주는 어둡고 무겁다. 그러나 그 어둠은 고통스럽지 않다. 그 어둠은 빛으로 눈부신 도시를 떠나 인적 드문 지역에 묻힐 때 만나는 어둠처럼 고요하다. 활을 긁어내릴 뿐 다른 연주를 더하지 않는데, 데이비드 달링의 음악을 들으면 깜깜한 세계에 완전히 파묻힌다. 첼로 소리가 가득 찬 공간에서 눈을 감아보라. 세계는 멈추고, 분주하던 몸과 마음은 숨을 고른다. 지루하다거나 음울하다는 이야기는 음반을 다 듣기 전까지는 미뤄두자. 우리에게는 정보가 너무 많고, 손 닿는 곳마다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제는 오히려 단절하고 침잠해야 한다. 쉬고 비워야 한다. 모든 소리를 멈추고, 모든 소통을 멈추고 자기에게만 웅크릴 때 데이비드 달링의 음악은 유효하다. 이제 첼로가 차단하는 소리의 성벽 아래에서 이끼처럼 침묵하자.

 

데이비드 달링의 연주가 끝나면 아르보 패르트의 음반을 올려두면 된다. 1999년에 발표한 [Arvo Part : Alina] 음반이다. 단순한 피아노 연주와 조심스러운 바이올린 연주뿐인 음반이지만 이 음반은 조심스러워 편안하다. 가만가만 연주하는 음악은 따뜻하게 다독이고 위로한다. 위로하고 위로받기 위해 화려한 보컬이나 꽉 찬 연주가 필요하지는 않다. 단순함이 항상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하지는 않지만,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은 단순함의 미학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들뜨고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이 녹아내린다. 음악은 BGM이나 신나는 놀이, 압도적인 몰입으로만 유효하지 않다. 좋은 멜로디와 섬세한 연주뿐만 아니라 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식을 조율해 만들어내는 여백과 파장으로 음악은 특별해진다. 귀를 쫑긋 세우고 침묵해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세계가 있다. 이미 존재했던 세계이다. 그러나 놓치고 외면하고 잊어버린 세계를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은 묵묵히 가리킨다. 내 안에 나는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나들에게 나는 얼마나 다정하고 여유로운가. 

 

곁에 두고 들으면 좋은 ECM 음반은 이뿐 아니다. 케틸 비에른스타, 보보 스텐손 트리오, 노마 윈스톤, 엘리나 두니, 마티아스 아익, 아누아브라헴, 크레이그 타본, 콜랭 발롱의 음악을 들으면 음악이 소리로 인도하는 영혼의 현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요란하고 자극적인 음악의 쾌감에 물릴 때면 이 음악들로 최소한 균형을 맞춰보자. ‘힐링’이라는 단어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여전히 마르고 남루한 영혼에 새잎이 돋는다. 

 

재즈레이블 ECM의 추천 음반

 

듣자-서정민갑-사진추가

데이비드 달링 [Journal October: Solo cello] 

 

달링

데이비드 달링 [Cycles]

 

아르보

아르보 패르트 [Arvo Part : Al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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