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8월 2005-08-01   521

걸어다니려면 목숨을 걸어라

시골로 이사 한 뒤로 몇 년 동안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출퇴근해야 했다. 고속도로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보면 바로 옆 카센터 마당에 날마다 교통사고로 처참하게 깨진 차들이 실려와 사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살풍경을 하루가 멀다 하게 마주하곤 했다. 산산조각이 난 채 안전필름에 엉겨있는 차창이나 운전석 시트까지 처참하게 뭉개진 광경을 보면 자연스레 차들만큼이나 많이 상했을 사람들이 떠올라 가끔씩 헛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고속도로 위를 탄환처럼 날아가는 차에 올라타면 문득 ‘이래도 되는 것일까?’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의 유전자에는 기껏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시속 10여 ㎞ 정도의 속도로 만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축적돼 있을 것이다. 시속 100㎞, 심지어 자신의 운전 솜씨를 뽐내는 사람들은 과속방지 카메라를 피해 시속 180㎞로 날아다니는 일을 자랑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멀미도 없이 멀쩡하게 살아가는 일이 가끔 신기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시골로 이사하면서 어지간한 거리는 자동차를 쓰지 않고 다닐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한적한 도로를 거닐다 논밭에서 일하는 마을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학교 근처에서 재잘대며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머리도 쓰다듬어줄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신동엽 시인의 시처럼 이십 리 시골길을 자전거 뒤꽁무니에 막걸리를 매달고 친구를 찾아가는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나 낭만적인 기대들은 시골로 이사하자마자 애저녁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시골에는 사람을 위한 도로란 없었다. 길가에 흰색 차선이 그어져 있을 뿐 사람들은 아슬아슬하게 도로가에 무성하게 난 풀들을 밟고 논둑이나 개울로 떨어지지 않게 요령껏 걸어 다녀야 했다. 소형차들이 지나칠 땐 그나마 나은데 대형 덤프트럭이 난폭하게 스쳐 가면 몸이 날릴 듯 휘청거리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다 보면 식은땀이 흐른다.

건설교통부와 지자체에 전화를 걸어 왜 도로에 인도를 설치하지 않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하자면 인도를 설치할 여유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은 없다고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왜 걸어서 다니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2004년 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02년 한 해 동안 7,222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이중 43%인 3,108명이 보행 중에 죽었다. 전쟁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매일 8,9명씩 길을 걷다 차에 치여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집에서 불과 3㎞ 남짓 떨어져 있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씩씩하게 걸어서 학교에 가라고 말하지 못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길가에 피는 꽃다지나 제비꽃, 애기똥풀꽃을, 봄마다 나무 위에 집을 짓는 까치와 계절마다 높이가 달라지는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어떤 대범한 부모가 목숨을 걸고 자연을 호흡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여전히 도로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에 남은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 그리고 부쩍 늘어난 외국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 그리고 장애인이나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차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만약 고위직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고소득 전문직들이 걸어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정부의 보행자 처우가 과연 지금 같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하나쯤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처참하게 부서진 차량 파편을 헤치고 시속 100㎞의 속도로 밥벌이를 다니는 우리들이나 예산 때문에 날마다 죽어가는 보행자를 대범하게 보아 넘긴다는 공무원들이 어쩐지 전율스런 납량특집 공포물에나 나오는 사람들 같지 않은가.

김성희 『참여사회』편집위원, 모심과살림 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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