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8월 2015-08-03   1203

[특집] 전후시대의 극복? 일본 아베 정권과 아시아 시민의 서로 다른 해석

 

전후시대의 극복? 
일본 아베 정권과 아시아 시민의 서로 다른 해석

 

 

글. 이기호 한신대 정치학 교수

2015년 우리는 해방 70주년을, 일본은 패전 70주년을 맞이했다. 러시아는 지난 5월 승전기념일을 자축하였다. 지난 70년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따라 오늘의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고 달라진 행동은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에 지난 70년의 기억은 또 다른 외교적 투쟁의 장으로 활용되어 왔다.

 

지난 70년에 대한 기억투쟁
아베정권은 지난 70년간의 아시아인들의 기억을 배반하는 정치적 행동을 취했다. 지난 7월 16일 자민당과 공명당의 단독강행으로 헌법 재해석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전보장관련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관련법안은 그동안 항상 논란이 되어왔던 주변사태법, 무력공격사태법,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 등 10 개 법안을 일원화한 ‘평화안전법제정비법안’과 외국 군의 후방지원이 언제나 가능하도록 한 ‘국제평화지원법안’ 두 가지이다. 이 법안에는 일미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신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명분도 있지만,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근거한 보수우파의 프로젝트, 즉 ‘전후시대의 극복’과 ‘보통국가 일본의 건설’이 내재하고 있다.

‘전후시대의 극복’은 삼장법사가 손오공이 말썽을 부리지 못하도록 머리에 붙여놓은 금고아를 벗어 버리는 것에 해당한다. 일본 정부는 특히 헌법 제 9조에 명시된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이를 위해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항을 손오공에게 채워진 금고아로 인식한다. 일본 정부는 심하게는 군사력을 행사할 수 없는 ‘비정상국가’ 혹은 ‘장애국가’로 스스로를 인식해왔다. 1946년부터 48년까지 전후 전범재판이 치러졌지만, 재판비용만 9백만 달러와 약 5만 페이지에 이르는 공판조서에도 불구하고 전쟁범죄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군국주의 일본의 정치골격이 그대로 계승됨으로써 일본은 반성을 통한 역사의 연속이 아니라 망각과 단절이라는 방식으로 일본정치를 이어온 셈이다.

 

일본 국민 70%, 아베정권의 안보법제 강행처리에 반대
그러나 일반적인 일본 시민의 입장은 일본정부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군국주의 혹은 제국주의 일본의 피해자 가운데에는 식민지를 경험한 피지배국의 시민이 가장 중요한 다수이지만 위에서 결정한 전쟁의 참혹함을 자신의 의사와 달리 함께 겪어야 했던 일반 시민인인 일본인들도 이미 존재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일본헌법 9조를 일본에 가해진 형벌이라 아니라 일본이 나아가야할 기본 방향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이들과 아시아 시민들과의 연대 속에서 헌법 9조는 아시아의 소중한 정치외교적 자산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실제로 일본 국민의 70%가 아베정권의 안보관련법안 처리 강행에 반대하고 있고 이에 대해 아베도 인정한 바 있다. 심지어 보수적인 일간지 요미우리조차도 여론조사를 통해 아베정권의 안보법안의 일방적 통과와 헌법9조의 자의적 해석으로 인해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49%, 지지하는 사람이 43%가 됨으로써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불신임이 더 많은 역전현상이 생겼음을 보도하였다(2015년 7월 26일). 

 

그러나 더욱 가관인 것은, 아베 정권이 국민들이 알기 쉽도록 설명하겠다면서 자기 친구가 도둑이 들었다고 도움을 청할 때 도와줄 수 없는 신세가 현재의 일본이며 불량배가 친구를 때리면 이에 함께 대응해야한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특정 국가를 불량배나 도둑으로 비유하는 것이 적절치 않고 국제정치의 복잡한 관계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다. 진정으로 ‘전후 시대를 극복’하는 것은 헌법 9조를 재해석 혹은 개헌까지 해가면서 그 약속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헌법 9조의 정신을 확대하고 현실화하는 것이다. 

 

‘전후시대 극복론’의 또 다른 핵심은 ‘전쟁이 가능한 국가’, 이른바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국가’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은 이른 아베노믹스의 경제효과와 2020년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여 원폭으로 더욱 처참하게 무너진 패전국 일본이 불과 19년만인 1964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동경올림픽의 기억을 전범 국가 일본의 반성이라는 기억의 자리에 대치해 놓은 셈이다. 

 

국가를 가장 중요하고 절대적인 행위자로 불러내고, 정부를 장악한 정치세력이 대의제 민주주의의 허점을 통해 권력을 독점함으로써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메카니즘은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메카니즘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뿐 아니라 6자회담 당사국들은 물론 세계는 아직도 전후시대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은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보통국가를, 북한은 강성대국을, 중국은 대국굴기의 꿈을 꾸고 국가의 이상으로 두고 있다. 같은 시각으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면 한반도 또한 ‘전후시대’에 갇혀있다. ‘전후시대 극복’의 핵심은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지금은 전쟁이 언제라도 가능할 수 있고 전쟁이 가능한 것을 전제로 안보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 역시 전후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셈이다.

 

참여사회201508(통권 225호)

 

시진핑, 박근혜, 아베 신조의 공통점
전후 70년을 돌이켜보면 중국에는 시진핑, 한국에는 박근혜, 일본에는 아베신조가 정권을 잡은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치가 민주주의라는 메카니즘을 통해 세습 아닌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왠지 씁쓸하다. 전후시대의 극복이 국가나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전후 70주년을 맞아 진정한 전후시대의 극복은 이제 시민의 몫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우리가 전후 70년간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은 ‘국가의 성장’ 아니라 ‘시민의 성장’이다. 내셔널리즘을 극복할 수 있고 누구보다 슬픔과 기쁨에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 그 공감대와 연대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할 때 전후시대가 만들어낸 냉전체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특정그룹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또 다른 파시즘을 극복할 수 있다. 

시민의 자리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그 자리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잘 다루지 않고 다룬다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가 아니라 지역에서 스스로의 동네를 만들고 이를 연대하는 움직임들이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인구 5천만인 한국에 외국인이 1년에 1천만 명이 오고가는 시대가 되었다. 시민들이 외교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적어도 시민들 사이에 국경이라는 높은 담벼락이 베를린의 장벽처럼 허물어져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류가 경제효과로만 이어지는 것에 주목해서는 곤란하다. 화장품과 K팝, 드라마와 영화만 수출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 안에 아시아인을 어떻게 키워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함께 따라가야 한다. 최근에 몇 몇 대학들은 젊은 세대를 키우는 교육의 장소를 이웃국가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가두어 두었던 국가주의 내셔널리즘을 우리 스스로가 던져 버릴 때가 온 것이다. 특히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이러한 장벽 가운데 하나로 분단의 벽을 던져버릴 필요가 있다. 

 

친구가 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안보다
전후 70년, 이제는 시민들이 분단의 벽을 걷어내고 친구가 되는 것이 그 어떤 안보보다 가장 강력한 안보이며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행복한 안전이라는 점을 설득해내야 하는 시점에 왔다. 한국과 일본 남한과 북한이 친구가 될 수 있는 방법 그래서 무력에 기초한 안보가 더 이상 설 수 없도록 만드는 구상과 방식은 애초에 국가로부터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전후시대에서 시민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을 상상하고 함께 행동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집] 공존의 길, 분쟁의 길 – 참여사회 2015.08(통권225호)

1_이혜정 전후 70년,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

2_이기호 전후시대의 극복? 일본 아베 정권과 아시아 시민의 서로 다른 해석

3_정현곤 분단체제 70년, 변화는 가능한가?

4_이태호 울란바토르 프로세스 – 한반도 평화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 6자회담

5_홍기룡 제주평화의 섬 선포 10년과 해군기지 반대운동 30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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