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8월 2015-08-03   987

[여는글] 시민운동과 체통

 

시민운동과 체통

 

 

글.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나의 시민운동 활동과 일상적 삶이 어떻게 만나야하는지를 고민하지만, 해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관성적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자책하고 있다.

 

참여사회201508(통권 225호)

 

경박한 사회의 민얼굴

2015년 3월 5일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에서 초청강연을 하던 리퍼트 미국대사가 공격을 받았다. 다음날 중앙일보는 “한·미 동맹이 테러당했다”를 1면 타이틀로 뽑았다. 다른 보수 일간지에 비해 스마트한 면모를 보이려 애쓰던 중앙일보가 이 정도이니, 다른 일간지는 훨씬 더 지독했으리라는 것을 뻔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 언론은 차분했다. 미국 정부는 ‘주한 미국대사가 한 개인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정도의 보도를 내보냈다. 그 다음날부터 한국의 보수적인 일간지는 당황해서 톤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 7일 중앙일보는 다시 1면 타이틀을 “‘리퍼트 효과’ 테러를 이기다”로 뽑았다. 더욱 당혹스런 것은 ‘김치를 먹으니, 회복 속도가 더 빨랐고, 그래서 하루 일찍 퇴원하게 되었다’는 리퍼트 대사의 발언이다. 거기에다가 한 술 더 뜬 것은 우리 시민들이다. 미국 대사관 앞에서는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한국인들이 춤과 난타 공연을 벌이는 소동이 있었다. 자칭 엘리트를 자처하는 여론 주도층에서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이 체통 없는 싸구려 행태에 나는 낙담하였다. 

 

이에 비해 참여연대의 대응은 신속하고, 깔끔하였다. 당일 참여연대는 ‘어떤 형태로든 폭력 행위는 용납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리퍼트 대사의 빠른 쾌유를 빈다’는 요지의 논평을 발표하였다.

 

서구의 노동운동과 체통
서구에서 시민계급의 형성은 절대왕정과 귀족에 대한 투쟁에서 시작되었다. 시민계급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방식으로 시민성을 강조하였다. 그 핵심은 상속을 통해 공짜로 특권을 누리는 나태한 귀족계급과 스스로를 차별화하면서, 능력에 따른 출세, 법치주의, 근면·절약·절제를 통한 시장에서의 성공이었다. 이러한 시민성의 배후에는 금욕적인 청교도 윤리가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 더해 이들이 강조한 것은 시민계급의 매너였고,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규율과 행동양식으로 나타났다.

 

서구사회에서 이런 매너는 여전히 시민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시민계급 매너의 형식주의와 허위성을 비판하였지만, 서구의 노동운동은 이를 내면화하였다. 영국이나 독일의 노동운동에서는 노동자의 체통respectability이 강조되었다. 내가 박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구술을 위해 만났던 90세의 사회민주당 노동자는 ‘우리는 도덕적이었고, 그래서 주변의 다른 노동자와는 달랐다’는 강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체통의 내면화는 ‘노동운동의 부르주아화’로 비판받기도 하였다. 그렇더라도 나는 자신의 가족이 3대째 사회민주당 당원임을 뽐내면서, 자본주의적 소비행태를 맹렬히 비판하던, 초등학교 2학년의 학력을 가진 어느 할머니를 만나면서, 이들의 자긍심만으로도 독일 노동운동은 찬란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달라진 시민운동을 보여주어야
우리 노동운동은 어떤가? 우리 시민운동은 어떤가? 리퍼트 대사 피습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 엘리트 집단이나 거기에 휘둘리는 대중의 민낯을 대하면서, 나는 우리 시민운동이라도 먼저 일상적 삶에서 무언가 달라진 모습, 체통이나 품격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를 스스로 묻게 되었다. 시민운동가의 일상생활과 작업환경, 그리고 거리의 집회에서부터 우리는 무언가 달라진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도 행복하지 않을까?

 
6월 말, 내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이 제출한 시민운동 행사 참관기를 읽으면서, 나는 낙담하였다. 대다수의 학생은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앞으로 시민운동이 어떻게 젊은 세대에게 체통 있는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여기에는 긴 성찰과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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