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2월 2000-12-01   978

재별의 실권주는 로비용?

4대 그룹 실권주 배정 실태보고서

지난 8월, 송자 전 교육부 장관이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재직중일 때 실권주를 인수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취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직자 자격 시비를 불러일으켜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때 이 사건과 더불어 실권주 자체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실권주 인수가 특혜인가 아닌가, 이사회에 실권주 배정 권한을 주는 것이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가 등이 쟁점이 되었다. 비록 실권주 논란이 제도적 보완책을 모색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기는 했지만, 이 문제는 주주평등의 원칙이나 경영 투명성과 관련되는 중요한 사안이므로, 지속적인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문제해결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참여연대는 실권주를 특정인에게 배정하는 것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작업의 출발로, 삼성·현대·LG·SK 등 4대그룹의 상장계열사 47개 사를 대상으로 1998년부터 2000년 8월까지 유상증자시 발생한 실권주의 배정 실태를 분석하여 보고서를 발간했다.

실권주는 기업이 유상증자를 할 때 기존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해 임자가 없어진 즉, ‘실권(失權)’이 된 주식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유상증자를 할 때 주주 우선배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주주들이 우선적으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기존 주주들이 신주를 인수하지 않아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에는, 시장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시 공모하거나 실권주에 한해 주식발행을 포기하거나 이사회의 결의로 특정인에게 배정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이사회의 결의로 특정인에게 배정을 해주는 경우가 문제로 된다. 실권주 인수는 일종의 ‘특혜’인데 이사회에 실권주 배정 권한을 줌으로써 이사회가 합리적인 기준 없이 자의적으로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사회에서 실권주를 배정할 경우 이사 자신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이사회가 자기 자신들에게 특혜를 주는 결의를 하는 셈이다.

삼성, 인맥관리 차원 실권주 활용 의혹

먼저 4대 그룹별로 과연 실권주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4대 그룹의 47개 상장계열회사는 1998년부터 2000년 8월까지 총 105회에 걸쳐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삼성그룹은 총 40번의 유상증자 중 37번의 유상증자에서 실권주를 이사회결의로 임원 등 특정인에게 배정하였으며, 현대그룹은 총 40번의 유상증자 중 5번의 유상증자에서 실권주를 특정인에게 배정했다. 또한 LG그룹의 경우, 총 14번의 유상증자 중 7번의 유상증자에서 실권주를 특정인에게 배정하였으며, SK그룹의 경우 총 7번의 유상증자 중에서 실권주를 특정인에게 배정한 것은 단 1번이었다. 이를 비율로 환산해보면, 유상증자시 발생한 실권주를 임원 등 특정인에게 배정한 경우는 삼성그룹이 92.5%, 현대그룹이12.5% LG그룹이 50%, SK그룹이 9.1%이다.

특히 삼성은 실권주를 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배정한 비율도 타그룹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실권주를 인수한 임원의 숫자도 170명으로 4대그룹 전체 234명의 73%에 달한다. 게다가 삼성전자나 삼성전기와 같이 임원들의 실권주 인수 자금을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가지급해주고 일정시점까지 상환하도록 하는 방법까지 동원하는 것 등을 볼 때, 삼성은 그룹 전체 차원에서 임원들에게 조직적으로 실권주를 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기업 내부인력뿐 만 아니라 각계각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룹 차원의 인맥관리가 매우 광범위하고 철저하다는 삼성인만큼, 임원들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권주를 활용하고 있다는 추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실권주를 특정인에게 배정하는 것이 특혜인 이유는, 실권주는 시가보다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유상증자를 할 때 대부분 시가보다 할인된 가격(예를 들어 시가가 주당 2만 원인 주식을 30% 할인하면 주당 1만4,000원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4대그룹 상장계열사들의 유상증자시 적용된 평균 할인율은 27%로 나타났다)으로 주식을 발행하는 데서 비롯된다.

실권주는 유상증자 발행가격과 동일한 가격으로 발행되는데,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들만이 참여할 수 있고, 보유 주식수에 비례해서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의 수가 제한되는 데 비해 실권주는 주주가 아닌 자에게도 배정할 수 있다.

할인발행으로 유상증자를 하여 실권주가 발생한 경우 실권주를 인수하는 사람은 시장에서 주식을 구입하는 것보다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실권주를 인수하는 순간 이미 할인발행에 따른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반면에 기존 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주식가치가 하락하는 손해를 입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쳐 얻는 특혜

이번에는 4대 그룹 상장계열사들의 실권주를 배정받은 임원들이 실권주 인수로 인해 얻게 된 시세차익 규모를 살펴보자.

이사회 결의로 실권주를 배정한 경우 대부분 등기임원 및 비등기 임원들에게 배정이 되었다. 그러나 비등기 임원들의 주식 변동내역은 공시되지 않기 때문에 보고서는 등기임원에 한정해서 실권주 인수로 인한 시세차익을 밝히고 있다. 또한, 시세 차익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계산했는데, 실권주를 인수할 당시의 시가를 반영하여 계산한 실권주 인수시점의 시세차익, 실권주를 인수한 후 이를 처분함으로써 얻은 처분손익, 실권주를 처분하지 않고 2000년 8월 31일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을 경우 이 시점의 시가로 계산한 평가손익 등이다.

먼저, 삼성그룹의 경우 상장계열회사 170명의 등기임원들이 얻은 실권주 인수시점의 시세차익은 191억 원이다. 또한, 실권주를 인수한 삼성그룹 상장계열회사의 등기임원들이 1998년부터 2000년 8월 31일까지 얻은 실권주 처분이익은 214억, 실권주 평가손익은 215억 원으로 총 재산상의 이익은 평가손익과 처분손익의 합계인 429억 원에 이르고 있다.

현대그룹, LG그룹, SK그룹의 경우 등기임원들이 실권주 인수시점에 얻은 시세차익은 각각 10억 원, 29억 원, 2억4,000만 원이며, 1998년부터 2000년 8월 31일까지 얻은 실권주 처분이익과 실권주 평가이익의 합계는 각각 10억 원, 16억 원, 2억3,000만 원이다.

회사와 전체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할 이사들이 실권주를 특정인에게 배정할 수 있는 제도를 악용하여 자신들에게 특혜를 제공하고 그 결과로 손쉽게 수억 원대의 재산 늘리기가 가능한 제도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임원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이를 금전적으로 보상해주는 것은 전체 주주들이 모인 주주총회에서 임원 보수한도를 높이거나 스톡옵션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이해당사자들끼리 모여서 결의하고 집행할 일이 아닌 것이다.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실권주 배정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은 유상증자 발행가액이 할인발행되기 때문이다. 유상증자 발행가액이 시가로 결정된다면 기존 주주의 희석화 문제나 실권주 인수로 인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주우선 배정 원칙과 결합된 것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기본 골격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접근은 장기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이사회에 의한 실권주의 임의배정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일반공모하거나 발행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신주 인수권증서의 유통을 활성화하는 등의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승희 참여연대 정책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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