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9월 2021-09-01   740

[특집]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사람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사람들 

 

글. 윤석천 경제평론가

 

 

코로나 바이러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근근이 버텨오던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실물 경제는 차갑게 식었다. 중앙은행과 정부는 빠르게 대응해야 했다. 수단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았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축으로 한 통화정책과 무차별적 재정부양책이 구원투수로 다시 등판했다. 

 

주요 중앙은행(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인민은행)이 양적완화로 사들인 자산규모는 2019년 말 약 20조 달러 정도에서 2021년 7월 말 현재 30조 달러로 치솟았다. 팬데믹 기간 주요국 중앙은행은 약 10조 달러 이상의 돈을 시중에 공급했다. 한국의 작년 GDP가 1조6천억 달러이니 얼마나 많은 돈이 풀렸는지 상상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각국은 재정부양책을 쏟아냈다. IMF에 따르면 2020년 12월 현재 전 세계적으로 14조 달러의 재정지출과 금융지원 조치가 시행됐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돈이 시중에 뿌려졌다.

 

어떤 시장이든 가격은 그 연료인 ‘유동성’에 의해 결정된다. 돈이 풍부하면 수요가 늘기 마련이다. 그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천문학적인 ‘팬데믹 머니’ 살포로 현재 자산시장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위에 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자산시장이 펄펄 끓고 있다. 

 

왜 자산시장만 유독 뜨거운 걸까? 돈은 이익을 좇는다. 기초체력이 최악인 경제 상황에서 돈은 실물경제로 투자되지 않는다. 투자해봐야 이익을 남기기보다 손해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돈의 종착지는 자산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위기로 폭락한 자산시장은 자산가의 먹잇감으로 최적이다. 헐값에 쓸어 담을 수 있어 서다. 이들이 사면서 자산시장은 꿈틀대고 대중이 뒤따른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기 극복이란 명분하에 중앙은행과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쉬운 돈’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산시장의 불쏘시개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물경제는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 자산시장은 천문학적 유동성을 연료로 로켓처럼 상승한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9월호 (통권 288호)

주요 중앙은행(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인민은행)이 양적완화로 사들인 자산규모는 2019년 말 약 20조 달러 정도에서 2021년 7월 말 현재 30조 달러로 치솟았다

 

투자자가 급증한 이유

 

팬데믹 이후 자산시장 투자자는 급증했다. 특히, 주식시장이 그렇다. 미국의 경우, 가계와 비영리 기관이 보유한 총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사상 최대 수준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신한은행이 4월 20일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29.9%였던 주식투자 비율은 2020년 38.2%까지 치솟았다. 우리 국민 10명 중 거의 4명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돌아보자. 세계 경제는 금방이라도 파국을 맞을 듯 보였다. 하지만 실물경제와 별개로 자산시장은 회복이 빨랐을 뿐 아니라 고공행진을 했다. 당시 중앙은행과 정부는 지금처럼 초저금리와 재정을 동원한 부양책이란 도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이때 먼저 회복된 건 자산시장이었다. 늘어난 유동성 때문이었다.

 

금융위기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눴다. 자산시장 참여자와 그렇지 못한 자. 이들의 부는 극명하게 갈렸다. 자산시장 랠리에 올라탄 이들의 부는 급격히 늘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의 자산은 쪼그라들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일종의 교훈으로 남았다. 팬데믹은 그 교훈을 새긴 이들에겐 기회의 장으로 인식됐다. 학습효과로 수많은 사람이 자산시장에 새롭게 참여했다. 

 

포모증후군도 한몫했다. ‘포모증후군Fear of Missing Out’ 즉 무리에서 소외되거나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속성은 인류의 DNA에 깊숙하게 새겨져 있다. 원시시대 무리에서 떨어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런 속성이 여전히 인류의 뇌를 지배한다고 설명한다. “남이 하면 나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신규 투자자를 양산했고 시장을 밀어 올렸다. 

 

주식거래 플랫폼의 발전도 투자의 일반화를 부추겼다. 100주 단위의 거래만 가능했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됐다. 단주 거래는 당연한 거고 이제는 백만분의 일 주 거래도 가능한 세상이다. 아무리 소액이라도 투자가 가능하다. 700달러를 넘는 테슬라 주식도 가진 돈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가진 돈에 맞춰 얼마든지 소수점 단위로 매수가 가능하다. 가령 100달러가 있다면 0.1429 주 매수할 수 있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투자 기회가 결정되지 않는다. 로빈후드나 기타 거래 플랫폼들이 이런 거래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거래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게임에 익숙하다. 게임을 하며 성장한 세대다. 진화한 거래 플랫폼은 주식 투자를 ‘게임화’했다. 소액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그 돈을 꼭 지켜야 할 밑천으로 여기지 않는다. 게임의 대가라 여긴다. 주식 가치의 과잉평가 혹은 과소평가 여부는 중요치 않다. 게임 화면이 바뀌듯 가격이 움직이기를 바랄 뿐이다. 무분별한 움직임을 제어하는 장치는 거의 없다. ‘투자’란 개념보단 게임하듯 즐기는 거래가 늘었다. 시장 참여자가 폭증한 이유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9월호 (통권 288호)

8월 27일 예정된 미국의 연례 경제정책 회의 ‘잭슨홀 심포지엄’을 앞두고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테이퍼링’을 언급할 지 여부에 세계 증시가 주목하고 있다 ⒸFOMC

 

자산시장 폭등이 남길 후유증

 

노동만으론 ‘벼락거지’를 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일종의 시대정신이 됐다. 노동이 먹거리, 집, 안락한 노후가 되는 세상은 인위적으로 지워졌다. 무차별적 유동성 공급으로 돈의 가치는 희석됐다. 돈의 가치가 나날이 떨어지는 세상에서 가만히 있을 사람은 많지 않다. 너도나도 자산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것이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동이 아닌 투자가 중시되는 세상이 오고야 말았다.

 

문제는 자산시장이 위험시장이라는 데 있다. 자산시장이 고공행진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많은 사람이 중앙은행과 정부가 유도한 덫에 걸렸다. 무엇보다 그 덫은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투자란 마약과 같아 서다. 

 

역설적으로 위험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는 만성 불감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리스크가 큰 자산시장의 붕괴는 더 이상 ‘예외적’ 이벤트가 아니다. 현대 화폐 경제에서 시장의 평온함은 칠면조의 안락감과 같다. 칠면조의 안전이 영원하지 않듯 시장의 안정 또한 그렇다. 오늘의 정상은 비정상의 씨앗이다. 중앙은행과 정부가 만든 인위적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질 수밖에 없다.

 

그때 과연 중앙은행과 정부는 어떤 도구를 이용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설사 살린다 해도 자산시장의 승자와 패자 간 심화된 부의 불평등은? 노동이 뒷전으로 밀린 시대정신 왜곡은? 대체 어쩔 것인가? 자산시장의 폭락과 폭등이 왜 반복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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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당신이 주식에 혹하는 사이

1. 내가 주식에 혹하는 이유? 편집팀

2.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사람들 윤석천

3. 대중투자문화와 투기적 주식시장 류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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