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5월 2018-05-02   512

[읽자] 땀 흘리지 않고 달리기를 즐기는 방법들

땀 흘리지 않고
달리기를 즐기는 방법들

글. 박태근 알라딘 인문 MD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지난달에 네덜란드 여행 이야기를 펼쳐놓고 아직도 네덜란드로 떠나지 못해 민망한 마음이지만, 그때 소개한 책을 아직도 읽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민망함보다는 여행 걱정이 앞선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래도 비행기 표는 끊어두었으니 5월 초에는 암스테르담에서 튤립과 함께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을 터, 역시 책과 여행의 상관관계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인류 문명의 숙제다. 이 지면 역시 ‘읽자’고 외치는 듯한 공간이지만, (무려 6년 만에) 고백하자면 나를 다독이며 제발 ‘읽자’고 읊조리는 위로와 응원의 제안이었다. 앞으로는 더욱 솔직하게 아직 읽지 못했으나 언젠가는 읽을, 어느 정도 읽었으나 온전히 읽었다고 말하기 애매한 책들을 마음 편히 소개할 작정이다. 인류 문명의 숙제를 함께 풀어가는 마음으로 가볍고 대책 없이 읽어주시길 바랄 따름이다.

 

달리기, 일단 달리면 된다

얼마 전 열린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일본 공무원 마라토너가 남자 부분 우승을, 미국 간호사 마라토너가 여자 부분 준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다. 벌써 2년 전이던가. 트레일 러닝에 도전하겠다며 훈련에 나섰다가, 첫날 무릎 부상을 입고 바로 달리기 은퇴를 선언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나의 달리기 지론은 “누구도 앞서가지 않고, 누구도 뒤에 남기지 않겠다.”였으나, 이 훌륭한 철학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이론으로만 남게 되었다. 물론 이론과 함께 남은 것이 또 있었으니,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모은 달리기 관련 책들이다.

 

달리기를 잘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달리기가 즐거운 일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책, 다카기 나오코의 마라톤 시리즈 3종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마라톤 1년차』, 『마라톤 2년차』, 『해외 마라톤 Run Run!』으로 이어지는 시리즈는 운동이 부족한 30대 일러스트레이터가 30분 동네 걷기에서 시작해 하와이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마라톤을 핑계 삼아 얼마나 신나게 뛰고 먹고 마실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혼자 달리기에서 벗어나 부모님과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함께 각종 국내 달리기 대회를 섭렵하고 해외의 이색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등 초보 러너가 마라톤 풀코스 주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담아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기대와 도전을 부른다. 물론 커다란 함정이 도사리고 있으니, 바로 술과 음식이다. 마라톤에는 어김없이 각종 특산물과 이색 음료가 가득했으니, 이 책을 읽고 괌 마라톤에 출전하려다가 술과 음식에 취해 출발선에 서지도 못하고 돌아온 동료의 경험담이 새삼 떠오른다. 

 

알고 뛰면 더 잘 달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달리기 시작해 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는 걸까. 이 물음을 해결한다고 더 잘 달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같은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 먼 거리를 달려온 책들이 있으니 살펴보자.

 

어느 주제든 역사를 훑는 게 출발점. 여기에 맞춤한 책이 『러닝』이다. 노르웨이 민속학자 토르 고타스는 잉카, 수메르, 이집트 문명의 달리기에서 시작해 100미터 달리기 기록 전쟁에 들어선 현대의 달리기까지, 인간의 달리기 도전사와 발전사를 정리하며 말 그대로 인류가 두 다리로 달려온 역사를 그려낸다. 

 

한편, 인류의 달리기가 생존의 문제였고, 인류는 어떤 동물보다 오래, 멀리 달릴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살아남았다며, 인류를 ‘달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서 탐색하는 책 『본 투 런』도 살펴야겠다. 이 책은 최신 과학기술이 접목된 오늘날 달리기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멕시코 협곡에 사는 타라우마라족의 달리기에서 육체와 영혼이 하나로 통합되는 달리기의 이상을 찾는다. (이 책은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인데,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 정책으로 제작이 지연되고 있다니, 달리기로도 넘어설 수 없는 게 있다는 데에서 과연 인류 문명의 근원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최고의 경지? 생각하며 달리기

달리다 보면 온갖 잡생각이 들다가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면 점차 잡념이 사라지고 무언가에 집중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꾸준히 살펴 사유로 바꿔내고 급기야 글로 남긴 이들을 달리기의 사상가라 불러야 마땅한데 이 분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다름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다. 소설 쓰는 일은 육체노동이라며 체력과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결국 마라톤 풀코스를 수십 차례나 완주하며 달리기와 글쓰기의 혼연일체 경지에 이르렀다. 그 과정을 담은 책이 바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잊지 말고 꼭 살펴봐야 할 달리기 책이 바로 『달리기와 존재하기』다. 이 책은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전으로 꼽히는데, 저자 조지 쉬언은 심장병 전문의지만 몸의 문제보다 정신의 문제에 집중한다. “나는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안고 달린다”라고 말하며 특히 “거리를 달릴 때, 나는 철학자가 된다. 그 순간,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어버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달리기가 내 삶의 구원인가 싶다. 참, 이 책의 번역자가 소설가 김연수이니, 글쓰기와 달리기의 관계는 어느 정도 밝혀진 듯싶다. 남은 과제 ‘책과 달리기의 상관관계’는 이 책들을 읽어보며 함께 해결해보기로 하자. 

 

마라톤 러닝

본투런  하루키

마라톤 1년차_초보도 따라 하기 쉬운 즐거운 달리기 프로젝트 / 다카기 나오코 지음 / 살림

러닝_한편의 세계사 / 토르 고타스 지음 / 책세상 

본 투 런 Born to Run_인류가 경험한 가장 위대한 질주 / 크리스토퍼 맥두걸 지음 / 여름언덕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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