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7월 2015-07-02   806

[역사] 휴전 평화

 

휴전 평화

 

 

글.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은 휴전 중
지금 세계의 역사교육은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도 20세기 역사에 집중하는 추세다. 그래서 역사교과서마다 한국전쟁을 언급한다. 냉전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열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냉전의 시대가 왔건만, 한국전쟁은 아직 종전과 평화를 선포하지 않은, 그래서 끝나지 않은 ‘유일한’ 전쟁으로 기억된다. 

한국인에게도 한국전쟁은 휴전 중이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 체결되었다. 정전이란 전투 행위를 완전히 멈춘다는 뜻이다. 또한 교전 당사국들이 정치적 합의를 이룰 수 없어 국제기구가 개입하여 전투 행위를 정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휴전은 적대 행위는 일시적으로 정지되었으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전쟁의 종료를 선언하는 강화조약 혹은 평화조약의 전 단계이다. 이렇게 볼 때 협정 체결로 전투 행위가 완전 중단된 한국 전쟁 역시 정전협정이라 부르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는 정전협정 체결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휴전협정이라 부르고 있다. 휴전이 이승만의 호전적인 북진통일론에서 나온 이념적 개념이라 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1953년 7월 27일, 그날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분단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정서가 휴전이란 말에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휴전협정은 을사조약이다!
1953년 7월 27일, 37개월 간 한반도에 진동하던 포성이 멈췄다. 하지만, 사람들은 환호하지 않았다. 다음날 정전협정 조인 소식을 전한 <경향신문>의 머리기사는 다음과 같다. ‘이 땅에 언제 통일이 오려는가? 피의 대가는 굴욕적 휴전, 이제 눈물도 피도 마를 겨레의 비분.’ 서울 사람들은 굴욕적인 협정이라고 을사조약을 평가했다. 

 

굴욕적 휴전은 기어코 조인되었다. 원한의 날 4286년 7월 27일 오전 10시. 이날이 오지 않기를 위하여 전 국민들이 늙은이도 젊은이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상이군인들까지도 목이 터지도록 눈물이 마르도록 외친 휴전반대 국민운동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다시 고난의 구렁이로 들어가게 되었다. 때마침 월요일 본사 속보판 앞에 멈추는 시민 발자국은 무겁다. ‘굴욕적 휴전 협정 조인’의 여덟 글자를 보는 눈동자들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덮는다. 을사조약을 예상시키는 이날 수도의 슬픔은 한없다. 

 

남북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국제전으로 확대되면서 막대한 희생을 치른 한국전쟁이지만,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울분이 느껴진다. 휴전 반대 운동을 단순히 이승만 정부가 주동한 관제 데모라고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참여사회 2015년 7월호 (통권 224호)

휴전과 평화의 불안한 동거
<동아일보>는 임시 수도였던 부산의 거리 소식을 전했다. 

 

벽보 앞에 운집한 시민들은 휴전 조인 보도에 비상한 관심의 눈초리를 집중한 가운데 미국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되고 말았다는 허전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가 하면 이젠 환도(서울로 돌아감)의 보따리를 싸야 되겠다는 등을 중얼거릴 뿐 무표정의 그것에 별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무더운 날씨에도 시내 송도해수욕장에는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언제나 다름없이 전쟁도 잊은 듯이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국제시장을 비롯한 각 상가에서도 장거래가 활발히 계속되고 모든 생산공장에서도 여전히 작업을 계속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 국민에게도 못지않게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이거늘, 오늘의 휴전평화는 앞으로 더 무서운 비극이 닥쳐올지도 모르는 공포와 불안감을 주고 있음이 틀림없다. 우리 민족이 희구하는 진정한 평화는 잃었던 강토와 잃었던 민족을 찾고 통일된 한국을 이룩함에서 시작된다. 우리 민족이 휴전 반대를 절규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러기에 앞으로 더 무서운 비극을 자아낼 절망 속의 휴전평화이기에 시민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발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인 것이다.

 

세계인에게 정전협정은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는 현상유지를 의미했지만, 한국인에게는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를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불완전한 평화를 의미했다. 그래서 정전 ‘현상’을 휴전의 ‘정서’로 받아들인 것이다. <조선일보>는 정전협정에 대해 근본문제의 해결을 잠시 유보한 것이라 평가하며, ‘한국전쟁에서의 미국의 인도적이고 거대한 희생이 참으로 의의를 빛내려면 금후의 조치 여하가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1954년 4월에 한국전쟁의 후속조치로 남북을 비롯한 19개국 외상들이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한반도 평화통일방안을 논의했다. 남북한의 통일방안이 충돌하고 유엔의 역할을 놓고 진영 간 갈등이 폭발하면서 회담은 결렬되었다. 그 후 반세기가 넘는 오늘까지 한반도에는 불안한 휴전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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