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1월 2000-11-01   526

부정대출, 고위층 외압의 시각에서만 볼 것인가

한빛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의 부정대출사건을 바라보는 시민 중에는 무언가 잘못 짚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이 사건보도를 보고 처음에는 그 대출규모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놀랐다. 관악지점의 예금고의 배가 넘는 1,000억 원이 한 회사에 대출되었다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그 많은 돈이 한 회사에 대출되기까지 아무런 제동장치가 없었는가가 우선 궁금했다. 그 의문점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고위층의 전화압력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여론의 관심은 고위층의 압력이 있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고, 검찰수사도 외압 여부 규명에 중심이 놓여졌다. 그 후 검찰은 수사결과 중간발표를 통해 고위층의 외압은 없었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이런 발표가 있자 언론보도는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의심스러운 점은 있지만 증거가 없다니 고위층의 외압은 없는 것으로 치고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틀림없이 외압이 있었을 것인데 검찰이 이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였으니 다른 기관을 통해 재수사를 해봐야 한다는 쪽이다. 어쨌든 검찰이 외압이 없었다고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나니 언론의 관심은 식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그 부정대출에 대한 고위층 외압이 다시 조사대상에 오르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러한 여론의 반응을 보면서, 과거 F-15 전투기 구입과 관련된 로비사건에서와 비슷한 과정을 밟는 듯해서 염려된다. 그 때에도 원래는 부정한 방법의 로비로 인해 전투기가 잘못 구입되었다는 ‘무기 구매의 부정’이 문제되었다. 그러다가 전 국방부장관이 미인 로비스트에 보낸 러브레터가 공개되면서 여론은 두 남녀 사이의 관계가 어디까지 갔느냐에 관심을 두게되었다. 수사 결과 두 사람이 깊은 관계까지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러자 그 사건은 하찮은 문제만 남은 듯이 여론의 관심 밖에 머무르게 되었고, 결국 몇몇 관계자들이 뇌물죄로 처벌되는 선에서 마무리되고 말았다.

계속되는 부정대출사건, 금감위ㆍ금감원은 뭘 하는가?

한빛은행사건에서는 언론이 박지원 전 장관의 개입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기 시작하자 시민들의 관심이 확 그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박 전 장관이 전화를 걸었다는 진술이 있었고 이것을 부인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알리바이가 제시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박 전 장관의 개입이 없다면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런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검찰은 외압이 없었다고 발표했다. 외압의혹이 벽에 부딪히자 언론은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고, 그 때 여론의 관심을 원점으로 돌려서 다시 대출을 둘러싼 제도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게다가 다른 대형뉴스들이 쏟아져 나오자 언론은 이 부정대출사건을 약하게 보도하는 선에서 마무리짓고 말았다.

처음부터 우리는 외환위기를 겪고 난 현시점에서 과거와 같은 대형금융부정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대했어야 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가장 예리하게 개혁의 칼날이 가해졌던 부분이 바로 금융부문이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은 금융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한빛은행에서 부정대출사건이 일어났다면 다른 은행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관악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은 다른 지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했어야 했다.

어떤 부분이 허술했기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꼼꼼히 짚어 봤어야 했다. 고위층의 압력 하나만으로 금융기관의 탄탄한 대출과정을 뚫어 낼 수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금융기관 내부에 허술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고위층의 외압이 먹혀들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금융기관에 대한 감사체계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부정대출사건이 상당기간 반복되도록 방치되었던 것이다.

한빛은행사건은 이미 본점의 감사에서 대출사고의 기미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고 밝혀졌다. 본점 감사팀은 담보 없이 과다한 대출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고도 적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아크월드 사가 한빛은행 관악지점에서 할인받은 거액의 어음이 결제되지 않은 사실을 진작 발견하고도 곧 결제가 될 것이라는 지점장 말만 듣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감사팀이 이러한 사건을 적발하고도 그대로 덮어 둔 데에는 고위층의 외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한빛은행의 내부감사가 금융사고를 방지하기에는 매우 허술한 체계를 갖고 있다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감사요원의 전문성과 감사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을 통합하여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을 출범시킨 것이 1998년인데 이들은 이런 대형사고가 나도록 무엇을 했느냐는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금융사고, 여론의 지속적 관심이 필수적

한빛은행 관악지점에 예금한 시민의 돈이 몽땅 신용 없는 회사에 대출되어 회수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예금주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직은 예금보장제도 때문에 은행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해도 예금주들에게 피해는 가지 않지만, 장래에는 이런 대형사고가 있으면 예금주들의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후속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한 번 사고를 내고도 그 허점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장래 똑같은 사고가 거듭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빛은행의 예금주들이 빈손으로 물러나게 될 때가 올 수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 금융소비자가 이런 사고은행을 크게 기피하지 않는 순박함을 지니고 있지만, 곧 소비자들도 영악해지게 될 것이고 이러한 부실은행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퍼지게 될 것이다. 어떤 은행의 대출사고가 보도되면, 그 은행의 예금주들이 몰려들어 예금보장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을 빼내가는 사태는 쉽게 예상된다.

한빛은행사건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한빛은행의 본점 감사팀이 문제를 발견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 신용보증기금 전 영동지점장과의 관련 여부, 그리고 고위층의 외압이 정말 없었는가 하는 문제 등, 의혹은 좀더 치밀하게 파헤쳐져야 한다. 이와 아울러, 여론의 관심은 금융기관의 내부감사체계와 외부감사체계의 허점이 무엇이었는가에 기울여져야 한다. 대형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경보체계가 작동되지 못했던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를 밝히지 않으면 대형사고는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을 바라보던 우리의 시각 자체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비껴서 부차적인 의심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의심을 풀지 못하게 되는 때에 좌절하게 되고 더 파헤칠 흥미를 잃게 된다. 어디까지나 핵심적인 문제에 중심을 두고 부차적인 의문점들을 하나씩 파헤쳐 가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비록 고위층의 외압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 같은 중대한 금융사고는 여론의 지속적인 관심을 필요로 한다. 언론이 그 사건을 끝까지 파헤쳐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촉구하고 그 개선안이 실현될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은영 외대 법대학장 · 참여연대 맑은사회만들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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