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열이면 열, 맛이 달랐던 또르띠아

열이면 열, 맛이 달랐던 또르띠아

스페인 바달로나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스페인 바달로나 해변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마을, 바달로나 

 

그해 여름은 바달로나 해변에서 보냈다. 바달로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주에 속한 도시인데, ‘울산광역시 울주군’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울주군이 ‘영남 알프스’로 유명한 것처럼 여름에 바달로나를 방문한다면 해변은 꼭 가봐야 한다. 지중해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 해변과 그 뒤로 기다랗게 선로가 놓여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창문 너머 바다가 보이는 아무 역에서 내리면 해변이 바로 코앞이다. 어떤 날은 열차 안의 모두가 해변 복장을 하고 있어서 마치 해변행 특급 열차를 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 달 동안 머문 숙소의 주인은 마주칠 때마다 처음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오늘은 어딜 갈 건지 물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바달로나 해변을 소개해 준 것도 그이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은 바다를 즐기는 사람은 없고 죄다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난 바달로나로 가지. 그 해변에 오는 사람들은 바다가 좋아서 오는 거니까.” 

 

그의 소개로 처음 가본 뒤 거의 매일 바달로나 해변을 방문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고 날이 좋으면 적당히 양치만 한 뒤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스페인식 샌드위치 보카디요Bocadillo를 사서 해변으로 향한다. 투명한 지중해 바다에서 헤엄도 치고 모래사장에 누워 온몸 위로 벌겋게 태양 자국을 새겨 넣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해가 정수리를 지나 서쪽으로 기울면 몸에 붙은 모래를 툴툴 털고 담요를 걷어 숙소로 돌아왔다. 여름방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시간이었다.

 

스페인 사람들, 이 음식에 진심인 편? 

 

스페인 사람들은 끊임없이 뭘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해변에서 태닝을 즐기던 사람들은 곧잘 샌드위치를 꺼내 먹고는 다시 누워서 몸을 태웠다. 그러다 음식이 떨어지면 해변 앞 식당을 찾았다. 자리에 앉지는 않고 바bar 테이블에 기대서서 뭔가를 먹고 나왔다. 가만 보니 바 테이블 위에는 통유리 진열장이 놓여 있고 그 안에는 손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타파스Tapas나 핀초스Pintxos가 들어 있었다. 지나가던 이들도 ‘좀 허기진대?’ 하는 표정으로 식당에 들러 바에 기대어 음식 몇 개를 집어먹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우리가 노점에서 떡볶이나 어묵 꼬치 몇 개를 먹듯이 말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우리도 그렇게 끼니를 때웠다. 특히 스페인 전통 음식 또르띠아tortilla를 자주 사 먹었다. 감자로 만든 이 음식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음식이다. 강원도 향토음식인 ‘감자전’을 두껍게 구우면 비슷한 맛이 날 거다. 감자로 속을 채운 오믈렛이라고 하는 이도 있는데, 뭘 닮았든 한 접시 먹고 나면 든든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열차에 타기 전에 항상 이 또르띠아와 맥주 한 잔으로 저녁 식사를 대신했다.

 

숙소 주인이 만들어준 최고의 또르띠아 

 

재미있는 건 식당마다 또르띠아의 맛과 식감이 묘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마치 한국의 집집마다 김치 맛과 레시피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뭐랄까, 이 음식에는 스페인 사람 모두가 진심인 거 같은 느낌이랄까? 숙소 주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식당에서 사 먹는 건 반조리 냉동식품과 다름없지. 물론 잘하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은…. 말해서 뭐 해? 또르띠아만큼은 내 레시피가 최고라고! 마침 나도 출출하니 진짜의 맛을 보여줄 겸 지금 한 번 만들어 볼까?”

 

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는 냉장고 안에서 감자를 꺼내 채를 썰기 시작했다. 옆에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니 생각보다 간단한 음식이었다. 채 썬 감자를 큰 볼에 담아서 달걀과 올리브오일을 풀고 치즈를 듬성듬성 썰어 넣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불을 올리고 전을 부치듯 한쪽 면이 익으면 접시를 뚜껑 삼아 뒤집고 다시 프라이팬에 넣어 반대쪽 면을 구웠다.

 

선대의 레시피와 고향 마을의 전통이 더해져서 그런 걸까? 그가 만든 또르띠아는 지금껏 식당에서 사먹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전혀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재료와 레시피인데 어쩜 그렇게 맛과 식감이 다른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한 조각, 한 조각 입에 넣을 때마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레시피로 한국 최초의 또르띠아 전문점을 차리겠다고 다짐했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7-8월호 (통권 287호)

타파스와 또르띠아

 

숙소 주인에게 후한 대접을 받은 뒤로 몇몇 스페인 사람들에게 이 음식에 대해 물어보았다. 하나같이 또르띠아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는데, 요리 좀 하는 한국 사람이 김치찌개, 된장찌개에 자신 있어 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렇게 스페인 사람들은 바르셀로나 숙소 주인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맛과 레시피를 뽐냈다.

 

한국에 돌아온 지 오래됐지만 그 이후로 아직 한 번도 또르띠아를 만든 적은 없다. 몇 번 그 맛이 생각 나긴 했지만 막상 만들려고 보니 옆에서 볼 때와 달리 쉽지 않더라. 달걀을 풀다가 매번 ‘계란말이’로 끝나니 말이다. 

 

 

➊ 올바른 외래어 표기법은 ‘토르티야’. 멕시코 요리에 곁들이는 옥수수나 밀가루로 빚은 얇은 빵과 발음 및 표기는 같지만, 이 글에서는 스페인식 오믈렛Spanish Omellette을 가리킨다


글·사진.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함께 글 쓰며 사는 부부 작가이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마흔 번의 한달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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