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5년 06월 2005-06-01   947

한반도 평화 디딤돌, 민간 남북대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 결성의 의미와 쟁점

지난 3월 5일 금강산에는 때 아닌 함박눈이 축복처럼 내리고 있었다. 남북해외 대표단에도 함박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전 날인 3월 4일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결성을 극적으로 성사시키고 오전에는 올해 사업의 대강을 합의한 공동보도문까지 합의해 발표한 터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과 갈등의 골은 간단치 않게 깊어가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화해와 평화를 위한 자그마한 디딤돌을 놓았다는 안도감에 모두들 흡족해하고 있었다.

상설적 민간교류채널 마련한 ‘6·15공준위’

남북해외의 민간연대체인 ‘6·15공동행사준비위(공준위)’는 지난 해 11월 남북실무접촉과정에서 제안되어 대략 4개월 여의 준비를 거쳐 결성에 이르게 됐다. 6·15공동행사준비위 결성은 몇 가지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공준위, 특히 남측위원회에는 그 참여 폭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많은 그리고 다양한 남북해외의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기존에 통일운동을 전개해온 통일연대 소속단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소속 단체, 7대 종단 외에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YMCA, 민주언론운동연합, 평화네트워크 등 시민·평화단체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한편, 이 공준위를 앞으로 상설적인 연대기구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남북해외가 합의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그 동안 내외의 정세에 의해 굴곡을 겪었던 민간교류 운동이 일상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공준위는 또한 평양에서 6·15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서울에서 광복60주년 기념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 이외에 노동, 농민, 여성, 청년학생, 교육, 환경, 학술, 문예 등 12개 부문교류를 일상적으로 추진하는 등 방대한 연대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6·15공준위’ 결성이 값진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난해 6월 이후 남북당국간 대화조차 단절된 채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조건에서 민간의 상설적 교류채널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사실 올해가 해방 60년, 6·15선언 5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지만, 남북관계는 기대만큼 진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3월 4일 결성 직전인 2월 10일 북측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비난하고 핵보유를 선언함으로써 당국간 대화만이 아니라 민간 대화에서도 적지 않은 이견과 갈등이 예고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결성 자체가 매우 뜻 깊은 일이지만 앞으로 이 문제를 남북해외 민간주체들이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갈 것인지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져 있었다.

실제로 결성 과정과 그 이후의 논의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결성 과정에서는 해외 준비위 내에서의 ‘민족대단결’ 문제가 쟁점이 됐다. 남측 준비위 실무대표단이 “해외 준비위원회 구성과정에서 북과 가깝지 않거나 남측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되어온 인물이나 단체들에는 논의 참여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한 데 대해 해외준비위측이 “해외동포사회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추진한 일에 남측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며 반발하는 과정에서 결성식 자체가 연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는 곧 남측준비위 내부에서의 논쟁으로 번졌다. ‘해외의 자주적 결정에 대해 무례하고도 무리한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판하는 입장과 ‘관성적이고 협소한 3자연대로 인해 통일운동이 소수화’되어 왔던 전례를 답습해서는 안된다는 입장 간에 심각한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이 논쟁은 해외 측 준비위원장을 복수로 하고 공동보도문에 “향후 남북해외의 다양한 단체 인사들의 참여와 역할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는 점을 명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일단락됐다.

“만남과 대화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변화 만들어내”

더욱 심각한 논쟁은 예상대로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공동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재연되고 있다. 6월15일 평양에서 개최될 ‘6·15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공동결의문 초안을 작성하는 접촉과정에서 북측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기초하여 민족공조와 단합을 이루고 외세의 전쟁위협을 막아내자”는 기조를 고수했고, 남측은 “민족의 단합과 더불어 동북아 평화와 우호협력도 추구하며, 전쟁과 무력사용에 반대하고 비핵화와 군축을 실현하자”는 기조를 주장하여 초안합의에 실패했다.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시키려면 한반도에서 외국군의 철수도 병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민족끼리 정신 외에 동북아 평화나 국제우호협력 등을 명시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마도 지난한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자의 입장을 충분히 개진하고 경청하는 것을 전제로 적절한 절충점을 마련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남·북측 모두 6·15행사의 성사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지 깊이 인식하고 있고, 이를 위해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오는 6월 14일-17일 남측대표단 600여 명은 평양에서 열리는 민족대축전 참석을 위해 서해직항로를 오가는 평양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혹자는 ‘만나서 뭐하냐, 당신들이 만나는 북측은 결국 당국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럴 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평행선을 달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만남과 대화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공동행사 남측준비위원회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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